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6화] 2016-04-25
24년째 거리의 스승 최연수 센터장 ⓒ국민일보 전호광
최연수(53) (사)한빛청소년대안센터(이하, 한빛센터) 센터장은 24년째 거리의 스승입니다. 그동안 배출한 제자들은 1천여 명. 학교는 소년들을 폐석(廢石) 취급하며 학교 밖으로 추방했지만 그는 거친 원석을 다듬어 사업가, 경찰관, 대기업 사원, 뮤지컬 배우, 요리사, 유치원장 등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학교가 죽인 꿈과 희망을 거리의 스승이 살린 것입니다
전라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교사를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사범대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꿈이 깨졌습니다. 전남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1년간 근무하다 학교 밖으로 추방된 것입니다. 학생운동 전력이 밝혀지면서 재임용에서 탈락한 그는 은행원 아내를 따라 상경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민을 꿈꾸었습니다. 불의와 차별이 판치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학원 강사와 과외교사를 했는데 시험 때가 되면 학부모들이 돈 봉투를 들고 찾아와 시험 문제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건 아이들을 망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가 학원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전라도 출신이라고 차별하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정의를 따를 수록, 양심을 지킬수록 이방인 취급하는 이 땅에서 살 자신이 없어서 떠나려고 했는데 그 아이들이 저를 잡아주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최연수 센터장 ⓒ한빛센터
그가 말하는 아이들은 강남의 빈민촌인 거여·마천지역 아이들입니다. 이곳은 도심 철거민이 집단 이주한 대단위 판자촌으로 지금은 뉴타운으로 변했습니다. 1992년, 그가 만난 판자촌 아이들의 엄마들은 가출했고, 막노동하는 아빠는 술독에 빠졌고, 아이들은 비가 새는 판자촌에서 담배와 술과 본드에 취해 뒹굴었습니다. 야학교사로 봉사하다 이 아이들을 만난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요란하게 염색하고, 코와 귀에 피싱하고, 살벌하게 문신한 아이들을 다들 꺼렸는데 그는 외려 정이 갔습니다. 학원 끝나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는 부잣집 아이들보다 가난한 아이들이 더 살가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쫓겨난 자의 동병상련이었고 짠한 끌림이었습니다. 그가 23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야학에 나오다 결석한 아이를 찾으러 거여동 판자촌에 갔다가 본드와 가스에 취해 뒹구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충격과 동시에 마음이 울컥거렸습니다. 오매, 이 아이들을 어쩌면 좋을까..엄마는 가출했고, 절망한 아빠는 술에 젖어 사는, 가정이 엉망이 된 아이들에게 왜 학교에 안 가고, 왜 공부하지 않냐? 나무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배곯는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빵과 김밥 등을 사가지고 판자촌을 드나들었습니다. 처음엔 이상한 아저씨, 스토커라고 부르며 거부하더니 차츰 저를 기다렸습니다. 문만 열어준 게 아니라 마음도 열어주었습니다. 저에게 거리는 학교였고 거리 아이들은 제자들이었습니다. 해직되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늘의 뜻에 감사할 뿐입니다."
자살한 제자, 일가족 4명 장례..주변에선 미친 사람 취급
"제가 잘한 일이 있다면 버틴 것입니다." ⓒ국민일보 전호광
"제가 잘한 일이 있다면 버틴 것입니다. 부모 이혼과 가정해체 등 으로 절망한 아이들은 쉽게 좌절합니다. 겉으론 거칠고 강한 것 같지만 실은 연약한 아이들입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곧잘 포기합니다. 그동안 여덟 명의 제자들이 절망과 좌절에 시달리다 자살 했습니다. 아이들이 무너질 때면 저도 덩달아 무너졌습니다. 이아이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저도 모르게 절망에 빠지면서 이 길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을 꼽는다면 한 제자의 비극적인 가족사입니다. 제자의 가족 4명이 연달아 사망했는데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제가 장례를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장례를 다 치른 뒤에 제자가 '이제는 아무도 없네요'라고 말하면서 '선생님, 아버지가 되어주세요'라고 하기에 '그래, 너는 혼자가 아니야'라며 안아주었습니다. 그 제자는 직장생활을 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외면하는 세상, 사람들은 피가 묻을까봐 상처투성이 아이들을 안아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안을 뿐 아니라 함께 뒹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은 피투성이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기에 힘들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칭찬하기보다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혹시, 정치하려고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 의심했습니다.
은행원 아내가 명예퇴직하면서 생활비가 끊겼습니다. 남편에게 생활전선에 나서달라고 부탁했더니 외려 상담소를 만들어야 하니 퇴직금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혼 이야기를 꺼내면 그만 둘 줄 알았는데 "10년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둘게"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엔 "20년도 버텨보지 않고 포기할 순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아, 남편은 미친 게 아니라 사명이구나. 끊임없는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길을 가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비판적 지지자가 됐습니다.
2011년은 악전고투의 해였습니다. 그해 3월 한빛센터 이사장이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사장을 맡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재정은 어렵고 할 일만 많은 한빛센터 이사장은 부담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게다가 건물주가 사무실을 비우라고 통보했습니다. 괴상한 복장과 욕설, 아무데서나 담배 피고, 아이들의 오토바이 소음으로 민원이 계속 발생하자 추방을 단행한 것입니다.
구안와사를 앓은 최연수 센터장. ⓒ국민일보 전호광
후임 이사장 선임, 악화된 재정, 사무실 이전 문제 등에 시달리면서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습니다. 입이 삐뚤어지고 눈이 감기지 않았습니다. 안면이 마비되는 구안와사(口眼喎斜)라는 병이 덮친 것입니다. 10년 넘게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거리 소년 돕는 일은 오래하면 3년~5년입니다. 심신이 지치고 재정이 악화되면서 그만두는데 비해 그는 너무 오래했고 그 대가가 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의 관심사는 큰 조직이 아니라 소년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직원들이 쉬는 주말이면 제자들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이 헛걸음 할까봐 주 7일 문을 열었습니다. 명절에도 문을 열었고 휴가는 아예 없었습니다. 20년 넘게 미친 듯이 활동했으면 낡은 건물이라도 마련할 법 한데 전세보증금 4천만 원에 월세 신세입니다. 활동 능력은 뛰어나지만 돈 모으는 재주는 매우 부족한 그가 한숨처럼 토로합니다.
"그동안 여섯 번이나 쫓겨났습니다. 2년 6개월 전에 이 건물로 이사 왔는데 나가라고 할까봐 걱정입니다. 쫓겨날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리 소년 희망 시스템 도출
소년 살리기 해법은 마을 공동체
한빛청소년대안센터의 길거리 상담 ⓒ한빛센터
길거리 상담소로 시작한 한빛센터(이사장 박종문)는 도시형 대안학교 '사랑의 학교'와 '세움학교' 집 없는 소년을 위한 '자립관'(그룹홈)과 직업훈련을 위한 '자립사업장' 그리고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이하, 학교밖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등 거리 소년들의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거리 소년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오랜 실패와 좌절을 통해 해답을 얻었습니다. 마을공동체가 해답입니다. 마을 안에서 위기 소년들을 발굴하고 욕구를 파악해(발굴과 상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도시형 대안학교에서 가르치고(교육)→ 집 없는 아이들은 그룹홈 생활(보호)→ 직업훈련(자립)을 시켰더니 절망의 소년들이 희망으로 거듭났습니다. 24년 거리 스승이 도출한 해법을 '소년 희망 시스템'이라고 명명합니다.
한빛청소년대안센터의 2010년 커밍 데이 ⓒ한빛센터
"송파에서만 24년간 활동하면서 얻은 결론은 마을 아이들은 마을에서야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을의 당구장, 화원, 카페, 교회 등이 교실이 되고, 주민들이 선생이 돼 당구와 꽃꽂이 등을 가르쳤습니다. 대안학교에서 난타와 춤 등을 배운 아이들은 마을축제에 참여해 꿈과 끼를 맘껏 발휘했습니다. 서로 불신하던 주민과 아이들이 마을 축제에서 신뢰의 눈빛을 주고받았습니다. 반면 마을이 아이들을 포기하면 아이들은 비행청소년 그리고, 범죄자로 전락합니다. 마을에선 보는 눈 때문에 조심하지만 마을을 떠나면 과감해집니다. 부천과 신림동 등 가출청소년 밀집지역으로 진출하면 사기 치고, 훔치고, 성매매하는 등 비행에 전염되면서 범죄의 늪으로 빠집니다. 마을이 아이들을 포기하면 위험한범죄자가 되어 나타나고 마을이 아이들을 품으면 고령화 사회를 책임질 미래가 됩니다."
그는 20+2 법칙을 제시했습니다
20세 이전에 발굴해 2년간 '소년 희망 시스템'으로 돌봤더니 아이들이 변화됐습니다. 보호관찰소와 소년원을 전전하면서 20세를 넘긴 소년들은 뼈가 굳어져 변화가 어려웠습니다. 한빛센터 제자들은 2년 동안 도보여행과 검정고시와 직업훈련을 통해 확 달라졌습니다. 성취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갖고 자존감이 형성되면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했습니다.
"부모 품에서 편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거리의 제자들의 성장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부모가 없거나 가정환경이 불우한 제자들은 일찍 경험한 바닥 생활을 거름 삼아 훌쩍 성장합니다. 주례를 선 30쌍의 제자 가운데 대다수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성숙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제자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거리 아이들에겐 절망도 있지만 그만큼 희망도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학교 밖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 되찾도록 돕겠다!"
한빛청소년축제는 마을축제가 됐다. ⓒ한빛센터
최연수 센터장은 "24년간 거리를 헤매며 아이들을 발굴했지만 민간단체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잠적하면 도울 수 없습니다. 부천 여중생 사망 사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소녀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면 비극을 막거나 좀 더 일찍 밝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효과적으로 발굴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겼습니다.
지난해 5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발굴과 대책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학교 밖 청소년이 어디서 무엇하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김숙자(51) 여성가족부 학교 밖 청소년 지원과 과장이 이 법과 학교밖센터 운영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지난해 마련되면서 여성가족부에 학교밖청소년지원과가 신설됐습니다. 교육부, 법무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와의 협력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굴된 소년들은 전국 202개 학교밖센터에서 각종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 센터에 배치된 전문상담원들은 학교 밖 청소년에게 맞는 학업과 취업 등 자립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는 6월부터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포기했던 꿈과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미래의 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성가족부가 최선을 다해 돕
겠습니다."
한빛청소년들의 도보 여행 ⓒ한빛센터
최 센터장은 이에 대해 "아직은 예산과 대책이 부족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이 정책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밖센터가 성공하려면 발굴, 상담, 보호, 자립의 '소년 희망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리 소년들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 민관 협력과 공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거리 소년들은 정부 위탁 상담소 이용을 꺼립니다
소년들의 욕구가 배제된 채 실적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학교밖센터가 성공하려면 첫째 센터의 주인은 위탁기관이 아니라 소년들이어야 합니다. 둘째, 센터 운영은 위탁기관 편의가 아니라 소년 편의에 맞춰져야 합니다. 셋째, 실적보다 소년의 욕구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밖센터 또한 소년들에게 외면당할지도 모릅니다.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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