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8화] 2016-05-09
배상혁 주무관(뒷줄) 박기명, 이진실, 소기정(앞줄 오른쪽부터)
배상혁(44)씨는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그가 일하는 곳은 서울동부보호관찰소입니다. 보호관찰소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선도하고 교화시키는 법무부 소속 기관으로 주무관인 그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을 지도하고 감독하는 일을 합니다. 언뜻 보면 따분하고 삭막할 것 같은 직업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소명감이 없다면 그렇게 열정을 쏟을 순 없을 테니까요.
그는 지난 4월 27일 자신을 따르던 보호소년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소년이 희망이다'에 등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박기명(21), 소기정(20), 이진실(18) 등 보호소년 3명을 강남구 역삼동의 한 스튜디오로 불러 모았습니다. 유럽의 귀족 저택처럼 클래식한 곳입니다.
이 스튜디오에서 그와 소년들은 모델처럼 포즈를 취했습니다. 사진작가의 요청에 따라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면서 환한 웃음을 터트리는 그들을 보면서 화보 이름을 '소년 희망 화보'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어두운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고, 상처와 아픔이 다 낫진 않았지만 끝끝내 희망의 주인공이 되길 기대하고 응원하기에.
소년원에 간 제자가 심어준 보호직 공무원의 꿈
배상혁 씨의 꿈은 교사였습니다.
배상혁 씨의 꿈은 교사였습니다. 그는 2004년 임용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교육청은 사립학교에 발령을 냈지만 막상 채용된 이는 뒷돈 기부금을 낸 사람이었습니다. 2년간의 민사소송 끝에 승소하면서 손해배상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는 부패한 교육 현장을 떠났습니다
임용의 권리를 주장할 순 있었지만 2년간 싸우면서 비교육적인 교육환경에 환멸을 느낀 것입니다.
대신에 학원 강사로 일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햄버거도 종종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따르던 학원 제자(16)가 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년원에 갔습니다. 소녀는 치즈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년원 규정을 어기는 것이었지만 몰래 사가서 몰래 떠먹였습니다. 3번째 면회 가서 소녀에게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소년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년원을 교도소와 같은 곳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학교였습니다. 소녀가 있던 안양소년원의 다른 이름은 '정심 여자 정보산업학교'였습니다. 제자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나의 꿈이 선생이었어.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는 선생. 억울한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는 선생. 부패한 사학 때문에 선생이 되지 못했지만 상처받은 보호소년들을 돌보는 선생은 되고 싶다.'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그는 보호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터널 밖으로 나왔습니다"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다정한 배상혁 주무관.
2013년 경력직 특채로 보호직 공무원이 된 그는 신명을 다했습니다. 각종 비행으로 재판을 받고 보호관찰소에 온 소년들을 가르치는 게 천직 같았습니다. 반항하기 일쑤인 소년들을 휘어잡을 뿐 아니라 도움을 요청한 소년들은 어렵더라도 지켜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의리 있는 선생님'이라며 좋아했습니다
'소년 희망 화보'를 촬영한 기명이와 기정이가 그를 따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건국대 일대에서 유명한 주먹이던 기정이는 그를 만나면서 성실한 청년으로 변했습니다.
건국대 일대의 소년 중에 일짱인 채문(19․가명)이는 작심하고 소년원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부산소년원에서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자동차 정비자격증을 비롯한 3개의 자격증을 땄습니다. 소년원을 나와 찾아온 채문이는 "선생님이 소년원에 보내주셔서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채문이는 자동차 정비업체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소년 중에 싸움으로 전국구였던 기명이는 4년 전 경찰에 쫓기다 그를 찾아와 자수했습니다. 그가 기명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경찰이 신병 인수를 요청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기관 간의 긴장이 한 동안 조성됐습니다. 기명이 사건 후로 그는 소년 패거리에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의리 있는 선생님, 자신들을 이해하고 지켜주는 선생님
페이스북 스타(팔로우 207,127명)인 박기명은 사업가가 됐습니다. SNS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종합 마케팅 사업을 하는 엔터테인먼트(디다일리아)를 지난 3월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소년기를 긴 터널이라 생각합니다. 터널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쓰러진 친구들을 많이 봤고, 저도 그중에 한 명이었는데 선생님(배상혁 주무관)의 도움으로 터널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진실한 모습으로 살면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위기청소년을 돕는 사업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법무부 장관님, 보호관찰 1년만 더 연장해주세요
이진실(사진 가운데)의 꿈은 간호사입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님! 19년간의 길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법정에도 가고, 학교도 그만둔 일을 돌아보면 후회스럽지만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배상혁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검정고시 학원 추천과 반값 혜택을 지원해주셔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결과 대입 검정고시 전과목을 합격했고 지금은 간호사라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만일 그 누구도 손을 안 내밀었으면 미래에 대한 의지도 희망도 갖지 않았을 겁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도 학교 자퇴하고 큰 인물이 되었잖아요. 저는 몇 년 뒤에 훌륭한 간호사가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부탁이 있습니다. 보호관찰 1년만 연장해주세요. 배상혁 선생님 밑으로요. 배상혁 선생님은 장학금도 주시고 좋은 조언도 해주시고 참 고마운 선생님입니다. 엄마는 지금 몸이 아파서 비싼 학원비 부담하기도 좀 그렇습니다. 장관님 보호관찰 1년만 연장해 주시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9월 보호관찰이 종료된 진실이는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엄기표 판사에게 보호관찰을 연장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간호조무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아빠를 암으로 잃는 등 가정형편이 어려운 진실이는 배상혁 주무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배 주무관은 진실이에게 장학금과 학원비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보호관찰이 끝나면 도움도 끝나게 됩니다. 보호관찰소의 주요 임무는 재범 방지와 건전한 사회복귀입니다. 검정고시와 직업교육 등을 지원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이처럼 기회를 잘 활용하면 꿈과 희망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판사는 진실이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서울 동부 보호관찰소(소장 정택현)는 한국법무 복지공단을 통해 간호 학원비와 취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참 다행한 일입니다. 진실이의 꿈이 대단한 꿈은 아니지만 절박한 꿈인 것은 사실입니다. 진실이가 간호사가 되면 가난한 형편이 다소나마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픈 엄마는 덜 아플 것입니다. 소년범의 대부인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소년범을 황폐화시키는 것은 꿈과 희망을 빼앗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가난하다고 다 문제아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 어른들의 시대는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다 가난했기 때문에 견딜만했고, 근면 성실하면 가난에서 탈출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이 구조화되고 세습화되고 있습니다. 소년들은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투신자살, 아버지는 사회봉사명령
벼랑 끝 인생을 희망으로 이끌어준 공무원
사회봉사를 하고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서울동부보호관찰소)
김영호(56․가명)씨는 지난해 6월 벌금 300만 원을 받았지만 사업에 실패하면서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습니다. 법원은 이런 경우에 벌금 대신에 사회봉사를 명령합니다. 240시간의 봉사명령을 받고도 출석 기일을 한참 어기다 나타난 김씨가 배상혁 주무관에게 내민 것은 아들의 사망진단서였습니다.
카드 빛에 쫓기다 투신자살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병들었고 딸은 장애인입니다. 얼마나 막막했으면 하염없이 울었을까요. 김씨가 돈을 벌지 않으면 남은 가족마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배 주무관은 일자리를 알선해주면서 일주일의 5일은 일하고 2일은 사회봉사를 하도록 배려했습니다. 화급한 사정을 살피지 않고 봉사명령을 내렸다면 김씨와 가족은 극단적 선택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사회봉사를 무사히 마친 김씨는 배 주무관에게 "막막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꼈다"며 고마워했습니다.
문희정(여․57․가명)씨는 7년 송사로 사업도 가정도 파탄 났습니다. 자살 우려까지 있었던 문씨를 장애인 목욕봉사에 배치했습니다. 상한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한 배치였습니다.
그랬더니 표정이 점차 밝아졌습니다
장애인의 몸을 씻겨주면서 지치고 상한 심신이 회복된 것입니다. 문씨는 240시간 봉사를 마친 후에도 자그만지 1년 4개월이나 자원봉사를 이어갔습니다. 문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상혁 주무관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보다 어려운 장애인을 도우면서 자살하려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봉사가 저의 생명을 구해주고, 제 인생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공무원이 더 많아지기를
보호소년들과 함께 중국여행 중인 배상혁 주무관(서울동부보호관찰소)
배상혁 주무관이 학교 선생이 되지 못한 것은 불행 중 다행입니다. 교사가 됐어도 잘했겠지만 학교보다 손길이 더 필요한 곳이 보호관찰소이기 때문입니다. 마흔에 공무원이 된 그의 열정은 청년보다 더 뜨겁습니다. 휴일과 퇴근시간을 반납한 채 후원과 협찬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소년들을 먹이고, 가르치고, 여행 보내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그가 뛰어다닌 만큼 소년들에게 혜택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소년들을 데리고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천정부지입니다. 7포 세대 혹은 5포 세대라 불리는 청년 중에 공시족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안정된 직업인 공무원은 예전보다 더 상한가입니다. 국민들은 외롭고 힘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공복을 원하는데 공무원 지망생들은 안정된 직업관이 강합니다.
늦깎이 공무원인 그가 돋보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의 수고와 헌신으로 소년들이 희망을 더 갖게 되는 것을 보면서 그와 같은 공무원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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