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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의 희망 연주

[소년이 희망이다11화]2016-05-30


가난한 달동네 목회자 ⓒ 김진석


정한수(60) 목사를 처음 만난 곳은 28년 전 항구도시에서였습니다. 당시 전도사였던 그는 백내장을 앓았습니다. 공장 생활로 대학 입학금을 마련한 그는 신문배달과 우유배달 등을 하며 한신대를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고된 노동학업 그리고 누적된 결핍이 청년 목회자를 아프게 한 것입니다. 못 먹은 탓인지 그의 체구는 작습니다. 하지만 정의감만큼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처럼 뜨거웠습니다. 이상훈(53) 여수YMCA 사무총장의 증언입니다.

"91년 5.18 시위 당시 정한수 전도사는 시위에 가장 앞섰습니다. 그리고 경찰에 붙잡혀 끌려갔습니다. 불의한 독재정권에 정의로 맞서면서 가난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긴 그는 진정한 목회자입니다"


그는 1988년 전남 여수시 관문동 삼일문화사 뒷골목에 여수 열린교회와 열린공동체를 개척했습니다. 장애인들과 예배드리는 한편, 노동 상담소와 야학, 사회과학 도서대여 열린글밭과 한울림 사물패 등을 운영하면서 여수지역 운동권의 아지트로 만들었습니다.


87년 대선 공정선거감시단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독재정권에 맞선 그는 요시찰 인물이었습니다. 경찰은 건물주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눈엣가시였던 그의 아지트를 해체시켰습니다.


경찰에 쫓겨 온 가난한 달동네


무료탁아소와 공부방 운영.. 아이들 두고 떠날 순 없어


공부방 아이들 ⓒ 김진석


1991년 쫓겨나 개척한 곳이 지금의 달동네입니다. 광무동은 선원과 일용노동자, 노점상과 시장 상인 등이 사는 여수에서 가장 가난한 달동네입니다.


아내 이인애(58)씨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무료 탁아소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동네 아이들을 데려와 먹이고 씻기면서 공부방을 개설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정 목사 부부는 그야말로 구세주였습니다.


진영(가명․24)이 아빠는 두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선원이었습니다. 새엄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한 진영이는 초등 2학년부터 가출을 일삼았습니다.

정 목사 부부는 산동네를 배회하던 진영이를 데려와 돌봤지만 절도와 폭력 등으로 경찰에 붙잡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부모 대신해 경찰서에서 데려오곤 했습니다. 애정을 다했던 소년은 모종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5년형을 받고 복역 중입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돈 많은 교인이 아닌 죄로 얼룩진 청년의 귀향입니다.


"진영이에게 공부방은 집이었습니다. 학교 끝나면 공부방에 와서 밥 먹고, 숙제하고, 놀았습니다. 종종 사고를 치긴 했지만 플루트를 배우면서 거듭나고 있었는데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만..

잘 돌보지 못한 것만 같아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12월에 출소 예정인데 다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해맑은 공부방 아이들 ⓒ 김진석


그는 25년째 가난한 달동네 목자입니다. 교인은 20명도 채 못 됩니다. 그가 운영하는 여수열린지역아동센터의 아동 35명 중 30명은 이혼가정, 한부모,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아동입니다.


동네가 가난하니 교회도 가난하고 목회자도 가난합니다. 예수는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으니 목회자의 가난은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교회와 목회자가 섬겨야 할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경 구약에선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선 이들과 함께 창녀와 세리(세금징수원), 어린이와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우리 동네에는 그들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잘 섬기진 못하지만 이들과 함께 살다 죽으려고 합니다"

그의 교회도 옮길 뻔 했습니다. 2004년 여수의 신도시 장성지구가 조성되자 일부 교인들이 "가난한 동네에 있어봐야 골치만 아프니 우리도 신도시로 이전해 다른 교회처럼 성장해보자"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정 목사는 "우리가 떠나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누가 돌보고, 방과 후에 와서 공부하고 밥 먹던 아이들을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이들을 두고 떠날 순 없습니다"라고 결정하자 교회 이전을 요구하던 교인들이 떠났습니다.


가난으로 무시당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까


산동네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오케스트라 소리


바이올린을 연습 중인 공부방 소녀 ⓒ 김진석

바이올린을 연습 중인 공부방 소녀 ⓒ 김진석


부모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 공부 못 한다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아이들. 자존감이 무너질 대로 무너지면서 의욕도 희망도 없는 아이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가난한 아이들은 거의 공부에 흥미가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사교육 등에 투자를 해줘야하는데 달동네 가정은 그럴 형편이 못 됩니다.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로 학교와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2003년 한 기업의 후원을 통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비올라 등을 장만하면서 열린합주단(열린챔버오케스트라)을 창단했습니다.


동네 이발사 강준아(당시 63세)씨가 악기를 가르쳤습니다. 강씨는 독학으로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를 배운 뒤 교회 성가대와 합주단을 지휘하는 무명의 연주자 겸 지휘자였습니다. 강씨의 지도 아래 1년 동안 연습한 아이들이 작은 음악회 무대에 섰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과 가족들은 난생처음 받아본 갈채와 꽃다발에 자못 흥분했습니다. 당시 이야기로 콧날이 시큰해진 정 목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개구쟁이 소년 ⓒ 김진석

바이올린을 배우는 개구쟁이 소년 ⓒ 김진석

공부방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아이들 ⓒ 김진석


"불우한 아이들은 보살핌과 애정을 별로 받지 못한 탓에 정서가 메마르고 산만하며 욕설과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걸핏하면 싸우고 반항하고 물건을 부숩니다. 그랬던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가난 때문에 꿈도 없던 아이들,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던 아이들, 대학 진학을 꿈도 꾸지 않던 아이들이 음악을 하면서 희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학예회 발표 수준이던 합주단은 지난해 10회 정기연주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전곡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습니다.


2012년부터 전문 음악인인 김사도(44․광신대 음악과 강사)씨의 지도와 객원 연주자가 합류하면서 달동네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한껏 높아진 것입니다. 이제는 도처에서 초청할 정도로 지역의 유명한 오케스트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달동네 출신이라고 낙인찍은 이들에게 고함


너희들은 못하는 악기로 우리는 연주한다


바이올린 연주자 박지수 양이 악기를 지도하고 있다 ⓒ 김진석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서 갖게 된 것은 자부심입니다. 이전에는 달동네 출신이란 낙인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너희들은 못하는 악기로 우리는 연주한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음악을 배우면서 공부 욕심도 생겼습니다. 합주단 선배들이 음대에 진학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정한수 목사의 부인 이인애씨의 말입니다. 달동네 합주단 출신 4명이 목포, 광주, 전주 등지의 음대에 진학한 것입니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달동네로 돌아와 동생들을 가르칩니다.


달동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지만 여전히 가난합니다. 단원 30명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한부모와 조손가정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연주하는 미래의 베토벤과 모차르트입니다.

달동네 출신 박지수 양이 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다 ⓒ 김진석


열한 살 때부터 공부방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박지수(24)양은 국립목포대 음악과를 올해 졸업했습니다. 음대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그의 꿈은 시립합창단 바이올린 연주자입니다.

바이올린을 통해 꿈과 희망이 달라진 그는 공부방 동생들의 악기를 지도하면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말입니다.


"개인 레슨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이 음대에 진학하고 열린 합주단 단원이 되어 연주회를 갖는 것은 꿈같은 일입니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부잣집 아이들이나 만질 수 있는 악기로 멋지게 연주하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성취감과 희열을 느낍니다"


바이올린불평등한 사회를 상징하는 악기입니다. 가난하면 바이올린을 살 수도, 개인 레슨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가난하면 꿈도 가난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는 달동네 오케스트라를 곱게만 보진 않습니다.


그래서 정한수 목사가 만든 달동네 오케스트라불평등한 사회에서 일으킨 희망의 쿠데타입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그의 오케스트라는 더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찾아가 희망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정한수 목사의 첼로와 박지수 양의 바이올린 연주 ⓒ 김진석


열린합주단은 2009년과 2013년 국제청소년축제에 초청됐고 2010년에는 일본 도쿄, 오사카, 교토 등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2012년부터는 매년 1~2회 낙도의 섬 주민들을 찾아가 음악을 들려주고, 매년 10차례 이상 노인시설과 병원의 암 환자들을 찾아가 음악으로 위로합니다.


정 목사는 아이들에게 음악만 가르치진 않습니다. 산동네 독거노인들에게 연탄 난로를 놓아드리고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연탄을 배달하면서 사랑과 나눔을 가르칩니다.


그는 음악 사회적 기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음대까지 졸업한 단원들이 음악인이 되지 못할 경우 좌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동네 음악가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은 까닭입니다.


연주공간을 만드는 것 또한 소망입니다. 공부방과 교회에서 연습하다 보면 공부와 예배가 뒤섞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을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중고 악기와 오케스트라 운영비용이 가장 시급합니다. 오래된 악기로 연습하다 보니 종종 고장 날 때가 있습니다. 가난한 오케스트라이다 보니 연습과 연주회 비용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달동네 주민들이 함께 건축한 교회공동체


교회는 교인의 것만이 아닌 마을의 공간


정한수 목사는 실패한 목사인가? ⓒ 김진석


30년 목회에 20명도 채 안 되는 교인. 그는 대형교회 탤런트 목사처럼 유창하게 설교하지 못합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며 겁주지도 못합니다. 축복과 헌금을 맞바꾸지도 못합니다. 한국 교회의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런 그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겪은 이상한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는데 교회에 다니지 않는 달동네 사람들이 벽돌과 모래를 져 날랐습니다. 바쁜 사정으로 건축에 동참하지 못한 이들은 간식 등을 댔습니다. 주민 반대와 민원으로 곤욕을 치르는 대형교회 건축과 다른 현상입니다.


그의 교회는 마을공동체의 힘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달동네 사람들은 그의 공동체에 아이들을 맡기고 문제가 발생하면 상담하고, 밥상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그의 교회 이름이 여수열린교회입니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산동네의 목회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교인만의 공간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든 안 나오든 달동네 주민들은 제가 보살피고 섬겨야 할 이웃입니다.저에게 중요한 것은 교인이 많고 적은 게 아니라 주민에게 제가 필요한 존재인가 아니면 상대하고 싶지 않은 존재인가 입니다. 달동네 주민들이 저를 필요하다고 해주시니 행복합니다"


달동네 여수열린교회 십자가 ⓒ 김진석


그를 찾아간 지난달 10일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습니다. 항구의 갈매기들은 비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고 달동네에는 가로등이 켜졌습니다.


비와 어둠이 내리면 달동네는 더욱 우울하기 마련인데 '우리 집 같은 신나는 공부방'을 지향하는 '여수열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표정은 참 밝았습니다. 공부하고, 놀고, 악기 연습하던 아이들은 숲의 새처럼 웃고 떠들다 자기 둥지로 돌아갔습니다. 교회 지붕에 달린 십자가가 모처럼 세상을 밝히는 것을 봤습니다.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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