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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니체를 위하여!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최전방에 배치된 이등병 니체


‘급성편도염에 걸려서

연락 못 드리고 있어요.

좀 나으면 연락드릴게요.’

지난 8월에 입대한 니체(가명·21세)에게

전화했더니 목이 아파서 통화가 어렵다는

문자를 보내면서 최전방에 배치됐다고 했습니다.

자대 배치를 최전방으로 받아서 힘들다고 했습니다.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면서 근무도 많고 훈련도 많고

경계태세로 근무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훈련소에서도 그랬고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도 그랬답니다.

버려진 영혼을 짓밟은 나쁜 부모의 학대와 나쁜 형들의 폭력이

강압적인 훈련 과정에서 되살아나면서 공황장애가 발생했답니다.


▲인천가정법원 보호소년들에게 '회복적 생활교육'을 하고 있는 어게인.

니체를 처음 본 것은 3년 전,

인천가정법원으로부터 수강명령을 받은

보호소년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임진성)은

인천가정법원 보호소년들을 교육하는 위탁 기관입니다.

니체는 여느 보호소년들과 달랐습니다.

소년재판에서 ‘2호 처분’(수강명령)을 받은

보호소년 대다수는 교육받는 태도가 삐딱한데

귀공자처럼 생긴 니체는 반듯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으려는

모범생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강의에 임했던

니체는 수강명령을 이행한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보호소년들과는 달리 좋은 관계가 이어졌습니다.

어게인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호소년 위탁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것은

니체 같은 위기 청소년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입대를 앞둔 니체에게 선물한 전자시계.

어린 니체는 고아 아닌 고아였습니다.

차라리 고아였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콜릭 증세를 보인 엄마는 술에 취한 날이면

아빠와 닮은 어린 니체를 학대하며 괴롭혔습니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빠와의 불화로

툭하면 부부싸움을 하던 니체의 부모는

결국, 이혼했고 니체는 친척 집에 맡겨졌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친척 집에서

눈칫밥을 먹던 니체는 결국 가출해야만 했고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면서 중학교를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쉼터란 곳이 어떤 곳입니까? 가출 청소년과 비행 청소년들이

잠깐 머물다 떠나는 곳으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나쁜 형들에게 맞기도 했고

삥 뜯기기도 했고 형들의 기합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그만둔 니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고

떡볶이 뷔페 가게와 오토바이 알바를 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하고 택배 상하차를 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입대를 앞둔 니체에게 삼계탕을 사먹였습니다.

열여덟 되던 해,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막노동을 그만두고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공부에 전념했더니 돈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다급할 때, 페이스북 광고에서 통장을 빌려주면

돈을 준다는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속아 통장을 빌려주었다가

소년재판에서 2호 처분 수강명령을 받고 어게인에 온 것입니다.

수강명령을 받은 모든 보호소년들에게 ‘회복적 생활교육’을 하면서

개별 심리상담을 진행하는데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속아 학업의 꿈이

좌절된 니체의 이야기를 듣고, 검정고시 학원비와 생활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랬더니 검정고시 영어와 수학은 100점 만점, 다른 과목은 90점 이상을 받았고

스무 살이 되던 지난해, K대 지방 캠퍼스 경영학과에 합격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니체는 다른 위기 청소년들과 달랐습니다.

많은 위기 청소년들은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만

니체는 도움을 받게 되면 의지하게 되고 의지하면

자신의 인생이 진보할 수 없다면서 도움을 거부했습니다.

대학생이 된 니체는 한 재단으로부터

대학교 1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등록금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2학기 장학금만큼은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건설현장에서 주 2~3일 일했고,

1학기를 마친 여름방학 기간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일이 끊기면 저녁 6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일하는 택배 상하차를 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고

이렇게 땀 흘려서 번 돈 중의 100만 원을

도움을 주었던 재단에 장학금으로 기부했습니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주라고!

▲하나님 아버지, 부모에게 버림받은 이 청년을 보살펴주시옵소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할 뿐이다.” (니체)

제가 H를 니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니체의 명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아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극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외로워서 운 적도 있었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버림받은 상처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니체의 좌우명으로 극복하려고 몸부림치기는 하지만

외로움이 영혼을 적시면 눈물이 왜 흐르지 않겠습니까.

설한풍 몰아치는 최전방 철책에서 근무하는

아들을 둔 부모님들은 자식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새벽 기도하며 아들의 안위를 위해 빌고 또 빕니다.

따뜻하고 안락하게 지내는 것이 죄스럽기조차 합니다

그런데, 부모의 사랑은커녕 부모의

저주와 학대에 시달렸던 이등병 니체는 부모의 괴롭힘과

나쁜 형들에게 당한 악몽이 강압적인 훈련 과정에서 나타나면서

과호흡과 경련 등의 증세를 보이는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버려졌으면서도

부모에게 학대당했으면서도

나쁜 형들의 폭력에 시달렸으면서도

그 고통과 아픔에 좌절하지 않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쏟았던 이등병 니체를 위해

부모의 마음으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원치 않는 부모를 만나 사랑은커녕

저주와 학대에 시달렸던 가엾은 청년이

세상에 버려지고 떠돌면서 당한 폭력에 병들었던

한 청년이 관심 사병으로 분류되어 심사받고 있습니다.

이 가엾은 아들만큼은 십자가에 못 박게 하지 마시옵소서!

부모가 있으나 없는 것만도 못한 부모이오니 하늘 아버지가

대신 이 아들을 보살펴주시옵소서, 빽도 없고 도와줄 부모도 없으니

하늘의 천군 천사들을 파견하셔서 이등병 니체를 보호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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