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생각해서 미안해"
- 승주 최
- 2021년 7월 7일
- 4분 분량
[소년이 희망이다 3화] 2016-03-28
※ 이야기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기 이름은 가명입니다.

자녀 양육을 선택한 미혼모는 철부지가 아닌 영웅. ⓒ 임종진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의 품. ⓒ 임종진
이 세상에서 가장 그리운 이름. 이 세상 고락(苦樂)에 지친 몸 의지할 곳 없을 때 달려가서 엄마, 엄마, 우리 엄마..그 이름 부르면 포근하게 안아주는 엄마는 안식처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품입니다.
그런데, 슬픈 이름이 있습니다.
미혼모입니다
생명을 낳았지만 위로와 축복은 없습니다. 청소년 미혼모(24세 이하)에 대한 낙인은 혹독합니다. 가족들은 딸의 출산을 수치로 여기고 세상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낙태와 영아유기 등의 배경입니다. 10대의 경우 매년 1만 5000여 명이 임신하고 1만 1000여 명이 낙태한다고 합니다. 미혼모 차별 사회가 조장한 살인 행위입니다.

생명을 마구 지우는 사회 ⓒ 임종진
이 가운데 3000~4000여 명은 출산한답니다. 40%는 국내외로 입양되고 60%는 미혼모가 양육한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양육 미혼모의 증가 추세입니다. 하지만 양육과 공부, 자립 등 미혼모의 짐이 무겁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미래가 어두운 이 나라에서 자녀 양육을 선택한 미혼모는 철부지가 아닌 영웅입니다. 생명을 구하면서 나라의 미래를 밝힌 어린 영웅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두 명의 미혼모와 자립에 성공한 한 엄마를 만났습니다. 세 사람의 삶은 엄마가 되면서 크게 바뀌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품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양육하고, 공부하며, 자립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희망 찾기를 들려드립니다.
백일잔치 축복받은 아기는 장군감
선생님의 덕담 "심성 고운 제자, 잘될 것"

미혼모 아기의 백일잔치 ⓒ 조호진
지난 8일 애란원(대표원장 강영실) '청소년 미혼모자 공동생활가정'에서 세훈이 백일잔치가 열렸습니다. 정희(18)는 4.36kg로 태어난 아들 세훈이를 안고 함박 웃습니다. 우람한 세훈이는 장군감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일곱 명의 어린 엄마들이 세훈이를 축복합니다.
"아프지 말고 잘 커라!"
"엄마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라!"
"왕자님처럼 축복받은 아이로 크길 바란다!"
정희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임신했습니다. 3개월 무렵에 임신 사실을 알고 낙태를 생각했습니다. 부모님께는 8개월 때 말씀드렸습니다. 처음엔 지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내 핏줄을 어떻게 입양 보내겠냐면서 낳아 키우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주위의 시선이었습니다. 성적이 우수해 상위권 대학을 준비했던 정희는 담임선생님께 자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애제자의 상황에 속상해하던 선생님은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공부할 수 있는 애란원을 안내했습니다. 제자의 아기가 태어나자 먼 발걸음으로 찾아와 축하해 주셨습니다. 아기 옷과 돈을 선물로 주신 선생님(52)은 24일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희는 심성이 곱고 부모님은 따뜻한 분이어서 아기를 잘 키울 겁니다. 임신 당시, 친구들은 정희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 했고 학교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희를 통해서 학생들과 교사 간의 신뢰가 더 쌓였습니다. 학생들의 임신과 낙태 심지어, 영아유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학생들이 생명을 존중하면 참 좋겠는데.."
백일 아들에게 쓴 편지..감기에 걸린 아들 대신 아파주고파

백일 아들에게 쓴 편지 ⓒ 조호진
정희의 꿈은 유치원 교사입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품은 희망입니다. 이를 위해 애란원이 운영하는 '나래대안학교'에 다닙니다. 아기 돌보고, 공부하고, 자립 준비하느라 바쁘지만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주말이면 세훈이를 안고 미혼부인 고3 남자친구 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 갑니다. 임신 당시엔 옥신각신했는데 지금은 양가 부모님이 세훈이를 너무 예뻐합니다.
어린 엄마가 백일 맞은 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봄날처럼 따뜻한 속삭임입니다.
안녕 세훈아? 100일 된 거 축하해. 엄마 품에서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 조금만 더 지나면 뒤집고, 기어 다니고 더욱더 많이 지나면 걷고 뛰고 장난 아니겠네. 나중에 크면 동물원도 가고 벚꽃 보러 가고 놀이동산도 가자. 네가 크는 게 무섭기도 하지만 같이 손잡고 돌아다닐 생각을 해보면 빨리 컸으면 좋겠어.
엄마가 처음에 두렵고 무서워서 세훈이를 숨기고 또 나쁜 생각도 해서 미안해. 엄마가 세훈이를 위해서도 열심히 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엄마가 사랑 많이 주고 또 사랑 많이 받게 하고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해줄게. 지금 코도 막히고 기침도 해서 컨디션도 안 좋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엄마도 힘들기만 하네. 차라리 대신 아파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얼른 나아서 웃는 모습 보여주고 활기찬 모습 보여줘. 엄마가 사랑해.
아기 키우며 공부하는 소녀의 꿈은 대학진학과 사회복지사

학생 미혼모를 위한 '나래대안학교' 수업 장면 ⓒ 임종진
나래대안학교는 애란원이 운영하는 학생 미혼모 대안학교입니다. 각 교육청으로부터 미혼모 학생들을 위탁 받아 가르칩니다. 학적은 재학했던 본교에 있고 졸업장도 본교에서 받습니다. 서울시 서대문구 대신동에 학교를 신축중인 가운데 임시교실을 운영 중입니다.
지난 15일 서울시 마포구 임시교실에서 만난 고교 2학년 희진(18)은 쾌활한 소녀입니다. 하지만 웃음 뒤엔 아픔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세 살 때 이혼했고, 떠난 엄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빠마저 망망대해를 표류하면서 떠돌이가 된 희진은 쉼터에서 생활했습니다. 너무 외로워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엄마가 없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임신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퇴했습니다. 2014년 9월 1일, 애란원에 들어와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대개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데 희진은 아빠가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요양원에 누워 계신 아빠는 올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학생 엄마의 꿈은? ⓒ 임종진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희진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습니다. 엄마가 되면서 더욱 눈물을 훌훌 털어 버렸습니다. 이젠 소녀도 혼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쾌활 소녀 희진에게 두 가지 질문했습니다.
힘든 점은?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는 것. 그리고 아기가 고집피울 때."
좋은 점은?
"혼자였을 때는 외로웠는데 아기를 낳으면서 외롭지 않게 된 것.
그리고 아기가 말을 하며 재롱을 피울 때."
희진은 아기를 데리고 요양원에 계신 아빠에게 갔습니다. 자신처럼 인생이 부서질까봐 딸의 출산을 반대했던 아빠는 손자를 보자 기뻐했습니다. 불쌍한 아빠에게 드린 최고의 선물입니다. 눈물 대신 웃음, 절망 대신 희망을 택한 위대한 영웅 희진에게 또다시 두 가지 질문했습니다.
꿈은?
"대학교에 진학해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것!"
희망은?
"사랑하는 내 아들을 예쁘게 잘 키우는 것!"
미혼모 아픔과 눈물 딛고..
자격증 취득→취업→저축→자립 성공

아픔의 눈물 대신 자립의 눈물을 흘리는 미혼모 엄마에게 갈채를. ⓒ 임종진
세무사무소 과장 윤선(33)씨는 워킹 맘입니다. 꿈은 세무사가 되는 것이고, 목표는 방송통신대 졸업장을 받는 것이고, 희망은 예쁜 딸(8)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온 삶을 보니 세 가지 모두 성취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고의 엄마 윤선씨를 응원합니다.
"내 자신 말고는 믿을 구석이 없었습니다."
2009년 당시 미혼모 처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갈 곳도, 기댈 곳도 없던 윤선씨는 애란원에 입소했습니다. 애란원은 미혼모 직업교육과 자격증 취득 그리고, 취업에 집중 투자합니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윤선씨는 전산세무회계 교육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세무사무소에 취업했습니다.
취업하자마자 청약저축에 가입했습니다. 정기적금, 희망키움통장, 장기우대저축통장…, 조약돌로 돌탑을 쌓듯이 한푼 두푼 모은 윤선씨는 LH 한부모가족 전세임대주택에 입주해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통장이 6개입니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엄마와 딸의 앞길에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아비 없는 자식?
타인 배려하는 어린 딸과 엄마 "딸 때문에 큰 어른 돼"

미혼모 자립시설 '애란모자의집'에선 12가구 24명의 엄마와 아기가 생활한다.
ⓒ 임종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일곱 살이던 지난해, 지하철을 타고 가다 어린이집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아빠에 대해 물었습니다. 엄마아빠와 함께 가던 그 친구는 모녀지간인 친구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것입니다. 딸아이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윤선씨는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한부모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양부모 가정 못지않게 아이를 키우려고 애씁니다.
이들 모녀의 삶은 어떤 가정보다 성숙합니다
"아이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키웁니다. 동시에 타인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가르칩니다. 딸아이는 엄마가 안아주는 걸 좋아하지만 친구가 있을 때는 안아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하고 싶은데 못하면 속상하잖아, 우리 둘이 있을 때 안아줘!'라고 속삭입니다. 친구를 배려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제가 큰어른이 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윤선씨의 꿈과 희망은 하늘색입니다. 거리에서 만난 강아지에게도 인사하는 예의바른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세상을 선물하기 위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윤선씨는 여자로선 약했지만 엄마가 되면서 강해졌습니다. 찬사 받아 마땅한 그대는 위대한 엄마이고 희망의 주인공입니다.

저 아기 손에 희망을! ⓒ 임종진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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