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한판승 13화] 2018-08-14
소년원 출신임을 당당히 밝힌 배우 조우혁. ⓒ 조호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중학생 우혁은 부모에게 독서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공부하기가 더 싫었던 우혁은 친구와 함께 밤거리를 배회했다. 밤 11시경, 배가 고팠던 두 소년은 한 슈퍼 앞에 앉아 장난치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12시까지 공부하고 오겠다고 했으니 1시간은 더 때워야 했다.
"저 슈퍼에서 빵 훔쳐 먹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겁이 났다. 서로 네가 하라고 장난치고 있는데 경찰 순찰차가 나타났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고 있어!"
소년들은 덜컥 겁이 났다. 장난과 농담이 들킨 것 같아서였다. 경찰은 수상쩍은 두 소년을 순찰차에 태웠다. 소년들은 당시 부평구 부개동에 위치한 부흥파출소로 연행됐다.
경찰이 두 소년의 가방을 뒤졌다. 친구의 가방엔 몇 권의 책이 있었지만 우혁의 가방은 빈 가방이었다. 도서관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놀 생각이었기에 빈 가방을 들고 나선 것이다. 경찰이 추궁했다.
"이××! 뭘 훔쳐 담으려고 빈 가방을 가지고 다닌 거지."
두 소년을 분리한 경찰은 우혁에게 "네 친구가 물건을 훔치기로 한 사실을 다 불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실대로 불라"고 유도 심문했다.
그 경찰은 우혁의 친구에게도 동일한 방식으로 유도 심문했다. 두 소년은 "빵을 훔칠까? 하고 말했지만 그건 장난이었다."고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 아저씨가 솔직하게 말하면 집에 보내주겠다면서 친구와 저에게 조서 같은 종이를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훔쳤던 것을 다 적으라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껌 한 통과 빵 한 개 훔친 것을 적었더니 지문을 찍도록 한 뒤에 순찰차에 다시 태웠습니다.
집에 보내주는 줄 알고 탔는데 부평경찰서로 데려갔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한 어머니
"어린 애들을
도둑으로 몰다니!"
가출팸 생활을 하는 위기청소년들. (이 사진은 기사와 상관없음) ⓒ 임종진
두 소년은 경찰서로 넘겨졌다. 새벽 5시경에 경찰서에 도착한 우혁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들고는 경찰에 항의했다.
"훔치지도 않았고 장난쳤을 뿐인데 어린 애들을 도둑으로 몰아요. 집에 보내준다고 거짓말하면서 한참 지난 일을 적게 하고 그것을 사건으로 만드는 게 경찰입니까."
어머니의 항의는 소용없었다. 담당 경찰은 파출소에서 조서가 작성돼 넘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우혁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억울하고 분했던 소년은 그때부터 반항심이 생겼다.
"나쁜 경찰을 만나기 전에는 학원 다니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절도범으로 몰린 뒤로는 문제 학생으로 변했습니다. 저를 절도범으로 만든 경찰을 2년 뒤에 또 만났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오토바이를 타려고 했다가 오토바이 절도범으로 몰렸다. 이번엔 순찰차를 타고 당시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삼산파출소로 연행됐다.
파출소에 도착한 어머니에게 "경찰 아저씨가 오토바이 절도범으로 몰고 있다"고 말하자 어머니가 절도범으로 몰려고 한 경찰에게 다가갔다.
"어머니가 '당신, 2년 전에 우리 애를 도둑으로 몬 경찰 아닙니까? 이번엔 오토바이 절도범으로 몰려고 하느냐'고 항의하자 놀란 경찰이 더 이상 사건으로 만들지 못하고 풀어주었습니다."
우혁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가출 생활을 했다. 학생들에게 삥 뜯은 돈으로 밥을 사먹고 찜질방에서 자면서 한 달 가량 지내다 경찰에 붙잡혔다. 우혁은 "경찰이 우리를 조직폭력배로 만들었다"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찰이 우리를 학생 조직폭력배로 만들면서 '범죄단체 등의 조직‘ 혐의로 1심에서 실형 3년~4년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이 변호사를 선임해 항소하면서 조직폭력배라는 누명은 벗었습니다. 만일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조직폭력배 누명을 쓰고 중형을 살았을 겁니다."
저에게 소년원은
희망의 공간이었습니다
소년원엔 어떤 소년들이 살고 있을까. ⓒ 조호진
우혁은 서울소년원에 들어갔다. 열일곱 살 때였다. 극단 '프리로드'의 대표이자 '드림업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인 조우혁(예명․32)씨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소년원에서 방황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배우의 꿈을 품었다"고 말했다.
"저에게 소년원은 희망의 공간이었습니다. 위기청소년이었던 저를 변화시켜준 곳이자 배우의 꿈을 품게 해준 곳이 서울소년원이었습니다."
서울소년원 대표로 뽑힌 그는 전국 소년원 영어 연극대회에 출전했다. 수백 명의 소년원생 관객 앞에서 연극을 했다.
연극을 마친 뒤에 커팅 콜을 하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는 "난생처음 성취감과 연극의 희열을 맛봤다"면서 "어릴 때 개그맨이 되고 싶었던 꿈이 되살아났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서울소년원 담임이자 연극반 지도교사였던 서해록(현재, 서울북부청소년비행예방센터 근무)선생님이 '너 연극에 소질 있다. 정말 잘 한다'고 칭찬해주시면서 저를 서울소년원 대표로 뽑아주셨습니다.
그때 배우의 꿈이 생겼습니다. 두 달 전에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반겨주시면서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인생을 바꿔준 은인이자 평생 잊지 못할 은사님입니다. 그날 준비해간 넥타이를 감사 선물로 드렸습니다."
서해록 선생님은 지난 11일 창작자와의 통화에서 "다른 원생들은 화장실 청소 등의 힘든 일을 시키면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만기'(본명)는 힘든 일을 묵묵히 해냈다"면서 "주일예배에도 꼬박꼬박 참석하면서 기독교 반장을 맡는 등 소년원 생활을 잘 해낸 제자"였다고 기억했다.
소년원 후배들을
위해 극단을 만들다
극단 '프리로드'(대표 조우혁) 단원들이 서울소년원에서 공연을 마친 후 인사
하고 있다. ⓒ 조우혁
배우가 되려고 했으나 꿈과 현실은 달랐다. 군 제대 후인 스물일곱에 KBS-TV 사극 '최고다 이순신'과 '천명' 등에 엑스트라로 출연했지만 엑스트라를 해서는 배우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배우의 꿈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흔 살에 가수의 꿈을 이룬 어머니가 아들 우혁에게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우혁은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한 오디션에서 소년원 시절이 떠올랐다.
"심사위원들이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여주면서 연기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장면은 남편(안내상)이 사업부도로 구속되면서 부인(윤유선)이 힘들어하는 장면인데 그 순간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소년원에 있을 때는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보다 백배 천배는 더 힘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깨달음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2015년 겨울부터 서울소년원에서 연극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소년원 후배들에게 연극을 보여주기 위해 극단(프리로드)을 만들었다.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고 보안요원 등으로 일하면서 2천만 원을 모아 극단 운영비로 사용했다. 그는 상처 많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소년원 후배들아
어머니를 용서해라!
안양소년원 출신 소녀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면서 <그녀들의 이유>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 조우혁
"많은 소년원생들이 어머니를 원망합니다.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린 엄마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도 구속되면서 힘들었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더 힘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30대에 깨달았지만 후배들은 좀 더 일찍 깨닫고 어머니를 용서했으면 좋겠습니다.
철없는 시절에 저지른 나쁜 짓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친구들에게 사죄드립니다. 그 친구들을 일일이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연극 등의 자원봉사를 하면서 죄를 갚으며 살겠습니다."
우혁은 서울소년원과 여자 소년원인 안양소년원 등에서 공연하면서 소년원 출신임을 밝혔다. 후배들이 꿈을 갖고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후배들은 "조우혁 선배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면서 "연극공연을 계속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우혁은 소년원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소년원 출신 배우임을 당당하게 밝혔다. 소년원에서 꿈과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수로 좌절하기보다 이를 딛고 일어서 세상의 벽을 넘어서고 싶기 때문이다.
2016년에는 한국소년보호협회 지원을 받아 안양소년원 출신 소녀 6명에게 연기 지도를 하면서 <그녀들의 이유>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2017년에는 한국소년보호협회 지원으로 <픽스 더 마인드>(마음을 고쳐라)라는 단편영화를 제작하면서 기획과 주연을 맡았다.
이 영화에 출연한 대다수의 아마추어 배우들은 소년원 출신이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 소년들이여
<소년희망센터>로 모여라
조우혁씨가 광화문 행인역으로 출연한 영화 <골든 슬럼버>의 한 장면. ⓒ 골든
슬럼버
우혁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유니폼 공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골든 슬럼버>(감독 노동석/ 주연 강동원)에서 단역(광화문 행인역)으로 출연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공장을 물려받아 가업으로 잇기를 바라고 있다.
배우 조우혁에겐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소년원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위기청소년들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이 추진 중인 <소년희망센터>가 만들어지면 연극으로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다.
"소년희망센터가 9월경에 건립될 예정입니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 소년이나 연극 치료가 필요한 위기청소년들은 소년희망센터로 모여 주십시오, 우리 함께 소년 희망의 무대를 만들어 봅시다."
우혁은 위기청소년 중에서 연극계와 영화계를 흔들 재목이 나오길 바란다. 그대로 두면 상처이고 그 상처를 더 괴롭히면 곪거나 터지겠지만 위기청소년의 고통스러운 삶을 연기로 승화시킨다면 훌륭한 연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법무부와 사회에 이렇게 부탁했다.
"인생은 한 편의 연극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년원 후배들이 아픔을 분노로만 터트리지만 말고 연기로 표현한다면 한국 연극계와 영화계를 흔들 재목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무부와 사회가 위기청소년들의 꿈을 키워주고 아픔을 치료하는데 연극을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에필로그>
나쁜 경찰 때문에
배우가 됐으니
나쁜 경찰 역할을
꼭 하고 싶습니다
배우 조우혁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하고 기대한다. ⓒ 조호진
나쁜 경찰이 한 소년의 인생을 망쳤다. 소년의 가정을 파경으로 빠트리면서 피눈물 흘리게 했다. 나쁜 경찰들은 '백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법률 격언을 무시했다.
나쁜 경찰이 한 소년의 인생만 망쳤을까. 소년을 보호하면서 희망의 길로 안내해야 할 경찰이 죄의 늪에 빠트리면서 인생을 망친다면 이런 경찰을 어떻게 해야 할까.
소년은 서른두 살 청년이 됐다. 소년원에서 배우의 꿈을 품은 그는 연기파 배우가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사법 피해자에서 배우이자 봉사자로 성장한 조우혁씨가 경찰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나쁜 경찰들이 세 번이나 죄를 덮어 씌웠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저를 절도범으로 몬 30대 중후반의 경찰은 50대가 됐을 겁니다.
(관련 경찰들을 용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그 경찰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억울하고 분합니다. 하지만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경찰에게 부탁드립니다.
저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배우 조우혁이 배역에 대한 바람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나쁜 경찰 덕분에 배우가 됐습니다. 나쁜 경찰들 때문에 배우가 됐으니 나쁜 경찰 역할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비열한 경찰의 모습을 직접 경험했으니 실감나게 연기할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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