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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쳐서 신장 두 개인 60대 노부부 이야기


아내가 어깨 통증을 호소합니다.

어깨를 만져보니 돌처럼 딱딱합니다. 부모가 없거나, 엄마가 없거나, 가정폭력 피해자이거나, 우울증을 앓거나, 소년소녀가장이거나, 기초생활 수급권자인 위기 청소년들의 자립 일터인 ‘소년희망공장’(카페)을 운영하는 일, 미혼모 자립 일터인 ‘스위트 그린’(샐러드&샌드위치 전문점)을 만드는 일, 보호소년 위탁 교육 공간이자 부천역 아이들 문화·스포츠 공간인 ‘소년희망센터’를 운영하는 일, 위기 청소년 밥값을 마련하는 일, 월세와 직원 인건비 챙기는 일은 서너 사람이 할 일인데 혼자 감당하니 몸이 아픈 것입니다.

3년 전, 아내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쓰러지면서 뼈를 다치는 바람에 두 달 동안 목발 신세를 졌습니다. 아내는 모처럼 쉬면서도 그냥 쉬지 아니하고 북한 어린이에게 보내는 목도리 뜨는 일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리고는 깁스를 풀자마자 또다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제가 벌였으니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친 몸으로 귀가해 쓰러진 채로 잠들었다가도 새벽이면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아내, 아내의 지친 안색에 놀란 지인들이 “그러다, 큰일 난다!”,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만류하지만 쉴 형편이 못 됩니다.


▲아내에게 시로 청혼했습니다.


홀로였던 내가

홀로였던 그대

쓸쓸했던 신발을 벗기어

발을 씻어주고 싶습니다.

그 발아래 낮아져

아무것도 원치 않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대 안온한 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노래가 되어

(조호진 시인의 ‘가난한 청혼’)

아내는 바보입니다.

지인에게 제법 큰돈을 떼이고도 또다시 지인에게 속아 큰 피해를 당하고서도 “돈이 속였지 사람이 속였겠느냐!”라며 웃어넘기는 아내는 통 큰 바보입니다. 교회에서든 지역에서든 어디든지 간에 아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과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도와주지 못해 안달 내는 오지랖 때문입니다, 손해 보는 일 좀 그만했으면 했다가도 그 오지랖에 가장 큰 혜택을 본 사람이 저인지라 말리진 못하고 속앓이 할 뿐입니다.

저는 아들 둘을 둔 가난한 홀아비였습니다.

가난한 데다 가방끈까지 짧았습니다. 아내는 가방끈도 길고, 알뜰살뜰 재산도 모았고,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도 제법 커서 제가 감히 넘볼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걸 어떡합니까. 외로운 걸 어떡합니까. 그래서 시 한 편으로 청혼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두 아들을 목숨처럼 지키면서 잘 키운 것을 보니 우리의 사랑도 잘 지킬 것을 믿는다!”며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승낙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2006년, 못난 제가 딸 하나를 둔 천사표 바보 아내와 새 가정을 꾸리면서 다섯 식구가 됐습니다.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지 맙시다!"

이렇게 맹서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혼과 파산의 고통이 기나길었고 눈물의 세월이 아득했기에 새 가정을 주신 축복을 거저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다 하나님께 서원드린 바도 있어서 그냥 넘어갈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이런 맹서를 했습니다. 폼나는 맹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맹서는 폼나는 순간의 말잔치로 끝나지 아니하고 우리 부부의 삶을 가시밭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므로, 폼나는 맹서를 삼가야 합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초대 사무국장 출신으로 이주노동자·다문화 단체인 ‘지구촌사랑나눔’ 이사, ‘한국조혈모세포은행’ 홍보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아내는 30년 넘게 공익 활동을 해온 비영리 민간단체 전문가입니다. 지금은 '어게인' 대표로 활동 중입니다. 어게인 설립은 제가 벌인 일입니다. 버림받은 아이들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일을 벌이다 보니 제 능력으론 감당이 안 될 정도가 돼서 아내에게 십자가를 떠넘겼습니다.

저는 ‘어게인’에서 자칭 ‘소년희망배달부’로 일합니다. 주요 임무는 소년희망공장과 소년희망센터를 청소하고, 분유와 기저귀 등을 배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일입니다. 이외에도 글쓰기를 통해 후원금을 모으는 일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훌륭한 일을 한다!”, “좋은 일을 한다!”라고 칭찬하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실패한 인생을 일으켜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잘했다고 공치사할 것이 없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아이들도 흔들립니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과 지혜의 왕 솔로몬도 욕망과 음란의 덫에걸려 패가망신 당했는데세상어느 누가 나는 이겨낼 수있다고 장담할수 있을까요. 세상천지가 음란의 바다인데, 성매매와 음란물이 해일처럼 덮치는데, 내 남자와 여자보다 외간 남자와 여자를 탐내는 불륜의 파도가 밀어닥치는 이 망망대해에서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는 일엽편주(一葉片舟) 인생들이 그 무슨 재간으로 인생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요.

백년해로(百年偕老) 맺은 언약이 휴지처럼 버려지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수신제가’(修身齊家)는 지난 달력처럼 버려졌습니다. 불륜을 주제로 한 ‘부부의 세계’가 공전의 히트한 까닭은 그것이 단순 드라마가 아니라 부부 이혼과 가정해체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작가의 탁월한 심리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찬사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가정해체의 고통을 겪은 자로서 증언합니다. 불륜과 가정 파탄은 아무리 미화한들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없습니다. 귀가 있거든 부모 이혼과 가정해체로 인해 거리를 떠돌며 울부짖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눈이 있거든 가정폭력에서 배운 폭력을 휘두르고, 물건을 훔치고, 장난처럼 성 매매하는 아이들의 죄를 똑똑히 봐야 합니다. 아이들의 죄가 과연 아이들만의 죄일까요. 이 아이들에게 지은 죄를 하늘과 땅이 아는데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아내에게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구원입니다.


상처 많은 사람은 낮아지기 어렵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도 많고 사랑도 부족했던 제가 그 발아래 낮아지려고 애쓰는 것은 아내로 인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손을 잡아 주지 아니하고 어떻게 구원에 이른단 말입니까. 상처투성이이었던 한 사내가 아내의 굳은 어깨를 주무릅니다. 아내의 발을 주무른 뒤에는 튼 살결에 로션을 바릅니다. 아내에게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구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입니다.

올해 초, 첫 손녀가 태어나면서 할아버지가 됐습니다. 3남매는 석사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예쁜 첫 손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텔렌보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기에 안아주고 싶어도 안아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아쉬움은 큰며느리가 손녀의 성장 과정을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을 보면서 달랩니다.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것이 감사해서 신장 한쪽을 나누었습니다.


모든 부부의 신장은 두 사람 합치면 네 개입니다.

넘치거나 부족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신장은 합쳐서 두 개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신우신염’(세균이 신장을 침범하여 감염을 일으키는 병)을 앓았던 아내의 오른쪽 신장은 기능이 정지된 상태이고, 제 왼쪽 신장은 ‘만성신부전’(노폐물을 제거하는 신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없는 질환)을 앓던 생면부지의 청년에게 2007년 이식됐습니다. 깨진 가정을 회복시켜 주신 것에 비하면 작은 나눔입니다.

신장을 기증한 지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으니 저는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가방끈은 짧고, 돈도 벌지 못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본 적도 없는 제가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이들도 하지 못하는 일,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으니 놀랄 일입니다. 제가 이런 인생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것은 제게 이런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겸손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내여, 우리 다시는 아프지 맙시다.

인생의 아픔 때문에 괴로웠지만 그 아픔 때문에 서로를 더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며 살고 있으니 우리 다시는 아프지 맙시다. 목사가 된 딸(32세)과 막내아들(29세) 결혼시키고 손자들도 줄줄이 돌봐야 하니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지 맙시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면서 3남매 가정이 사랑으로 뿌리 내리도록 사랑을 돋웁시다. 이렇게 복이 겨운데도 바람이 있다면 제가 먼저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는 홀로 오래 남지 말고 뒤따라 오시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향 가면 좋겠습니다.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을 잘 키운 아내여!

자신을 버린 부모와 세상을 미워하면서 누구든 마구 찌르는 아이들에게 당해주는 그대는 바보입니다. 속이면 속아주고, 찌르면 찔림 당하면서 “우리마저 손을 놓으면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되겠냐!”며 바보처럼 당해주는 그대로 인해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들이 삽니다. 바보 예수가 “나도 당했는데 네가 당하지 않으면 되겠느냐!”면서 “나도 용서했으니 용서받은 너도 저 아이들을 용서하라!”는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는 아내여!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는 일이, 찌르면 찌르는 대로 찔리는 일이

말과 글처럼 쉬운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힘은 안 들고 폼만 나는 일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내가 하리라! 저리 비키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도 잘하지 않으려는 일이므로 저는 바보 같은 그대를 따르겠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늘은 결코 속일 수 없으므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아내여!


그대의 바보 같은 사랑으로 인해 이 길을 갑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가슴으로 낳은 큰아들 결혼식에서 아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독교 매거진 <빛과 소금> 6월호에 기고한 글을 더하고 뺀 글입니다.

※<소년희망공장> 이야기가 26일(금) 저녁 5시 25분 MBC-TV <어쩌다 하루>에서 방송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시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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