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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에 사는 미혼 부부에게

- 은주네 그 이후 소식

▲미혼모 아기에게 준 선물.

지난 7월 14일,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미혼모 은주(가명·22세)에게 다녀왔습니다.

분유가 떨어졌다고 해서 분유를 배달하러 갔습니다.

후원자들이 보내주신 보행기와 아기용 의자 등의

육아용품과 아기공룡 인형도 선물하고 왔습니다.

생후 190일 된 주훈(가명)이는 자고 있었습니다. 분유와 이유식을 잘 먹어서인지 듬직하게 자랐습니다. 다리는 천하장사 다리 같았습니다. 따뜻한 이웃 덕분에 방구석에 있었던 곰팡이는 사라졌습니다. 좋은 이웃이 선물한 옷장 때문에 살림이 정리됐고, 분유 포트 덕분에 온도에 맞춰 분유를 탈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지난 3월, 도움을 청했는데

하루도 안돼 해결됐습니다.

따뜻한 이웃 때문에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에 사는 페친은 거의 새것인 제습기를,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는 다른 미혼모에게도 선물하라면서 새 분유 포트 5개를, 삼 형제를 둔 부부는 옷장을, 부천의 따뜻한 엄마는 동화책과 아기용품 등을 후원했습니다. 특히, 이유식 업체를 운영하는 삼 형제 엄마는 주훈이와 다른 미혼모 아기의 이유식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아, 세상은 정말 살만하구나! 봄이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 때문에 오는구나! 삭막하고 살벌한 이 세상이 살만한 것은 내 것을 나누며 서로 사랑하는 그대들 때문이구나!

은주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은주가 밝은 목소리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남편 영수(가명·21세)가 코로나 사태로 실직하는 바람에 은주는 한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수가 치킨 배달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육아에 전념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새로 일하는 곳에선 시급이 11,000원으로 올랐다고, 고용도 안정된 조건에서 일하게 됐다고. 그리고, LH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1순위여서 선정될 것 같다고 했습닏. 그래서 잘됐다, 아주 잘 됐다고 축하했습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에서는 분유와 기저귀를 계속 지원하는 동시에 주훈이 아기 보험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어린 미혼 부부야,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란다, 너희를 위해 기도하면서 사랑을 나누는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우리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가난할수록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마음속으로 이렇게 응원했습니다.

▲아기 장수처럼 튼튼하게 자란 미혼모 아기.

제발, 대물림을 끊어, 끊어다오!

은주네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의 짐을 단단하게 매는 용기와 의지입니다. 삶의 짐은 대신 질 수 없습니다. 스스로 지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위기청소년과 미혼모의 부모 중 상당수는 삶의 짐을 감당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무거운 짐을 자식들이 물려받습니다. 그로 인해 부모의 삶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삶이 망가지고 아이들의 삶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아기들에게 대물림됩니다. 이 대물림을 끊지 않으면 불행과 비극이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제발 끊어, 제발 좀 끊어다오!

다 보면 좋은 날 온다다 보면 좋은 날 온다살다살다 보면 좋은 날 온다 보면 좋은 날 온다

행복에 참예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가난과 게으름, 원망과 불만, 무절제한 생활, 박약한 의지와 쉽게 포기하는 좌절… 부모에게 가난만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잘못된 습관까지 물려받은 위기청소년과 미혼모들은 삶의 짐을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은주네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면서 축복의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빕니다. 쉽지 않은 부탁이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주훈이가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그 어떤 노력이든 다해야 합니다. 빌고 비는 마음으로 ‘반지하에 사는 미혼 부부에게’를 썼습니다.

▲미혼모 아기에게 선물한 보행기와 아기 의자.


봄이 왔는데도

꽃은 아니 피고

곰팡이만 피어서

아픈 몸 아플지라도

알바 인생 잘리고 또 잘릴지라도

쌀과 분유 떨어져 피눈물 난다 해도

살아라, 피눈물 삼키며 악착같이 살아

힘들어도 살고 더러워도 살고 꼭 살아

아무리 살려고 몸부림쳐도 살길 안 보여

이 세상 다 엎어버리고 끝내겠다 말아라

없는 놈이 깨지지 이 세상 깨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살아 제발 살아 끝내 살다 보면

살아진다, 아이는 자라고 남루한 살림에도

처진 어깨에도 핀다, 아니 꽃 피곤 못 배긴다

그리하여, 좋은 날이 오면

눈물 나게 좋은 날이 오면

하늘도 기뻐하며 축복하리라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정을 세운 그대들아 참 잘했노라

이에 행복을 주노니 그때 참예하라


(조호진 시인의 ‘반지하에 사는 미혼 부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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