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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70대의 한 어머니가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노(老) 부부가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천 원~이천 원 모은 헌금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기독교 방송을 시청하다가

소년희망공장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위기 청소년들을 살린 가슴 설렌 이야기를

알게 된 뒤 기도하면서 헌금했다고 했습니다.

노 부부에겐 두 아들이 있는데

그 중의 작은아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유리방황(流離彷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난과 불화로 가정이 해체되고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시달리다가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더 가슴 아팠던 것은 작은아들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33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방탕한 삶을 살던 작은아들 어거스틴을

구원하기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어머니

모니카로 인해 그 아들이 죄를 철저히 회개하면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던 것처럼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사람 어머니!

그 어머니가 드리는 눈물의 기도로 인해 노모의 작은아들 또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탕자와 같아서 어머니를 눈물짓게 하고서야 귀향한 것처럼 말입니다.



집을 떠나 방황하던 못 된 탕자가

어느 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죽지도 않았는데 유산을 달라고 했고

어쩔 수 없이 유산을 주었더니 그 유산을 가지고

허랑방탕(虛浪放蕩)한 생활을 하다가

돈이 떨어져 굶어 죽게 되자 거지꼴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내쫓기는커녕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면서 마을 잔치를 벌인 아버지!

아버지의 눈물인들 아프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기도 또한 눈물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탕자의 아버지는 그 아들의 귀향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눈물의 기도를 드릴 수 있지만

아들을 기다릴 수 없는 눈물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불귀(不歸)의 아들을 둔 아버지

아들을 떠나보낸 눈물의 아버지

꽃이어야 할 아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어린 소년의 나이로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그 아버지가 어게인에 후원금을 보내주십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한두 해가 아니라 계속 보내주십니다.

내 자식은 떠났지만 이 세상의 자식들은 지켜야 한다면서

펜션을 운영하면서 얻은 수익금을 매달마다 보내주십니다.

표류하는 난파선에게는 구조선이라도 있지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배에겐 등대라도 있지만

핏덩이 자식을 버린 어머니는 소식조차 끊었고

술 취한 아버지는 가정폭력과 학대를 일삼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초수급비뿐만 아니라

눈물로 기도를 드려줄 세상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의 아버지가 보내주신 후원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아들과

본향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연보(捐補)입니다.

상실의 아픔으로 아들을 그리는 아버지의 그리움입니다.




자식을 버리는 어미만 있다면

자식을 괴롭히는 아비만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지옥입니다.

버려진 자신들을 외면하는 세상만 있다면

아이들은 분노와 증오로 앙갚음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머니와 아버지 중에는

내 자식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따뜻한 이웃이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대접해달라는 하나님의 부탁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삶으로 실천하는 참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겨울이 또다시 오고 있습니다.

한해가 또다시 저물려고 합니다.

올겨울 한파는 더 혹독할 것 같습니다.

경제 환난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가난한 이웃들은

그 어떤 대비도 없이 위기 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가정이 깨지고 아이들이 버려질 것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막막합니다.

그렇지만, 힘을 내렵니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어머니와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시는 아버지로 인해

환란의 겨울을 견뎌낼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위기에 처한 어려운 이웃들의

힘겨움을 다 해결해드릴 순 없지만

따뜻한 온기로 손잡아드릴 수는 있으므로

올해 겨울에도 우리는 함께 겨울을 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따뜻해져야 겨울을 날 수 있다는 것을,

쓰러진 삶을 일으키는 것은 낙인이 아니라 위로라는 것을,

그래서, 가난한 이웃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용기라는 것을

아시는 기도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겨울 강을 건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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