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소년의 눈물



3년 전, 열일곱 소년을

성동구치소에서 만났습니다.

소년은 연쇄방화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공산당 간부의 딸이었던 러시아 여인과 그 나라로 유학을 간 한국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모스크바 출생 소년은 두 살 무렵, 친할머니 품에 안겨 김포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산당 간부의 딸과 유학생의 사랑, 국경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사랑은 낭만적인 영화처럼 시작됐지만 끝내 장벽을 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났습니다. 두 사람이야 자기 길로 가면 되지만 태어난 아기는 어찌하라고….


러시아 엄마가 소년의 곁을 떠난 것입니다. 돌이 갓 지난 소년이 친할머니 품에 안겨 아빠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오게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소년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 때문에 모스크바에 남았던 소년의 아빠는 소련(蘇聯-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연방 해체 이후 극에 달했던 혼란 정국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와 교회에 다니던 소년은 따돌림 당했습니다. 왕따에 시달리던 소년은 우울증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부모를 잃은 아픔과 할아버지의 사업실패 그리고, 가출한 손자를 찾아 나섰던 할머니의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 자신을 왕따 시킨 조국과 잇따른 불행에 시달리던 소년이 연쇄 방화를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열일곱 다문화 소년이 성동구치소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수의(囚衣)가 어울리지 않는 소년을 접견하고, 탄원서를 쓰고, 정신병원 입원을 위해 뛰어다니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 소년을 우울증 환자로 만들었을까

누가, 소년을 연쇄방화범으로 만들었을까


20년 전, 항구도시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숨죽이던 불법 거주자였고 두 아이를 키우던 홀아비였습니다.


소년의 아빠는 늘 취해 있었습니다.

정부가 지급한 기초생활수급비는 술값이었습니다.

잔뜩 취한 날은 소주병을 창밖으로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소년의 얼굴은 자주 멍들었습니다.


소년을 외면하는 세상이

가끔 주목할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와 교회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

소년을 용의선상 1순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학교는 소년의 결석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야 한다던 교회는 소년이 나타나면 경계했습니다.

그해 봄, 빵을 훔치다 붙잡혀 파출소로 연행된 소년은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것이 더 쉬웠다"고 진술했습니다.


20년 전에 던진

질문을 또 던집니다!


불행한 아이들을 외면하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하나요?


길 잃은 양을 돌보지 않는

교회가 말하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게 쉬운

가슴 아픈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소년원 등지에서 '법자'들을 만났습니다. 법자(法子)란 '법무부 자식'이란 뜻의 은어입니다. 소년 법자 중에서는 부모 이혼과 가출, 빈곤과 가정폭력 그리고, 가정이 해체되면서 학교폭력과 절도 등의 비행을 저지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소년들을 도둑놈, 양아치, 쓰레기라고 부르면서 격리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아이들이 왜 법자가 됐을까? 좋은 부모를 만났다면 이 나라를 이끌 재목이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소년들을 가해자로만 주목하려고 하지만 저는 피해자의 측면을 주목하려고 합니다.


면회 올 사람도 없는데도

누군가 면회 오길 바라는 소년!

가족과 밥 먹는 것이 소원인 소년!

버림받은 분노를 참지 못해 자해한 소년!


경찰과 검찰, 법원은 소년의 죄를 주목하지만 엄마 없이 자란 아픔을 겪었던 저는 세상과 부모에게 외면당한 소년의 눈물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소년의 죄가 소년에게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은 채 죄수로만 취급하며 수갑만 채운다면 소년들이 괴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눈물을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는 무정(無情)한 것도 죄라면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정한 죄가 공동체를 해체시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