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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 청년의 가족사진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갓난아기로 태어나자마자

영아원과 보육원에 버려져

꽃샘추위에 떠는 이파리처럼

차갑고 매서운 세상에 버려진

그 어린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잘못 했으면 얼마나 잘못했다고

선생들은 툭하면 혼을 내고 벌을 주고

고아 형들은 집합시키고 기합 주고 때리는

그런 보육원이 무섭고 두려워서 가출했습니다.

갈 곳도 없고 잘 곳이 없어서

빌라 계단이나 으슥한 놀이터에서

도둑고양이처럼 눈치를 살피며 잤습니다.

이슬을 맞으며 깬 새벽은 춥고 외로웠습니다.

천애고아로 태어난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배는 고픈데

너무나 고픈데

밥 사 먹을 돈도 없고

밥을 줄 사람들도 없어서

식당에서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배를 채우고 찜질방에서 잤습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가 끊기고 돈 떨어지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우유를 훔쳤습니다.

배가 고파서, 너무 배가 고파서 훔쳤습니다.

그러다가 붙잡혀 경찰서에서 보육원으로 인계됐고

보육원에 넘겨진 소년은 보육원은 집이 아니라 시설

나의 집이었다면 머물겠으나 시설에 구금된 것 같아서

또다시 가출하고, 비행을 저지르고, 또다시 붙잡혔으며

이번엔 소년재판을 받고 보호처분대로 시설에 갇혔습니다.



孤兒, 부모에게 버림받아

몸 붙일 곳 없이 살아온 청년.

막막한 사막보다 더 막막한 이 세상

서럽고 외로운 밤보다 더 어두운 청춘을

학대하고 방황하며 떠돌았던 스물셋 청년에게,

기댈 곳도 누울 곳도 없는 벌거숭이 고아에게

사랑이 찾아 왔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가족,

따뜻한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속삭이는 아늑한 가정,

이 지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거처가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생겼습니다.

여자 친구의 뱃속에 귀를 댔습니다.

두렵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고아 청년에게 꿈이 생겼습니다.

고아 청년의 꿈은 미용사입니다.

아직은 견습생이지만 기술을 연마하고 습득해서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멋진 미용실을 차릴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내와 딸을 행복하게 해줄

멋진 미용실을 만들 계획입니다. 보란 듯이 성공할 것입니다.

이제, 청년은 고아가 아닙니다.

이제, 청년은 혼자가 아닙니다.

이제, 청년은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불행한 세월을 극복한 청년에게

행복한 선물을 꼭 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선물을 주면 이 가족이 행복할까.

잠깐 행복한 게 아니라 오래 행복할까.

고민 끝에 가족사진 겸 돌사진을 선물했습니다.

사랑에 목말라던 탓인지

사랑으로 안아주고 또 쓸어주며

행복하게 키워서인지 예쁘게 자란 아기와

머릿결 고운 청년의 어린 아내까지 셋이서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데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제, 청년의 가정에도

가족사진이 걸릴 것입니다.

이제, 청년은 집을 나서거나 들어설 때마다

어여쁜 아내와 사랑스러운 어린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행복을 다짐할 것입니다.

이제, 청년은 수고하고 땀 흘리면서 가족을 지킬 것이고

이제, 청년은 미용사가 되고 미용실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꼭 오면 좋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선물한 가족사진이 가족을 지키게 했다고

우리들의 목마름이 사실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오라

사랑도 없이 그리움도 없이 각자도생하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가족을 사랑한 이 청년을 보라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아가 될 것이라고.



고아 청년에게 가족사진을

선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재단법인 피플 정유석 이사장님과

(주)인스팅터스 성민현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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