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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부천역 아이들

[소년이 희망이다 1화] 2016-03-16


* 기사에 등장하는 소년소녀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누가 거리 소년이 되게 했을까? ⓒ 임종진


한 소녀가 죽었습니다


죽어도 너무 오랫동안 죽었습니다. 해변에서 발견된 난민 꼬마 쿠일란의 주검은 안아줄 수라도 있었지만 아빠에게 맞아 죽은 백골 여중생은 심하게 부패돼 안아줄 수 없었습니다.


소녀를 안아주려면 살았을 때 안아주었어야 했습니다. 아빠의 폭력 좀 말려달라고, 지옥 같은 집에서 나 좀 꺼내달라고 구조 요청할 때 손을 내밀었어야 했는데 아무도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소녀여, 미안합니다.


숙박업소와 유흥업소 밀집지역인 부천역은 수도권 가출청소년의 집결지. ⓒ 임종진


2월부터 3월까지 부천역을 찾았습니다. 거리 소년들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부천역 일대에는 저렴한 노래방과 PC방, 당구장과 만화카페, 그리고 주민증 없이도 이용할 수 있는 여관과 모텔 등 숙박시설과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어 수도권 가출 청소년들이 주로 모이는 곳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은 28만명, 가출청소년은 20만 명 가량 가운데 가정해체로 돌아갈 가정이 없어졌거나 가정폭력 때문에 귀가할 수 없는 소년이 12~14만 명가량 추산됩니다. 거리 소년의 70%는 이혼, 재혼, 한부모, 조손가정 출신이며 이들 중 30%는 하루에 한 끼 먹거나 며칠씩 굶기도 합니다. 가정을 탈출하지 못한 여중생은 죽었고 여중생 오빠는 거리로 탈출해 살았지만 빵을 훔치다 붙잡혀 소년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거리 소년들은 앵벌이와 갈취, 절도와 성매매 등으로 생존합니다. 알바를 하기도 하지만 주거가 불안정한 탓에 지속하진 못합니다. 아이들을 알바로 고용한 어떤 어른은 최저임금마저 떼어먹습니다. 무정할 뿐 아니라 비열한 거리입니다. 이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훔치고 빼앗는 아이들..하지만 자비와 용서만은 훔치지도 빼앗지도 못합니다. 거리 소년들은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버려졌습니다. 표도 없고, 부모도 없고, 편들어 줄 누구도 없기 때문입니다.


훔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천막 식당 '청개구리 밥차'

훔치고 빼앗지 않아도 밥 먹을 수 있는 천막 식당. ⓒ 임종진


부천역 거리 소년들은 매주 목요일 밤이면 무료 심야식당 '청개구리 밥차'를 찾아옵니다.

훔치고 빼앗지 않아도 먹고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고민 상담도 하고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도움도 받습니다. 2011년 문을 연 천막 식당은 부천 북부역 먹자골목 상상마당 귀퉁이에 있습니다. 천막 식당 주요 고객인 거리 소년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4~5년 단골손님입니다.


천막 식당 운영자인 이정아(49)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 대표는 부천 토박이입니다. 숙명여대 1학년 시절 복사골야간학교 국어교사를 시작으로 30년가량을 부천지역 불우소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의 유년은 불우했습니다. 금형 기술자였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이후 술에 의지한 채 방황하면서 가족들의 고통이 심각했습니다.


불우함이 소명으로 변한 건 어머니를 따라 기도원을 다니던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나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렇게 아팠던 이정아 대표는 엄마의 마음으로 소녀들을 안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소녀들이 가슴속에 꽁꽁 숨겼던 끔찍한 사연들을 꺼냈습니다.


"피투성이 되도록 때리던 친아빠에게 버림받은 뒤 재혼한 엄마와 살면서 두 번째 아빠인 새아빠에겐 가정폭력을, 세 번째 새아빠 에겐 성추행을 당한 16세 소녀. 친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자해하고 방황하는 18세 소녀. 아빠처럼 변호사로 만들려는 엄마에게 공부와 폭력에 시달리다 거리로 탈출한 15세 소녀, 깡패에게 납치돼 성폭행 위기에 처했 다며 도움을 청한 15세 거리 소녀.."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는 천막 식당. ⓒ 임종진


그런데 천막 식당에선 울고 웃습니다.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종종 웃는 소녀들, 천막 식당은 가정폭력에 희생된 아이들의 야전병원입니다. 세상이 천막 식당 같다면 아이들은 훔치거나 빼앗지 않을 것입니다. 천막 식당이 날마다 열리고, 더 많아진다면 소년 범죄는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과 보드게임을 하거나 악기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소년의 모습 그대로 살면 참 좋겠습니다.


새아빠의 폭행..


"엄마가 식칼로 자살을 시도했어요."

"맞으려 태어난 것도 아닌데..맞지 않는 거리가 편해요."

거리 소년의 아픔과 눈물, 그 누가 달래주고 안아줄까요. ⓒ 임종진


"새아빠에게 흉기로 여러 번 찔려서 다쳤어요. 새아빠가 너무 무서워요."

민우(21)는 새아빠의 폭력 때문에 거리로 탈출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 이혼으로 보육원에서 지내던 민우가 엄마와 다시 살게 된 것은 엄마가 재혼한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새아빠는 주먹질에 그치지 않고 쇠파이프와 식칼까지 휘둘렀습니다. 경찰이 몇 차례 출동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가정문제로 치부된 것입니다.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쳐야 가정폭력으로 취급합니다.


"내가 맞고 칼에 찔린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엄마를 때리는 것은 참을 수 없었어요. 새아빠가 엄마를 쇠파이프로 때리려고 해서 막다가 다쳤어요. 어느 날은 엄마가 자살하려고 했어요. 잠긴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더니 엄마가 식칼로 자살을 시도해 병원에 간 적이 있어요. 새아빠의 폭력이 너무 무섭고, 폭력에 시달리는 엄마는 너무 불쌍해요."

민우는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고 도망 나왔습니다. 흉포한 새아빠에 맞섰다면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을 것입니다. 힘도 맘도 약한 민우지만 천막 식당에선 일등 봉사자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성실하게 봉사한 착한 청년 민우, 새아빠의 폭력 때문에 거리를 떠도는 민우는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철호(19)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가출했다고 했습니다. 딴 여자와 사는 아빠는 소주병과 유리컵을 집어던졌다고 했습니다. 칼을 든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철호가 담배를 물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맞을 때는 아빠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차마 그럴 순 없어서 도망 나왔어요. 맞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살면서 맞은 기억 밖에 없어요. 세상에서 집 나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잖아요. 그래도 거리가 편해요. 아빠에게 맞지 않아도 되니까요."

철호를 안아주었습니다. 천막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어서인지 가만히 안겼습니다. 가출한 철호는 물건을 훔치고, 잡히고, 재판받고, 소년원 가고, 나와서 보호관찰받다가 도망가고, 구인 당해 또 소년원을 갔다 왔다고 했습니다. 철호에게 "오늘은 어디서 잘 거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잘 데가 없어요, 부천역 어디서 자거나 그냥 밤새도록 돌아다닐 거예요.

근데, 새벽이 가장 힘들어요. 그때가 가장 춥거든요."

가출팸의 꿈은 헤어디자이너, 가수 그리고 작가


봄비 그치면 봄꽃 필 텐데 소년의 꿈은 언제쯤 필까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못해 단전 단수된 가출팸의 월세방.

어둠 속이라고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 임종진


영진(20)이는 주희(22) 누나가 얻은 월세방에서 철민(19), 지혜(17), 민애(15)와 함께 삽니다. 영진이는 지난 2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나왔고, 철민이는 소년보호시설에서 6개월 살았습니다. 지혜와 민애는 보호처분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이들은 부천역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이들은 배고픔 못지않게 외로움도 견디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살게 됐다고 했습니다.



지난 3일 늦은 밤, 부천역 근처의 월세방을 방문했습니다. 방문을 여니 소년들의 인생처럼 캄캄했습니다. 월세와 관리비가 밀리면서 단전, 단수, 가스까지 끊긴 것입니다. 전기밥솥이 콘센트에 꽂혔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영진이가 밥차에서 얻어온 밥과 반찬을 먹이려고 주희와 민애를 깨웠지만 어둠에 파묻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영진이와 철민이 그리고 지혜와 함께 소주에 과자를 안주 삼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는 자정을 넘겼고 담배연기는 자욱했습니다.


철민이는 엄마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무 일찍 떠난 것입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화를 내고 때린다고 했습니다. 철민이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3세 때 부모에게 버려졌다고 했습니다. 아빠가 재혼한 8세 때부터 함께 살았지만 새엄마의 학대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학교 3학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실수록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와 자해와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습니다.


영진이가 고아 출신 성악가 최성봉 씨를 이야기했습니다. "껌팔이 생활하며 폭력배에 시달렸던 그 사람도 살았는데 왜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니. 살려고 하면 살길이 있다. 우리에겐 나쁜 기억도 있지만 좋은 기억도 있다. 부모에게 맞고 싸운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던 아이들이 감추었던 꿈과 희망을 꺼내 놓았습니다.


"제 꿈은 헤어디자이너입니다. 소년원에서 미용사 자격증도 땄고, 미용사로 봉사도 했습니다. 헤어디자이너가 돼 동생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 영진 -


"제 꿈은 가수입니다. 아픔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 철민 -


"저처럼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 지혜 -


봄비 쏟아지던 지난 5일, 영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월세방에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비를 피할 곳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소년의 통장에 얼마의 돈을 부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봄은 부치지 못했습니다. 봄비 그치면 봄꽃들이 무수히 필 텐데 거리 소년들의 꿈은 언제쯤 피어날까요.


[인터뷰] 이정아 대표 "거리 소년에게 대안공간이 필요합니다."


부천역 거리소년들을 안아주는 이정아 대표. ⓒ 임종진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태풍이 불어도 천막을 쳤습니다. 아이들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천막을 치지 않으면 아이들이 굶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비바람 추위에 시달린 다음 날엔 몸살을 앓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절대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비바람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정아 대표는 4자녀의 엄마입니다. 그리고 교회 건물 없는 목사의 아내입니다. 이 대표의 소망은 자녀와 남편의 성공이 아닙니다. 가정폭력과 가정해체로 거리를 떠도는 소년들의 살 곳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2016년 목표는 대안공간 마련입니다. 이름은 미리 지었습니다. '청소년드림충전소' 빼앗긴 밥과 꿈을 충전해주기 위해 상시로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소년들의 가장 큰 범행 이유는 배고픔인데 주 1회 운영하는 천막 식당으론 배고픔 해결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거리 소년들에게 대안공간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훔쳐 먹던 손으로 스스로 밥해 먹고 운영할 것을 제안하자 환영했습니다. 인간쓰레기? 양아치? 아닙니다.


속아주고 믿어주고 칭찬하면 놀랍게 변합니다


거리에서 깨달은 믿음입니다. 이정아 대표는 거리 소년들을 자립가정과 독립가정에서 살게 해주고 싶습니다. 거리 생활이 만성화되면 노숙자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이정아 대표의 호소를 가슴으로 새겨주십시오.


"청소년드림충전소 건립을 위해 임대비용과 자원활동가가 필요합니다. 거리 소년을 신고하는 시민보다 희생하고 헌신하고 책임지려는 시민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일시적인 후원금과 헌금보다 현장에 와주시길 요청합니다. 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참여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습니다. 거리 소년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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