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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골 의사는 어떻게 살고 계실까?

[2024년 급식비 모금편지 2]




15년 전, 저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에서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이웃을 돕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일터였던 구로공단이 패션단지와 디지털단지로 바뀌면서 봉제공장 등의 제조업 공장들이 해외와 지방으로 이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노동자들이 떠났고 그들이 살던 벌집과 닭장집에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한국에 온 중국동포 등의 이주 노동자들이 살게 됐고,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닭똥집과 순대에 소주를 마시던 가리봉시장은 중국동포 타운으로 변했습니다.


한국에 가면 떼돈 번다더라!

코리안 드림의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온 중국동포를 비롯한 이주 노동자 중에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던 돈의 몇 배가 넘는 돈을 벌었고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서 금의환향한 이들은 코리안 드림의 주인공이 됐지만 제가 만난 이주 노동자들은 악덕 사업주에 돈을 떼였거나, 산업재해로 고통을 겪고 있거나, 돈은 떨어졌고 일자리를 얻지 못했거나, 이국땅에서 병을 얻고 쓰러졌거나,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는 등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악덕 사업주를 노동부에 진정하고, 사업주와 싸우고,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병으로 쓰러진 이들을 입·퇴원시키고, 중풍에 쓰러지거나 암 투병 중인 이주 노동자들의 귀환을 돕고, 끝내 눈을 감은 이주 노동자의 주검을 화장해 유골을 안치했으나 유족들은 코리안 드림의 벼랑 끝에 내몰렸거나 유골을 인수해갈 여비조차 없어서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대신해서 악덕 사업주를 고발하고 싸우는 일! 굶주린 이주 노동자에게 밥을 주는 일! 병으로 쓰러진 이주 노동자를 입원시키는 일! 알코올 중독자를 어렵게 치료해 쉼터에 데려다 놓으면 사흘 만에 몰래 나갔다가 술에 취해 가리봉 오거리에 쓰러져 있고,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쉼터에 다시 데려다 놓는 일! 죽음을 목전에 둔 이주 노동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일! 비극적인 생을 마친 이주 노동자의 장례를 치르는 일!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도 필요했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은 급식에 필요한 쌀과 반찬을 살 돈이 필요했고, 쉼터에 거주하는 이들이 덮을 이불과 연료가 필요했고,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릴 병원비가 필요했고, 슬픈 한국을 떠나는 망자와 고향에 돌아가 죽고 싶은 환자들의 여비가 필요했고, 이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려놓은 활동가들에게 지급할 최소한의 생계 급여가 필요했습니다.



후원 좀 해주세요!

후원금 좀 부탁드립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인데 그 돈을 구하는 일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후원 좀 해달라는 말, 후원금을 부탁하는 말은 가장 꺼내고 싶은 말인데도 가장 하기 힘든 말이어서 말문이 닫히기 일쑤고, 도움을 청했다가 차디찬 거절과 함께 조롱까지 당할 때는 수치스러움과 자괴감에 가슴이 무너져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감동을 주시는 후원의 손길로 인해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일으키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해, 늦가을 무렵이었던가?

아니면, 초겨울 무렵이었던가?


그날, 눈이 내릴 것 같은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났고, 뒷수습을 하다 지쳐서 먹장 하늘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오후 3~4시경이었을 겁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눈빛이 선해 보이는 그분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죽어가는 이주 노동자들을 살리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어떻게 도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모아 놓은 돈을 전달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시골 의사라고 했습니다.

작은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때는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후원금이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의 말을 한 시골 의사는 차 한 잔을 다 마시지도 못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부끄럽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헌신하시는데 크게 돕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고개 숙였습니다. 그 시골 의사는 10여 분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구로디지털단지역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눈이 내릴 것 같은 하늘은 조금 더 어두워졌고 눈은 끝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시골 의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1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조금은 늙었겠지요.

그 시골 의사를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가 가끔 생각나는 것은 후원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가 남긴 '부끄럽다'는 말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도 '미안하다'고, '부끄럽다'고 말한 시골 의사의 수줍음을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참, 시골 의사가 "얼마 되지 않은 후원금"이라고 말했는데 그가 떠난 뒤에 하얀 봉투에 담긴 수표를 꺼내보니 15,000,000원 이란 숫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 수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어게인 이주 청소년 학교

2024년 급식비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 ▶일시 : 2023년 12월 14일(목) 오후 6시 ▶장소 : 스페이스작 (부천시 까치로 20번길 13-7​) ▶후원 계좌 : KEB하나은행 630-010122-427(어게인) ▶문의 : T 032-662-1318 I E teen@again.or.kr ▶주최 :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지난 11월 29일(수) 발송한 '2024년 급식비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이란 제목의 웹 초대장 행사장소가 잘못 기재돼 위의 장소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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