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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의 부르지 말아야 할 노래

30분 전
5분 분량

#. 1


난민촌에서 태어나

판자촌에서 자란 저는

노점상 아바이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가난과 싸웠지만 지고 말았습니다.

 

자식은 그렇지 않길 바랐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은 못난 아비처럼

가난과 싸워서 지지 말고 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승’(勝)‘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30대 중반의 저는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프레스공으로 일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피를 말리는 야간작업, 새벽 3시 무렵이면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생산량을 맞추어야만 했습니다. 졸음과 생산량의 사투, 졸린 눈을 부라리며 거대한 프레스 기계 앞에서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한눈을 팔다간 손가락이 날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아, 어두운 새벽을 가르는 끔찍한 비명, 동료 노동자의 외마디 비명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곳은 연탄 부엌이 딸린 단칸방, 주인집 방과는 벽 하나 사이여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집주인은 벽을 치며 소리쳤고 아내는 우는 아기를 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가난은 서러웠고 불편했고 막막했습니다. 주야간 교대근무에도 저임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용접공이 되려고 플랜트 제작 공장으로 이직했습니다. 용접공 시다바리로 일하다가 용접 불꽃에 아다리 되면서 눈알이 빠질 것 같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으나 가난의 고통에 비하면 그 고통은 견딜만했습니다.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나의 아들이

아비처럼 가난한 노동자가 되면 안 되는데,

가난에 시달리다 희망을 저버리면 아, 안 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인 저는 용접공이 되려면 까마득했습니다.

집주인이 나가라면, 집세 올리면 어찌할까? 셋방살이가 서러웠습니다.

 

그래도 행복한 날이 없진 않았습니다. 월급날, 시장통 통닭집에서 기름에 튀긴 ‘통닭’ 한 마리를 사서 가족과 함께 먹는 날은 행복했습니다. 가장의 기름땀으로 사 온 통닭을 먹을 때 가족의 표정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당시는 ‘치킨’이 아니라 ‘통닭’이었습니다. 주문하면 오토바이 배달부가 총알 같이 달려와서 “치킨 왔습니다!”라며 치킨과 콜라를 건네주는 배달 ‘치킨’이 아니라 누런 종이 봉투에 담긴 ‘통닭’을 검은 비닐봉지에 사 들고 오던 ‘통닭’, 가족이 좋아하는 통닭을 자주 사 오고 싶었으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주머니 사정으론 언감생심이었습니다.

 

#. 2

 

그렇게 아주 조금 행복했고

아주 많이 불안하고 암담했던 시절에

가슴 미어지는 사건을 노래로 알게 되었습니다.

 

1990년 3월 9일 반지하 연립주택에서 발생한 화재로 어린 남매가 숨진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경비원인 아빠 권씨(30세)와 파출부인 엄마 이씨(27세)는 아침 일찍 맞벌이하러 나가면서 아이들이 밖에 나가 놀다가 길을 잃거나 유괴될 것을 우려해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가 놓았습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간 뒤에 심심했던 어린 남매가 성냥으로 장난하다가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정태춘 작사·작곡 '우리들의 죽음' 중 일부)


가객 정태춘 선생이 이 사건을 ‘우리들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저는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서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매의 아버지 권씨가 바로 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기에 질식해 숨진 다섯 살 혜영이와 세 살 영철이가 내 아들이 크면 그렇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3


진이(가명·11세) 부모는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온 동포입니다. 아빠(44세)는 한국에 돈 벌러 먼저 왔고 엄마(37세)는 지난 8월에 진이 남매를 데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 돈 벌러 온 중국동포 이주 가정 중에는 가족이 해체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이산의 아픔을 각오했지만 ‘코리안 드림’이 가족을 희생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저런 사건으로 가정이 해체된 것입니다. 진이네 부모님은 이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가족 전체가 한국으로 이주한 것입니다. 

 

문제는 진이 남매가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천의 다수 학교들은 한국어가 준비되지 않은 중도입국 이주 아동과 청소년들을 받아줄 형편이 아닙니다. 물론 일부 이주 청소년에게 한국어 등을 가르치는 ‘예비학교’가 운영되고 있긴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진이 남매처럼 어린 이주 아동들이 한국어 교육과 한국 생활 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공적 기관을 찾기란 매우 힘든 실정입니다.

 

게다가 진이 엄마는 화재 사고로 남매를 잃은 권씨 부부처럼 맞벌이해야만 하기에 가정에서 가르치고 돌볼 형편이 아닙니다. 진이 엄마가 한국으로 오기 전에 돌파구를 찾았는데 그것은 부천으로 먼저 이주한 중국동포 커뮤니티를 통해 ‘어게인지역아동센터’(어게인)를 소개받은 것입니다. 중국동포들은 아마도 '어게인에 가면 아이들 교육 문제는 해결된다!'고 큰소리치며 소개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이 엄마가 한국에서 살 집을 어게인 근처로 얻은 것은 교육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어게인지역아동센터가 정원(24명)을 훨씬 초과한 40명을 넘긴 상태라는 것입니다. 어게인은 이주·다문화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비영리 민간 교육공동체인 동시에 부천시로부터 인가(認可)받은 지역아동센터입니다. 부천시는 정원(24명) 초과한 이주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운영비와 급식비 지원은 할 수 없다면서 이주 학생들을 더 이상 받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한 상태입니다.

 

어게인의 이주 아동과 청소년은 10월 27일 현재 42명인 가운데 입학 대기 중인 아이들이 10명 넘습니다. 진이 엄마는 지난 8월 28일 어린 남매를 데리고 무턱대고 찾아왔습니다. 상식으로 보면 절차와 경우에 어긋난 것이지만 가난한 동포 부부가 자식의 미래와 희망을 위해 낯선 땅으로 이주했는데, 어게인이 아니면 아이들 맡길 곳이 없다면서 통사정하는데 어떻게 문전 박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게인이 받아주지 않으면 진이 남매는 화재로 숨진 혜영이와 영철이처럼 방안에 갇혀 지내야만 합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니 밖으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엄마가 밤늦게 귀가할 때까지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정원 초과에 초과가 되고 경고에다 추가 경고받을 각오를 하고 진이 남매를 받아들였습니다.

 

누나 진이와 남동생 혁이(가명·9세)에게 한국어 가르칠 전담 교사를 구했습니다. 정원 초과와 함께 교육 공간 또한 초과 상태, 겨우 마련한 공간에 책걸상을 놓았습니다. 진이 남매를 가르치던 원봉샘은 알은 품은 엄마 닭 같은 심정으로 어린 남매를 얼마나 정성껏 가르치던지요. 그런데 수술 문제로 잠시 떠나면서 그 빈자리를 이어받은 선화샘은 하늘의 명을 받은 듯 온 정성을 다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이 남매가 밥은 또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요. 어게인에 온 지 두 달 남짓, 남매의 얼굴에선 불안함이 걷히면서 밝은 웃음을 짓습니다. 한글 공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진이 남매뿐이 아닙니다. 3형제를 혼자 키우는 미얀마 엄마(42세)의 아이들은 구로구 개봉동에서 부천에 있는 어게인까지 찾아와 공부하며 따뜻한 밥을 먹고, 지난 2026년 8월 26일 한국에 온 현이(가명·16세)는 인천 동암에서 물어물어 찾아옵니다. 어게인은 공교육 기관에 비해 시설은 한참 부족하고 재정과 예산은 넉넉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라도 살려야한다는 하늘의 명에 순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타국에 온 어린 나그네들을 선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4


풍요롭고 풍부한 시대입니다.

냉장고엔 각종 음식들이 가득 차 있고

가가호호 자가용이 1~2대는 기본이고 3~4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한겨울에 반 팔 차림을 해도 춥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집에서 지내면서

각종 배달 음식으로 편하게 먹고 마십니다. 다만 고민은 살을 어떻게 뺄까?

 

가난한 시대가 끝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난은 이제 나와 상관없다’고 선 긋는 사람들에게 본디오 빌라도는 ‘그리 쉽게 선을 긋지 마시오’라고 만류할지도 모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 수 천 년을 오명에 시달리고 있는 사도신경 속의 빌라도는 개떼처럼 달려드는 무리들의 함성에 질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면서 아무 죄가 없는 예수를 넘겨준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난은 피와 같아서 씻는다고 해서 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을 알 것입니다. 


누구도 가난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꽃도 피워보지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죽게다니요. 이런 사회가 어떻게 부요한 사회이며, 어떻게 선진 사회일 수가 있겠습니까. 36년 전, 화재로 숨진 남매의 죽음은 그 아이들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들의 죽음’이라고 노래한 정태춘 선생의 노래는 그래서 아팠고, 지금 들어도 너무 아픕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죽음’은 다시 부르거나 만들어져선 안 될 노래입니다.

 

어게인의 아이들은 곰팡이 핀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빠의 폭력에 시달리고, 공장에 다니는 엄마는 잔업에 지쳐서 밤늦게 귀가합니다. 한국 국적의 빈곤 아동과 청소년들은 기초 생활 수급비 등의 도움을 받지만 한국에 온 이주 아동·청소년들은 도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갑니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면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인구절벽 한국에 도움이 될 소중한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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