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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 이주 여성에게 바치는 기도

#. 1

 

남편과 사별하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의 꿈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행복한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스무 살 차이 나는 남자, 부자 나라에서 온 남자와의 재혼을 결정하고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첫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왔습니다. 가난한 고향 하노이를 눈물로 떠나면서 잘살아 보리라!, 가난과 불행을 이겨내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은 부유한 나라였지만 남편은 가난했습니다. 가난할 뿐 아니라 무능한 생활자였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남편 사이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도 남편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생활비를 벌기는커녕 무위도식하며 술값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 양육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을 베트남 친정어머니에게 맡겼습니다. 두 아이에 대한 양육비를 보내기 위해 불철주야로 일했습니다. 

 

한국 남자와 2009년 재혼했으니 어느덧 1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버지뻘인 한국 남자, 말도 통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가난의 멍에를 벗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짊어진 건 행복한 삶이 아니라 저임금의 장시간 노동이었습니다. 가난을 숙명으로 여긴 그녀는 남편의 술값과 핸드폰값 등을 대주기 위해서 힘겨운 야간 노동까지 했습니다.

 

가난한 조국과

가난한 친정과

가난한 고향을 떠나온 것은

잘살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잘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의 10년 넘는 폭력을 견디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가정폭력은 자식에게까지 가해졌습니다.

참다못한 그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지옥을 탈출했습니다.

 

#. 2

 

희미한 방범등이 좁다란 골목을 밝히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낡고 오래된 집들이 밀집한 골목을 다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둠침침한 골목으로 안내하던 방황(가명 16세)이가 낡은 철 대문을 가리키면서 “여기가 저희의 집”이라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저녁이 한참 지난 시간에 가정을 방문한 건 잔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방황이 엄마의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공장에 간 엄마는 늦게 오고

집에 가면 아빠는 술에 취해 있고….”

 

가정 방문을 결정한 까닭은 베트남에서 2년 전에 온 중학생 방황이의 폭력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한 폭력 문제 등을 일으킨 방황이를 면담하면서 심각한 가정폭력 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폭력이 중단됐고 접근 금지 지시가 떨어진 틈을 타서 엄마와 세 식구가 살 집을 구해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응우옌(가명)

 

밤늦게 귀가한 그녀는 호찌민의 딸처럼 생겼습니다. 호찌민(1890~1969 본명 '응우옌신꿍')은 베트남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한국에서의 고단한 삶에도 형형한 눈빛을 잃지 않은 그녀는 벌어 놓은 돈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사출 공장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로 일하는 그녀는 200만 원 남짓 번다고 했습니다. 월세와 남편 술값과 생활비와 보험료 그리고, 하노이에 계신 친정어머니 생활비로 30만 원 보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여덟 살 때부터 일했다고 했습니다. 노동에 잔뼈가 굵은 그녀였지만 한국의 야간 노동은 너무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10년가량을 주야 교대근무로 일했다는 그녀는 야간 노동이 너무 힘들어서 주간 근무할 수 있는 공장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아니, 스카우트됐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값싼 노동을 묵묵히 견딘 숙련공입니다. 한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그리고, 야간 노동에 못 견뎌 떠났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제조업 강국이란 신화를 쓸 수 없었을 것입니다.

 

#. 3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이혼하지 않고 이대로 살고 싶어요.”

 

그녀에게 이혼을 권한 까닭은 남편이 알코릭에 의한 중병을 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첫째, 가난한 그녀 혼자서 의료비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큰 문제이고 둘째, 한국 사람의 문제는 한국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혼을 권했던 것입니다.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피할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그녀는 가정폭력범인 남편을 변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남자와 국제 재혼한 주변의 베트남 여성들 대다수는 이혼했다고 했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잘 사는 줄 알고 결혼했는데 한국에 와서 보면 나이 차이가 거의 아버지뻘이고, 가난한데다 생활력은 무능하고, 알콜릭에다 가정폭력까지 가한다면 어느 여성이 참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혼을 권했던 것인데 남편을 긍휼하게 여긴 그녀는 이혼보다는 현재처럼 별거하면서 남편을 돌보아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녀는 천주교인입니다. 긴급 피난처인 월셋집, 빛바랜 벽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쳇바퀴 돌듯이 공장과 집을 오가는 그녀의 유일한 안식일은 성당 가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자비심은 신앙에서 비롯됐을 것입니다. 욕설과 폭행, 심지어 소주병까지 집어 던지는 남편이지만 술에 취하지 않으면 순한 사람이라고,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용서와 자비를 베푸는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국 남자의 아내이지만 한국 국적은 없는 응우옌!

 

하느님 아버지!

그녀는 숙련 노동자입니다.

그녀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떠나면

그녀들이 돌린 공장의 기계들은 멈출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그녀는 희망을 낳은 엄마입니다.

그녀와 같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세계 최저 출산 한국의 명운은 끝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그녀는 한국 제조업의 희망이 되어주었지만

한국은 그녀에게 희망을 준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아 길렀지만

한국이 이주 청소년에게 준 것은 왕따와 차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선대’(善待)하라고,

친절하게 잘 대접하라고 신신당부했음에도 우리들은

이 시대의 나그네인 이주 노동자들과 이주 청소년들을

환대하기는커녕 값싼 노동으로 부려 먹으면서도 임금 체불하고

산재로 피해주고, 차별과 왕따로 피눈물 흘리게 했으니 하느님 아버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소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되찾게 하여주소서.

 

하느님 아버지!

주야 노동으로 지친 그녀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지친 그녀가

한국의 가난한 남자에게 속은 그녀가

술값을 대주고 핸드폰값까지 대주었던 그녀가

남편의 가정폭력에 희생된 하노이에서 온 그녀가

어머니가 기다리는 가난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제조업의 희망이신 이주 노동자들이

최저 출산율을 높여주신 다문화 여성들이

한국의 미래가 되어주실 이주 청소년들이

불청객이 아니라 희망의 이웃임을 깨닫게 하소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무겁게 깨닫게 하소서.

이주 노동자들이 떠나면 공장은 문을 닫을 것이고

이주 여성들이 출산하지 않으면 인구는 폭망할 것이고

침묵하던 약자들의 눈물이 폭발하면 전쟁터가 될 것이므로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언어와 피부가 달라도 한 하늘 아래 형제이고 자매임을 깨닫게하소서.

응우옌,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한국의 눈물을 씻고가게 하소서.

미안해요 응우옌, 당신의 아픔을 외면한 우리의 죄를 부디 용서해주소서.

 



등대장학회가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재단법인 ‘등대장학회’(이사장 장동익)

가정폭력 피해자인 응우웬님 가정에 필요한

30만 원 상당의 텔레비전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이와 함께 가정폭력의 또다른 희생자인 방황이가

폭력의 대물림에서 벗어나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응원의 뜻으로 매월 장학금(20만 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등대장학회’는 '낙동강변 2인조'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21년간 옥살이했던 장동익-최인철님, '이춘재 8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님, '삼례 나라슈퍼' 사건 피해자 최성자님 등이 국가로부터 받은 형사보상금과 손해배상금 출연금(5억 원)으로 만든 공익재단법인입니다.

 

등대장학회 장동익 이사장님은 끔찍한 누명을 쓰고 자그만지 21년간 교도소에 갇혀 지낸 무기수였습니다. 장 이사장님은 “저희는 많은 분들 덕분에 누명을 벗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 손 내밀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 어떤 절망의 끝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도 작은 불빛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이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라면서 “의지할 곳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등대장학회를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분들의 재심 변호사로 억울한 누명을 벗겨준 박준영 변호사가 ‘2026 만해대상 실천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7월 후원자 명단]

 


강미경 강미원 강봉진 강창훈 고행숙 고현주 곽선희 구길자 권길선 권명숙 권미선 권수경 권수아 권연식 권영림 권차랑 그교회 김경희 김기현 김난주 김덕순 김도영 김도윤 김명호 김명희 김미령 김민수 김선애 김성수 김성순 김소영(1972) 김연례 김은숙 김종국 김종택 김준수 김춘지 김치하 김한나 김현겸 김현주(서울) 김현주(대구) 김혜미(김미진) 김혜순 김효정 남기창 남서울교회(비) 두현호 류제환 류창형 마옥이 맘맘(김순옥) 문상순 문정라 박병엽 박숙정 박아론 박영주 박예진(의정부범골로) 박인용(행복한밥상) 박재섭 박종선 박종택 박찬수 반태경 법무법인에스 법무법인한누리 변종필 사회적협동조합행복나눔 생명교회(엄경진) 서인수 소갑순 소광섭 소은정 소정열 손다은 손석봉 손성암 송금숙 신양선 신정아 신창선 신춘례 신혁호 신희지 심정섭 심현정 안상숙 안성진 안은숙 안재진 안지현 안혜리 양원영 엄서영 엄효정 염춘화(LIAN CHUNHUA) 오선예 유동현 유정숙 윤승희 윤이나 윤태경 <주>윤현상재 은평청파교회 은평청파기픈속(손영주) 이대성 이도경 이명우 이미자 이선희 이성민 이성숙 이수경 이슬기 이시영 이연주 이영미 이영숙 이영순 이영종 이용규 이용창 이원태 이은경 이은미 이은주 이은희(서울) 이인영 이제승 이종선 이주은 이주희 이지은 이진아 이한승 이행우 이현정 이현종 이현죽 이혜원(부천) 이혜원(안양) 임동수 임태숙 임희정 장경숙 장유영 전유라 정경수 정선화 정성회 정세훈 정윤경 정준오 정찬길 제성숙 조성록 조솔 조승 조영기 조우진 조현명 조현숙 조호진 진영숙 진종옥 차수련(연) 차영조 차영주 차향매 청파교회 최남식 최성초 최수길 최순희 최승주 최양희 최윤선 최윤성 최의승 최인식(류미라) 최희정 표대중후원금 한국기독교장로회행복 한석훈 한성수 한여름 한영순 허윤 허의숙 현명숙 현지현 홍석경 홍영주 황재훈 황현성 황현숙 황홍구 KIMM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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