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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미혼모의 홀로서기


▲숙희의 둘째 아들 '준이'(가명) 돌잔치

     

"오늘 생신이셔서 전화 드렸어요.

큰엄마 큰아빠 잘 지내고 계세요..?

저는 열심히 살고 있고 아이들도 많이 컸어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해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ㅎ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두 아이를 혼자 키우는

보육원 출신 미혼모 숙희(가명·28세)가

지난 1월 5일, 제 생일을 축하해주었습니다.

아내와 3남매 그리고, 손녀까지도 생일을 축하했지만

숙희의 생일 축하는 눈물 나도록 기뻤고 고마웠습니다.

     

보육원 출신이었던 남편이

두 아이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숙희는 버림받은 아픔에

깊은 우울증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만일에 그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자신의 부모처럼 두 아이를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숙희가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있습니다.

경력직 보육원 교사로 씩씩하게 살고 있습니다.

더이상 도움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미래를 위해 보험료를 내고 있습니다.

     

▲숙희의 첫째 딸 '솜이'(가명) 초등학교 입학선물.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사장 임진성)은 숙희를 비롯한 6명의 미혼모와 미혼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지난 2016년부터 보험에 가입했고, 자립에 성공하면 보험료를 스스로 내기로 약속했건만 약속을 지킨 미혼모는 숙희와 미숙이 두 명입니다. 공장 다니면서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미숙이와 숙희는 지난해 5월부터 자녀 보험료를 내고 있으니 참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숙희가 자립할 수 있었던 배경은 보육교사 자격증입니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던 배경은 후원자 여러분입니다. 어게인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교육비와 컴퓨터 등을 지원해주었습니다. 남편이 떠난 후에 슬픔과 절망에 빠졌던 숙희는 용기를 내어 공부하면서 보육교사가 됐으며 수시로 잘리는 알바의 불안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슬픔과 절망의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첫째 솜이(가명)는 초등 4학년, 둘째 준이(가명)는 초등 2학년이 됐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한 아이를 온전히 키우려면 부모와 일가친척을 비롯한 온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혼모들은 조부모와 부모는 물론이고 일가친척 누구의 도움도 쉽게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미혼모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려고 합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아이를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서 버렸다면 그 책임을 미혼모 혼자서 져야 할까요?

     

온 마을이 되어 미혼모를 안아주신

후원자 여러분의 따뜻한 품이 없었다면

숙희와 두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고아 아닌 고아인 미숙이는 어떻게 됐을까요.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워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버림받은 아픔을 달래려고 술에 취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욱여쌈을 당했을 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까!'

     

새해가 됐는데도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답니다.

이럴 때,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의 손을 잡아주면 어떨까요.

새벽 교회에서 무릎 꿇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신다면

살길이 열릴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렇게 해서 살았습니다.

     

밑바닥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슬픈 작은 자들은

거저 도움받는 공짜 존재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댓가도 지불하지 않고 태어난 그대들은

그러므로, 어떤 비용도 내지 않고 공기를 마시는 그대들은

거저받은 그대로 가난하고 슬픈 이웃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슬픈 삶으로 삶의 길을 바로 안내하는

작은 자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대들의 온전한 살길은,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에 있지 아니하고

그대들의 온전한 희망은,

물고 물리는 생존투쟁에 있지 아니하고

     

버림받고 버리다 쓰러진 이웃의

아픔을 보듬는 따뜻한 품에 있다고,

슬픔과 절망의 늪에 빠진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나눔의 손길에 있으니 짠한 이웃들을 건져주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실 것 같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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