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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은 어떤 손입니까?

최종 수정일: 3일 전


손바닥이 갈라지고

목 장갑마저 낡아버린

이 손은 어떤 손입니까.

     

이 손은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상을 살아온 가장의 손입니다. 2000년, 부모의 도움 없이 결혼한 젊은 부부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고난과 맞닥뜨렸습니다. 취업한 외국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임금이 7~8개월이나 체불된 것입니다. 예-적금과 비상금을 깨는 등 이 돈 저 돈 다 털고 빌리면서 힘겹게 버텼지만 젊은 부부는 어려움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쌀이 떨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아기의 분유가 떨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둑이 무너질지라도 가장의 어깨가 무너지면 안 됩니다. 가장의 어깨에는 사랑하는 아내의 희망이 걸려 있고 갓 태어난 아기의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다리가 끊어질지라도 가장의 길이 끊어지면 안 됩니다. 가족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가장의 길이 끊어지면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젊은 가장이 생계를 위해 달려간 곳은 겨울 공사판이었습니다. 매서운 엄동 추위를 솜바지로 달래면서 벌어 들인 돈으로 아내의 허기를 채워주고 아기의 울음을 달래준 젊은 가장의 손은 눈물 겨운 손이었습니다.


     

'고난이 축복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상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인생 길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원망하고 원망하다 안 되면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인생들이 다다른 곳은 벼랑 끝 절망 아래 밑바닥입니다. 반면에 닥쳐온 고난을 헤치면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감당한 가장들은 아내와 자녀들에게 존경과 사랑 그리고, 가족 행복이란 축복을 선물 받습니다. 쓰디 쓴 잔을 피하지 않은 가장의 손은 외롭고 힘들지만 거룩한 손입니다.

     

고난의 세월을 헤쳐온

거칠지만 거룩한 장인의 손을

다시 한 번 봐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잘 지고 걸어온

한 전각가(篆刻家)의 길을 눈 여겨 봐주십시오.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신경식(55세) 선생은 한자와 중국어 교실을 운영하면서 4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교과서 옆 개념 잡는 초등교과 어휘사전>(주니어김영사 2010년)은 큰아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편찬했고 '주니어김영사'에서 펴낸 <8급 급수한자 따라쓰기>, <7급 급수한자 따라쓰기>, <6급 급수한자 따라쓰기 1, 2> 등 총 4권은 초등학생 막내딸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편찬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한자를 배울 수 있을까? 자녀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고민의 결과가 책으로 편찬된 것입니다.

     

경기도 파주의 박물관 학예사, 파주문화원 교육강사, 파주평생교육기관 교육강사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었습니다. 박봉으로 3남매를 키우기 힘들었던 신 선생은 박물관 학예사 경험과 도장을 만들어 주변 사람에게 선물했던 취미를 살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도장'이란 뜻의 공방 체험장 '미담인'을 만들었습니다. 2013년 아내 박재미 대표와 함께 공동 창업했으니 어느덧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신경식 선생이

전각가(篆刻家)의 길을 걸어온지

어느덧 1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각(篆刻)은 나무와 돌 따위에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입니다.

그 세월 동안 전각가의 손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거칠어졌습니다.

     

"2013년 창업 초기에는 '인재'(印材)를 직접 만들어 나무 도장으로 사용했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수제 도장 만들기 체험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가시나 돌출 부분을 다듬기 위해 일주일에 3~4일을 밤샘 작업을 하다보니 손바닥과 손목에 무리가 가면서 거북이 등짝처럼 엉망이 됐습니다. 밤샘 작업을 하다가 손톱을 자르는 등 손이 크게 상하는 문제 때문에 2019년부터는 나무 재료 비중을 줄이고 돌 도장을 점차 늘렸습니다."

     

아내 박재미 대표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서 전각&수제도장 만들기 교육·체험 공방을 운영하고 인문학 전각 강사인 신경식 선생은 전국 각지로 출장 강연을 다닙니다. 신 선생은 ▲경기인재개발원 공무원 특강 ▲서울대학교 외국인 교환학생 체험 ▲연세대학교 외국인 유학생 체험 ▲송파글마루도서관 책도장 만들기 특강 ▲충남 시립도서관 직원 역량 강화 교육을 비롯해 1천 회가 넘는 출강을 통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2013년부터 전각&수제도장 만들기와 출강 체험과 체험키트를 통한 비대면 도장 만들기 체험을 한 인원은 2024년 8월 현재까지 자그만치 506,000명에 이릅니다.

     

이들 중에 5만 명이 넘는 학생과 공무원,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디자인하고 새기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도장을 소장했습니다. 2016년부터 올해 겨울까지 4만 5천여 곳의 초중고, 유치원, 어린이집 졸업도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국내 최초로 도장 만들기 체험을 운영 중인 '미담인'은 '나만의 나무 도장 만들기'로 2016년과 2018년 경기관광공사 인증 우수 체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고 2020년과 2023년 교육부의 교육체험인증기관으로 인증됐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기꺼이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신경식-박재미 부부는 결혼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로 약속했지만 궁핍이 닥쳐왔습니다. 신 선생은 "지금은 우리 살기도 팍팍하니 형편이 나아지면 그때 돕자"라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강경파인 아내가 "형편이 나아지면 기꺼이 도울 수 있을 것 같냐?"라고 반문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데는 경제적 능력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중단 없는 후원을 이어갔습니다.

     

아들 1호(26세)가 태어난 뒤엔 1호의 이름으로, 아들 2호(23세)가 태어난 뒤엔 2호의 이름으로 후원을 늘려갔습니다. 3호인 딸(16세 중3)은 여초 김응현 선생의 서법 정신을 기리고 서예인을 발굴하기 위해 동아일보사와 인제군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2025 여초서예대전' 중고등부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서예와 전각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은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관계 기관이 추천한 아동 한 명에게 50만원~150만원가량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한부모 가정 중에 엄마가 큰 병에 걸리면서 어린 자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전해듣고 300만원을 후원한 적이 있습니다. 복지관 관장이 기업이 후원한 것으로 알고 찾아왔는데 작은 도장 공방인 것을 보고 놀라워 한 적이 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이들 부부가 3남매에게 강조한 것은 '공부해라', '1등 하라'가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1호인 큰아들이 "우리 집부터 번듯한 데로 이사가고 나서 후원하면 안 되냐"고 볼멘 소리를 한 까닭은 자기 집도 없이 이사 다니는 게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파주에서만 11번이나 이사 다니는 형편인데도 집을 장만하는 일보다 어려운 이웃 돕는 일을 앞세우는 부모의 이해하기 힘든 모습에 항의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신경식 선생은 "아이들에게 잘못한 게 많다"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초등학생인 큰아들의 그림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놀이 공원과 쇼핑에 다녀온 것을 그렸는데 제 큰아들의 그림에는 물품 구입 때문에 간 이마트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주말이면 체험 프로그램 운영으로 더 바빴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러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기부금을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어떻게든 짬을 내면 남들처럼 해외여행도 가고 브랜드 옷을 사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큰아들 중학생 때, 브랜드 패딩이 유행했습니다. 박재미 대표는 큰아들에게 중저가 패딩을 사주었습니다. 그 패딩을 입고 등교한 큰아들이 다음 날부터는 안 입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에게 "요즘 아이들은 브랜드 패딩이 아니면 안 입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브랜드 패딩은 그냥 비싼 옷이 아니라 자존심이라는 말을 듣은 박 대표는 미안한 마음으로 브랜드 패딩을 사주었습니다. 겨울이 끝날 무렵에 이월 상품으로 대폭 할인 판매할 때였습니다. 봄이 왔는데도 겨울 패딩을 입고 다니는 큰아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때면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겐 그래도 건강한 부모가 있지만 고아와 한부모, 병든 부모를 둔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내 자식만 챙기는 건 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들에겐 원하는 브랜드 옷을 사주라고, 학원비를 지원해주라는 단서를 달아서 기부했습니다. 취업에 성공한 보육원 출신 청년에겐 브랜드 옷을 사주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중저가 또는 이웃에게 얻어온 중고 옷을 입혔습니다.

     

엄마 아빠를 이해해주길 바랐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큰아들은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군 입대를 앞두고 엄마아빠와 말다툼을 하고 한 달 동안 가출했다가 입대했고, 외박과 외출을 해도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다고 큰아들에게 사과하고 안아주면서 지금은 관계가 회복됐습니다. 부모와 자식을 이어준 진한 사랑 덕분에 상처가 회복되고 소원했던 관계가 나아졌습니다. 큰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들 부부가 2013년부터 2025년까지 전달한 기부금은 46,332,000원. 사회복지기관 등을 통해 나눈 기부금은 아프리카 말라위 아동과 국내의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 돕는 일에 사용됐습니다.


     

신 선생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초등 6학년 때, 부모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되면서 친척 집과 가출 청소년 쉼터 등으로 떠돌았던 이군(23세)은 고깃집과 떡볶이 가게 알바, 건설 현장과 택배 상하차 등의 일을 하면서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2021년 K대 경영학과에 합격하면서 불행을 이겨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군에 입대한 이군은 심각한 공황 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의가사 제대했고, 제대 후에는 오토바이 배달 알바를 하다 연달아 사고가 발생했고, 나쁜 선배들과 엮이면서 어렵게 모은 돈을 날리는 등 연이은 불행에 의한 스트레스로 피부 백반증까지 생겼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았으면서도, 나쁜 형들의 폭력에 시달렸으면서도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그 고통과 아픔에 지지 않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쏟으면서 홀로 서기를 하는 이군을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달려간 성실한 학생이었고, 저희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할 때도 책임감이 강한 일꾼이었습니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이군이 대학에 복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신 선생이 이군의 복학 장학금을 선뜻 지원해주셨습니다. 박재미 대표는 이군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눈물 흘렸습니다. 최우수 특급전사로 뽑힌 둘째 아들이 강직성 척추염에 시달리다 의가사 제대하는 힘든 과정을 겪은 엄마로서 엄마에게 버림받은 이군이 홀로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이 가슴 아파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군이 복학이란 희망을 선물 받았으니 그 희망을 향해 달려가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못 기뻤습니다.

     

2025년 12월 24일, 성탄절 전야에 박재미 대표가 파주 헤이리에서 운영 중인 미담인 자매상회 '전통찻집 수수'를 방문한 까닭은 사과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오토바이 사고와 우울증 재발 등 상황이 악화되면서 신 선생이 지원한 '복학 장학금'을 '긴급 생활비'로 전용했기 때문입니다. 기부자의 양해를 구하지 않고 생활비로 긴급 지원한 잘못에 용서를 구하기 위한 방문이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질책이 아니라 박재미 대표가 손수 담아서 직접 끓인 수제 쌍화차였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미담인 도장 체험과 인문학 전각 출강 등이 올 스톱 되는 힘든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차와 전각문화를 나누는 전통찻집 수수를 인수해서 운영하게 됐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미담인 매출이 1/3로 줄어서 이를 타개하려고 지난해 11월부터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아이들 돕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 부부는 "죄송한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아이들을 직접 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업의 수익금 중 일부를 지원하고 있으니 죄송하다"면서 "위기에 처한 이군에게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복학보다 생활이고, 생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군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면서 기부금을 전용한 저희를 질책하기보다 오히려 위로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선한 기부금이 불우 아동이 아닌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술값으로 사용되고, 술병이 폭력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을 신 선생은 모르진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기부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불을 켜다가 후원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신 선생은 "후원금이 후원 아동 아버지의 술값으로 사용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전을 막기 위한 전기세와 추위를 달래주는 가스값으로 사용되길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통찻집 수수'의 쌍화차는 제가 먹어본 쌍화차 중에 최고였습니다. 박재미 대표의 쌍화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 참 따뜻했습니다.

     

     

<스마일어게인사회적협동조합>은 부천 지역 중도 입국 이주 청소년을 위한 <어게인학교>(경기공유학교),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카페 <소년희망공장>, 인천가정법원이 위탁한 범법소년 회복교육 등을 진행하면서 학교 밖 청소년 등의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 아기를 돕는 비영리 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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