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한판승 12화] 2018-08-07
사랑하는
아내가 아프다
사업가 형님에게 연대보증 섰다가 월급이 차압됐다. 노모의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대출 이자와 원금 상환뿐이 아니다. 아내의 병원비뿐만이 아니다. 도움을 청하는 소년원 출원생 아들딸들도 보살펴야 한다.
팔자 좋은
공무원으로만 알았다
늘 웃고 나누고 배려하니 그렇게 여겼다. 속사정을 알고 보니 괴로운 공무원이다. 처한 현실을 보면 불행한데 행복하다고 말한다. 4년째 그를 지켜보면서 위선이 아닐까? 싶어 의심했는데 불행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소년희망센터> 후원하고
건강 챙기는
행복 십일조 산행
행복 전도사인 윤용범 서기관. ⓒ 조호진
지난 토요일(4일) 안산 청소년 비행예방 센터장 윤용범(59) 서기관과 함께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해발 385m 모락산을 올랐다. 이 폭염에 산행이라니? 그의 양아들들인 소년원 출원생 4명이 동행했다.
그는 지난 6월 초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고혈압과 당뇨 등 성인병 치료를 위해서였다. 쓰러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감당해야 할 부채와 식솔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더 나눠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매회 산행 때마다 5천 원~1만 원을 후원금으로 적립 중이다. 이날 산행이 30회 채로 17만 원을 적립했다. 목표는 오는 11월까지 100회다. 후원금은 '위기청소년의 좋은 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이 추진 중인 <소년희망센터> 건립기금으로 전달할 계획이다.
그가
속사정을 밝혔다
1987년, 결혼하면서부터 아내가 시름시름 앓았다. 근육이 굳는 등의 증세로 고통을 호소했다. 여러 대학병원을 다니면서 별의별 검사를 했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긴 병의 괴로움에 지쳐 갔다. 술을 마셨다. 이대로 취해 영영 잠들고 싶었다.
하나님, 아내를
치료해주시던지
데려가시든지
어떻게 좀 해주세요!
40일 새벽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항의했다.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나 길다고. 차라리 아내를 데려 가시라고 했다.
40일 기도가 끝날 무렵에 응답을 받았다. "아픈 아내는 너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고 했다.
아픈 아내가
특별한 선물?
눈물이 흘렀다. 저토록 아픈 여인을 누구에게 맡기겠냐고, 윤용범 네가 아니면 책임질 사람이 없어서 너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하늘의 뜻에 무릎 꿇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하늘이 주신 특별한 선물, 그래 내가 아니면 그 누가 아픈 아내를 돌보랴. 아픈 아내가 불쌍했고 또 귀한 보화처럼 여겨졌다. 아내가 일기장에 쓴 간절한 소원이 생각나서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단 하루만이라도
안 아프게 해주세요!
아내는 여전히 아프다. 아내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부부의 사랑은 깊어졌다. 아픔까지 함께하는 것이 사랑이다.
아내가 하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원망스럽던 세상이 달라졌다. 부도로 동생들을 힘들게 하는 형님과 미운 짓만 골라서하는 소년원생들도 선물로 여겨졌다.
미혼모의 돌잔치에 참석한 아내와 윤용범 서기관. (왼쪽에서 네 번째와 다
섯 번째) ⓒ 조호진
사업가 형님의 부도,
월급에 차압이 들어오고
노모의 집은 경매로 날아가고..
형님이 원망스러웠냐고요?
위로해드리면서
고통을 나눴습니다
비록 돈은 잃었지만
우애는 지켰습니다
불행은 연속해서 왔다. 사업가인 형님이 사기를 당했다. 형님 부도로 연대보증 선 그의 월급에 차압이 들어왔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노모의 집은 경매로 날아갔다.
5남매 중 셋째로 공무원인 그가 십자가를 졌다. 아파트를 2억에 전세를 내주고 그 돈으로 어머니 집을 마련해드렸다. 그리고 관사로 들어갔다. 그에게 물었다. 형님이 원망스러웠겠다고.
"형제는 천륜입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데 형님의 잘못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저버려야 하나요? 그럴 순 없습니다. 5남매 모두가 형님으로 인해 적잖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형제도 형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로해드렸습니다. 10년 동안 고통을 나누어 지면서 힘든 세월을 보냈더니 형님이 신재생 에너지인 풍력발전 사업으로 재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원망하고 싸우고 등을 돌렸다면 형님은 폐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형제는 많은 돈을 잃었지만 우애는 지켰습니다.
고통의 세월을 지켜보던 구순의 어머니가 건강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우애로 위기를 극복한 아들딸로 인해 내 인생이 축복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년원 출신 선교사와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를 돕고
소년원 출신 미혼모와
소년들을 돕기 위해
아내 몰래 마이너스 통장 만든
빚쟁이 아버지
소년원 출신 선교사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방문한 윤용범 서
기관. (앞줄 왼쪽 맨 앞) ⓒ 윤용범
윤 서기관은 2011년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갔다. 소년원 출신 박관일(48)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박 선교사는 신학대 출신도, 선교단체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후원 받기 어려운 상태였다. 박 선교사는 에이즈 감염으로 희생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쉼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귀국한 윤 서기관은 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다. 목사와 장로를 비롯해 돈 있는 사람과 높은 사람들에게 에이즈로 희생되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살리자고 호소했지만 외면당했다.
힘 있는 선교사라면 그도 외면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관일 선교사는 소년원 출신이다. 소년원 출신이라고, 신학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고 외면당하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하늘에 도움을 청했다. 이번에도 하늘의 응답은 그가 애타게 구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프리카의 죽어가는
생명을 본 사람이 하라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낀 사람이 하라!
하늘은 왜 이럴까. 돈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빚쟁이인 그에게 하라는 것일까. 산을 옮길 것 같은 믿음을 자랑하는 이들은 놔두고 아내도 아프고 도와야 할 소년도 많은 그에게 하라는 것일까.
그는 또 다시 대출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1500만원을 대출해 박 선교사에게 보냈다. 그 돈으로 에이즈 쉼터 부지를 매입했고 교회가 지어지면서 아프리카 최초로 점심을 주는 교회가 만들어졌다.
소년원 출신
아들딸들의 도움 요청
안양소년원 출신 미혼모인 애주(가명․19)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와 함께 살 집이 없다고 도움을 청했다. 소년원 출신 미혼모 선혜(가명․20)도 도움을 청해 각각 보증금 300만원씩 보냈다.
소년원 출신 미혼모 남희(가명․22)에게도 연락이 왔다. 출산 후유증이 심각한데 수술비가 없다고 했다. 병원 이름과 계좌를 보내라고 했다. 미혼모들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아니다.
오갈 곳이 없는 출원생, 대학에 진학했는데 학비가 없는 소년, 병이 들었다고 연락해온 소년, 구속됐다고 연락해온 아이.. 취업시키랴, 학비 대주랴, 병원비 보내랴, 면회 가서 영치금 넣어주랴, 배고픈 아이들 밥 사주랴..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도움을 청하는 아들딸들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돈을 보내 주다보니 아내 몰래 사용하는 마이너스 통장이 3000만원이 됐다.
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아들의 감사편지
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양아들이 윤용범 서기관에게 보낸 감사 편지.
ⓒ 윤용범
처음부터 선한 공무원은 아니었다. 행복 전도사도 아니었다. 소년원 교사 초기에는 숨소리 빼고 거짓말이고, 틈만 나면 훔치고, 툭하면 시비 걸고 싸우기 일쑤인 소년원생들에게 많이 당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런 나쁜 놈들은 군함에 실고 가서 태평양 한 가운데에 모두 빠트려야 한다고 할 정도로 법자(법무부의 자식들의 준말)들에 대한 증오심이 심했습니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아이들의 억울함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쪽방을 선택한 적도, 부모 이혼을 선택한 적도, 가난을 선택한 적도 없다. 그런데 모든 책임이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나쁜 놈, 쓰레기 같은 놈, 양아치××라는 비난의 화살에 소년들은 고슴도치가 됐다.
억울하고 아픈데 아무도 위로해주지도, 손을 잡아주지도 않으니 소년들의 가슴에 분노와 증오가 가득 찬다. 과연 이 모든 잘못을 소년 혼자 져야할까.
"억울함이 더해지고 곱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비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위기청소년이 됩니다.
억울한 소년들에겐 위로가 필요합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가난을 나누고, 아이들의 고통을 분담하면 소년 범죄가 줄어듭니다. 소년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공무원들이 가장 앞장서서 조성해야 합니다."
소년원 출신 병준(가명․23)이는 청송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고아로 자랐기에 면회 올 사람도 연락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양아버지인 윤 서기관에게 면회와달라고 연락했다.
그는 또 먼 길을 나섰다. 면회하면서 병준이와 약속했다.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하면 상처만 곪는다, 감사할 것을 찾아라, 감사하면 상처가 서서히 씻어진다고 말하면서 감사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병준이는 양아버지와의 약속대로 감사 훈련 중이다. 교도소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감사를 모아서 아버지 윤 서기관에게 매월 감사편지를 보낸다. 윤 서기관은 아들의 변화가 감사해서 영치금을 보낸다.
"저에게 병준이는 죄인이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과 감사 훈련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어느덧 1년 3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한 상처와 분노가 많아서 아무리 손을 잡아주어도 감사하지 않던 아이였는데 감사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불만거리이고 시비 걸어 사고 칠 건수였는데 이를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청송교도소 복역수인
아들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저녁 9시면 끄는 선풍기를 조금 더 틀어주어서 감사, 친구가 빨래를 같이 널어주어서 감사,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는데 소지(교도소에서 심부름을 담당하는 수인) 형이 약을 챙겨주어서 감사, 못난 아들이 매번 실망만 시켜 드렸는데 아버지가 영치금을 보내주시고 끝까지 옆에 있어주셔서 감사..
이런 자그마한 것으로도 아버지와 통한다는 게 저는 너무 기쁩니다. 이제껏 왜 모르고 지냈을까요."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
법무부 공무원 윤용범
대전소년원에서 소년원생들과 5박6일간 함께 지낸 윤용범 서기관. ⓒ 윤용범
그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좋아한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일부
1985년 소년원 교사(9급)로 임용된 그는 충주소년원,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울소년원, 법무부 소년과를 거쳐 현재 안산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하위직 공무원이 기관장이 된 것이다. 이런 사례는 흔치 않다. 법무부의 한 공무원은 앞으로 윤용범 서기관 같은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철밥통의 길과 공복의 길 중에서 공복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시밭길을 웃으며 걸어온 그가 고맙다. 처세와 인맥으로 출세하는 이들 때문에 실망이 컸는데 정성을 다한 인간 승리로 하위직에서 기관장에 오른 그가 고맙다. 넉넉히 베풀고 나누면서 소년들과 아픈 이웃의 눈물을 닦아준 그의 삶이 고맙고 또 고맙다.
그는 내년 6월 정년퇴직한다. 하지만 소년들과 함께 걸어온 행복의 길을 떠나진 않을 것이다.
"한 아이라도 더 구하려고 했다. 그건 하늘의 가르침이었고 그대로 따랐다. 언제나 현장을 중시했고, 윗사람보다 국민(소년)에게 봉사하는 공복으로 일하려고 애썼다. 후회 없는 공직생활을 했다.
내년 6월 공무원으로서는 정년퇴직하지만 행복 전도사로서 퇴직은 없을 것 같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수백 명이다. 이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다."
윤 서기관은 2012년 대전소년원에서 원생들과 5박6일 동안 같이 지냈다. 원생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이 자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의 고민을 파악했다.
출원을 앞둔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출원 후 먹고 사는 것이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싶어했다. 소년원과 교도소를 전전하는 인생을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 밖은 허허벌판이다. 그래서 죄를 짓고 만다.
소년들의 사회정착을 돕고 싶었다. 현장 체험과 소통을 통해 소년원생 맞춤형 1:1 멘토링과 무의탁 소년원생 사회정착지원센터인 '예스센터'를 건립했다. 예스센터는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건립됐다.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 출원생들의 정착을 위해 국민의 공복으로 헌신한 그에게 많은 상이 주어졌다. 모처럼 정의와 정직이 승리한 결과여서 기쁘다. 그와 함께 소년 희망의 길을 가는 나는 행복하다.
법무부 공무원인 그는
공복의 길을 끝까지 걸었다
윤용범 서기관은 대통령이 주는 2016년 대한민국 공무원상 국민포장, 인사혁신처의 자랑스러운 공무원에 등재, 정보문화대상(국무총리 표창), 모범공무원 선정(국무총리), 행정혁신으로 총무처장관상, 법무부장관상 2회 수상했다.
모락산 정상에서 완주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윤용범 서기관과 한국소년
보호협회 생활자립관 김기헌 실장.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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