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목자 김명현

[소년이 희망이다 2화] 2016-03-21


※ 기사에 등장하는 소년소녀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의사 대신 목사의 길을 선택한 김명현 목사. ⓒ임종진


지난 2월~3월 내내 김 목사를 취재했습니다. 참 힘들었습니다. 공동체를 만들고 수많은 사업을 하면서도 대표나 회장 등의 그럴싸한 직함이 없습니다. 선한공동체 서번트(봉사자) 다섯 명 중에 한 명일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학대아동 그리고 장애인을 20년 넘게 섬겼으니 자랑할 게 많을 텐데도 묵묵합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와 주변을 한 달가량 취재해야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 출연 제안을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목사와 선교사 등 기독교계 인사들은 이 프로그램 출연을 선호합니다. 방송을 타면 유명해질 수도 있고 도움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세도 큰 조직도 원치 않는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냥 살다 가고 싶어합니다.


아프리카 품은 의대생, 구로공단 야학 교사 하면서 궤도 수정

구로공단 야학 교실에서 공부 중인 여공들. 슈바이처를 꿈꾸던 의대생은

구로공단 야학 교사를 하면서 인생의 길을 바꾼다. ⓒ김명현


그의 꿈은 슈바이처와 같은 의사였습니다


의사가 돼 아프리카에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아프리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곳은 구로공단입니다. 육사 출신 군인 아버지와 교사 출신 어머니 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구로공단 야학 교사를 하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13세 소녀는 계부의 폭력에 시달리다 공장에 왔고, 시골 출신 15세 소녀는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식사때문에 위장병을 앓았습니다. 여공들을 가르치고 몸 아픈 소녀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던 의대생의 고민은 점점 커졌습니다. 가난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한 어린 여공들과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소녀의 꿈을 빼앗는 세상..부조리한 이 세상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온 소녀들. 의대생 김명현은

소녀들의 아픔을 보면서 아프리카의 꿈을 버렸다. ⓒ김명현


하나님 보러 갈 짬이 없어요 새벽 별 보며 일터에 가고 어스름 등에 지고 돌아오는 나날 조출 잔업 특근 철야 그물에 갇혀 일에 쫓기다 바라본 창 밖 새까만 연기 하늘을 가려 닫힌 하늘 문 두드려도 열리지 않고 하나님 보러 갈 짬이 없어요

고승하 작곡 '여공일기' 가사 전문


기독교인 전태일은 가난한 사람은 왜 종교생활 권리마저 없느냐면서 노동자를 기계 취급하는 세상에 항의했습니다. 일요일 특근 때문에 종교 생활할 짬도 없는 소녀들 앞에서 아프리카의 꿈은 낭만이었습니다. 2년가량 방황하던 그는 중앙대 의대 의예과를 그만두고 연세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교회 건물 대신 공동체 세운 목사..아이들 아픔 치유하는 선한공동체


전세와 월세로 사는 샬롬빌리지를 집주인이 팔겠다고 내 놓으면서 고민이 깊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나! ⓒ임종진


김명현 목사는 교회 건물이 없습니다. 목회 초기에 교회를 개척했지만 교인들은 다 떠났습니다. 불우 소년과 장애인 등을 돌보는 힘겨운 사업 때문입니다. 교인들은 교회 건물을 좇아 떠났지만 그는 교회 건물 대신 가난한 공동체를 선택했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건물이 아닌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야학교사와 결혼한 그는 부천의 가난한 동네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네 명의 자녀들도 가난하게 키웠습니다. 부천역 거리 소년들에게 5년째 밥을 주고 있는 그의 아내는 고된 사업에 종종 눕더니 급기야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도와야 할 이웃들은 늘고 할 일은 많아지는데 몸은 점점 쇠약해진다"고 탄식합니다.


가도 가도 힘겨운 가시밭길입니다


김 목사의 '선한공동체'는 부천시 소사구 기찻길 옆에 있습니다. 지나는 전철과 뛰노는 아이들로 늘 시끌벅적합니다. 선한공동체가 운영하는 대안가정 '샬롬빌리지' 6가구에는 10여 명의 고아와 장애인이 살고 있습니다. 한참 많을 때는 20명이 넘었습니다. 거리 소년들도 데려와 살았습니다. 샬롬빌리지 아이들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샬롬빌리지 6가구에선 학대아동과 장애인 등 10여명이 1인 1실에서

생활한다. ⓒ임종진


현미 남매는 아빠에게 학대당했습니다.


초등학생 현미는 아빠와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까지 당했습니다. 법원은 친권을 박탈했고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남매를 시설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부모 잃은 남매를 떼어 놓다니..비인간적 처사에 항의하던 김 목사는 남매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샬롬빌리지에서 10년 넘게 살던 현미(22)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 중입니다.


할머니에게 맡겨진 미연(17)이는 삼촌에게 학대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학교는 이 사실을 알고도 덮어버렸습니다. 학교를 떠난 미연이는 쉼터 생활 중에 만난 언니들에 의해 모텔에 감금당한 채 성매매를 강요당하다 경찰에 구출됐습니다. 환청과 우울증, 정신분열 등에 시달리던 미연이는 샬롬빌리지에 와서야 악몽에서 벗어났습니다. 미연이는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외로울 땐 애완견 '감자'를 안는다. ⓒ임종진


은아(19) 세연(16) 남매와 연미(22)는 지적장애인입니다. 시설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샬롬빌리지 아이들은 1인 1실에서 지냅니다. 아동보호시설과 그룹홈에선 상상할 수 없는 생활 조건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훈이의 방은 개구쟁이답게 투박하고 연미의 방은 소녀답게 예쁘게 꾸며졌습니다. 빨강 스웨터를 입은 연미가 수줍어하며 방을 보여주었습니다.

10년 넘게 아이들을 돌보는 정봉임(43)씨는 이모로 불립니다. 그는 "8년 전에 훈이를 맡기고 간 할아버지는 그 뒤로 연락을 끊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버렸고, 할아버지는 연락을 끊었는데도 아이는 간혹 핏줄을 그리워한다."라며 안타까워합니다. 아이의 맘을 울리는 그리움, 전철은 기적(汽笛) 소리도 없이 어둠을 흔들며 지나갑니다.


운영 주체는 봉사하는 구성원들..지원금 거절 이유 "비인간적 운영 때문에"


김명현 목사는 "조건에 따라 돌보고 외면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임종진


선한공동체 운영 주체는 서번트입니다


서번트가 되려면 3년이란 인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서번트는 김 목사 부부와 정봉임, 박현주씨를 비롯해 모두 다섯 명입니다. 선한공동체는 헌금과 후원금, 월급 등의 수입을 공동 재정으로 운영합니다. 직장 생활하는 서번트는 월급을 공동체에 내 놓습니다. 각각의 서번트에게 분배된 월 사례비가 어떤 때는 30만원 어떤 때는 월 100만원..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기에 가능하답니다.


3년째 인턴 생활 중인 조형래(34)씨. 캐나다 유학생 출신으로 부동산중개사였던 그는 16세, 17세 장애인 소년과 한 가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 고민을 물었더니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전셋집 주인이 집을 팔려고 내놨으니 이사 갈 준비하라고 통보했다"고 말합니다. 인턴 생활이 힘들다 면서도 아이들과 살아갈 집을 더 걱정합니다. 서번트 한 명이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선한공동체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을 받지 않습니다. 지원금을 받는 순간 아이들이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김명현 목사는 "지원금을 받으면 성년이 된 아이들은 보내야 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조건에 따라 돌보고 외면하는 것은 가족이 아닙니다. 선한공동체는 아이들을 무한책임진다"면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선한공동체는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

켜주기 위해서다. ⓒ임종진


"아이들의 문제를 놓고 어른들이 선택하는데 그건 옳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신앙이든, 살고 싶은 방이든,진로든, 삶이든 무엇이든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리를 주어야 합니다. 선한공동체 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고결정합니다. 설령 힘든 결정을 해도 존중합니다. 실패와 아픔 또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산 없으면 중단 되는 사회복지 시스템 VS 헌신과 희생으로 돌보는 공동체


"누가 돕지 않으면 심각해지는 학대 방임 아이들..저희는 아이들 놓지 않습니다!"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에 위치한 두루두루는 지역공동체 식당 겸 카페다.


선한공동체는 샬롬빌리지 외에도 '쉴터'(장애아동지원센터) '좋은 친구'(장애우자립생활공동체) '물푸레나무'(거리청소년지원센터)' '사마리아-인'(청소년예비가정) '두루두루'(식당 겸 카페) 등도 운영 중입니다. 정부 지원금도 받지 않으면서 이 많은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 김명현 목사가 운영 비결을 들려줍니다.


"사회복지기관과 아동보호기관들은 인건비와 사업비를 확보해야 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선한공동체는 헌신과희생으로 이웃을 섬깁니다. 누구도 인건비를 받지 않습니다. 위기 가정이 도움을 요청하면 달려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아이들 생명이니까요."

아빠에게 맞아 죽은 부천 여중생, 계모 학대로 숨진 일곱 살 신영이, 욕조에서 숨진 네 살 어린이..예산과 인건비가 없으면 중단되는 사회복지 서비스, 아이들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사각지대에서 희생됐습니다. 지원금과 인건비 없이도 운영되는 선한공동체 쉴터는 학대와 방임 아동을 13년째 돌봅니다. 박현주(57) 선한공동체 서번트이자 무보수 센터장의 말입니다.


두루두루는 동네 아이들의 사랑방이다. 책도 읽고, 놀고, 떠든다. ⓒ임종진


"학대와 방임 아동의 부모는 주로 한부모, 알코올중독, 정신질환, 장애인입니다.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방안에서 대소변 보고 자고먹습니다. 가정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씻기고, 준비물 챙겨 학교 보내고,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하고, 공공주택에 살도록 돕습니다.

누군가 돕지 않으면 가정과 아이들은 더 심각해집니다. 자식을 두고 죽어가는 한 엄마 앞에서 아들을 끝까지 챙기겠다고 약속한적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박 센터장은 정우(22)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떠나요. 정우는 내가 챙길 게요"라고 약속했습니다. 그제 서야 정우 엄마는 눈을 감았습니다. 박 센터장은 정우 엄마에게 약속한 대로 지적장애인 정우를 10년째 돌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손을 놓지 않겠답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와 사는 철호(15)도 박 센터장이 오래 손잡고 있는 소년 중 한 명입니다.


철호를 방치하던 엄마는 떠났고 간혹 나타나는 아빠의 폭력은 끔찍합니다. 철호는 학교와 동네의 골칫거리입니다. 급우들은 물론이고 선생을 죽인다고 위협할 정도입니다. 쉴터 멤버들은 3년 동안 철호를 돌봤습니다. 집안 청소를 해주고, 밥해주고, 목욕탕에도 데려가자 철호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중학생 철호는 학교 끝나면 쉴터에 와서 놀고, 씻고, 밥 먹은 뒤에 귀가합니다.


정부와 기관만으로 아이들 못 지켜..아동보호의 최고 해법은 지역공동체


동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무료로 퍼주는 공동체. 밥의 힘이다. ⓒ임종진


김명현 목사는 날마다 '두루두루'에 갑니다.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에 위치한 두루두루는 지역 기업인과 시민단체 그리고 선한공동체가 합심해 지난해 9월 문을 연 식당 겸 카페입니다. 도당동 공원에서 3년 동안 무료 밥차를 하던 선한공동체가 운영을 맡게 됐습니다. 김 목사가 지역공동체에 힘쓰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기 위해서입니다. 이웃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두루두루에는 하루에 40~50명의 동네 아이들이 찾아옵니다. 핫 초코와 스무디 그리고 밥까지 일체 무료입니다. 두루두루로 인해 아이들은 행복해졌고 동네는 안전해졌습니다. 지역공동체가 복원되면서 크리스마스와 대보름 행사를 함께하면서 동네에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합니다


끔찍한 뉴스에 원성이 자자하고 정부는 여론무마에 급급합니다. 구호성 대책은 원성이 그치면 유야무야됩니다. 이에 대해 김 목사는 "정부와 아동기관 만으론 아이들을 지켜줄 수 없다"면서 "지역공동체를 만들면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가출 등의 조기 발견과 보호조치가 가능하다"면서 중훈이와 은정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김 목사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최고 예방과 대책은 지역공동체"라고 강조한다.

ⓒ임종진


중훈(19)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네 옥상과 공원에서 노숙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지역 기관 등은 이를 알면서도 외면했습니다. 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공동체를 통해 중훈이 사정을 알게 된 김 목사는 선한공동체로 데려왔습니다. 처음엔 눈 마주침도 잘되지 않았는데 이젠 종종 웃고 이야기도 곧잘 합니다. 중훈이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두루두루는 은정(15)이 치아를 치료해주기로 했습니다. 은정이는 엄마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할 처지입니다. 은정이의 심각한 치아를 방치하면 치아뿐 아니라 소녀의 꿈과 희망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두루두루 공동체는 500만 원의 치료비 중 50%를, 나머지 50%는 맘씨 좋은 치과 원장님이 부담키로 했습니다.

2년간의 치료를 마치면 소녀의 웃음이 환해질 것입니다.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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