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럴 수가

[희망의 한판승 7화] 2018-07-03


인천남동경찰서 학교전담경찰 시절, 위기청소년 행사에 참석해 이야기

하고 있는 박용호 경위. ⓒ 조호진


지난해 정년퇴직한 '전 인천남동경찰서 학교전담 경찰 박용호 사부'(이하, 박 사부)는 강력범 검거 왕이었다. 망치 형사라고 불리던 강력계 형사 시절에 3년 연속 강력범 검거 전국 1위를 차지하면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왕좌에 오래 앉지 못했다. 여고생 성폭행 살해사건 수사 도중에 과로로 쓰러졌다. 잠복근무 등으로 몸이 망가진 망치 형사는 검거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만성간염 판정을 받은 망치 형사는 여성청소년 부서로 발령받았다. 그의 열정은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국내 경찰 최초로 청소년 지도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한 망치 형사는 강력범을 검거하지 못하는 대신에 위기청소년 살리는 일에 열정을 바쳤다. 위기청소년들에게 사부로 불리는 그는 태권도 4단, 유도 5단, 검도 1단, 격투기 5단 등 모두 합쳐서 15단을 소유한 무도인이다.


그는 소년원 출원생을 비롯한 '개골뱅이'(일진 중의 일진이란 뜻의 은어)들을 모아 태권도와 유도를 가르치면서 건강한 청소년으로 거듭나게 했다. 이런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한 그가 전직 상사였던 한 경찰 간부에게 파렴치한 취급을 받았다. 제자들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에게 따돌림 당했다. 지난 5월 3일 비통한 심정을 담은 글을 본 창작자에게 보내왔다.


"모든 것을 바쳐 지켜내려고 했던 제자들이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경찰의 희생 제물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 울고 있습니다. 어찌 이렇게 철없는 어린아이들한테까지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면서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했는데 이제 장막을 걷어낼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바보 멍청이 박용호'


제자들이 사부에게 등 돌리게 하고 유도 소년들끼리 편 가르게 한 배후는?

박 사부는 남동경찰서 여청과장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 죽고 싶은 생각

까지 했다고 말했다. ⓒ 조호진


[희망의 한판승 1화] '경찰이 키운 소년, 경찰이 쫓아냈다' 보도 이후 제자들이 사부를 따돌리고 경찰 편에 선 소년들이 사부 편에 선 소년들을 왕따 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누가? 왜?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을 만들었을까. 박 사부에게 속사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하, 어게인) 부천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랑의 유도교실>을 왜 만들었나?


"96년부터 98년까지 2년 동안 소년원 출원생과 개골뱅이 40명을 모아 태권도를 가르쳤다. 학교 그만 둔 아이를 복학시키는 등으로 보살폈더니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이런 선도 활동 결과 부평경찰서 관내 청소년 비행 발생 비율이 전년에 비해 23%나 줄었다. 2014년 <사랑의 유도교실>을 만들어 4년가량 운영했다. 유도교실을 운영하면서 건강과(30여 년째 만성간염 환자) 운영비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보람도 많았다. 사람들은 비행청소년들이 과연 변하겠느냐? 면서 외면했지만 나는 가능성을 봤다. 남동경찰서 관내 중.고등학교 개골뱅이들이 <사랑의 유도교실>을 통해 멋지게 변했다.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은 보람이자 자랑거리다."


1995년 국내 경찰 최초로 청소년 지도사 2급 자격을 취득한 박 사부는 태권도 4단, 유도 5단, 검도 1단, 격투기 5단 등 모두 합쳐서 15단을 소유한 무도인이다. 그는 아내‧자녀와 함께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불우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25년간 주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98년 청룡봉사상을 받았고 <사랑의 유도교실> 운영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여성가족부와 문화방송 등이 공동 주최한 '청소년푸른성장대상'에서 문화방송 사장상을 수상했다.


경찰의 예산 지원 없이 박봉을 털어 <사랑의 유도교실>을 4년간

운영한 박 사부. ⓒ 조호진


<사랑의 유도교실>에 대한 경찰의 예산 지원이 없었나?


"지난 4년 동안 경찰의 예산 지원은 전혀 없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도복을 사주는 등의 비용은 아내 몰래 챙긴 성과금과 출장비로 해결했다. 하지만 전북 고창과 강원도 동해에서 2박3일간 열리는 전국유도대회에 출전하려면 렌터카 대여, 숙박비, 식비 등의 비용이 필요했다. 이 비용은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소년희망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어게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사랑의 유도교실> 중단 사실을 언제 알았나?


"지난 4월 6일 부하 직원이었던 경찰(사랑의 유도교실 담당)에게 전화가 왔었다. 내용은 '인천남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과장'(이하, 여청과장)이 부하 경찰에게 <사랑의 유도교실> 운영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서 힘들다고 했더니 4월 말로 유도교실을 중단하는 결재를 올리라 했고, 여청과장이 결재하면서 인천지방경찰청에 통보하라고 해서 통보했다고 알려왔다. 여청과장이 <사랑의 유도교실> 운영을 갑작스럽게 중단시키자 그 경찰도 매우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사랑의 유도교실> 제자들에게 유도를 가르치고 있는 박 사부. ⓒ 김진석


<사랑의 유도교실>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이 많았겠다


"인천지방경찰청 상무관에서 유도 훈련을 했는데 일부 경찰이 '유도교실 아이들이 샤워하면서 수건을 2장씩 사용 한다'는 등의 불만을 제기하면서 상무관 사용이 불편하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런 민원 때문에 2016년 7~8월 두 달은 선배가 운영하는 유도관에서 훈련했다. <사랑의 유도교실> 운영 중단에 대한 압박이 여러 차례 있었다. 2017년 6월 29일, 31년 4개월간의 경찰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했다. 그날도 제자들 훈련 때문에 상무관에 갔더니 한 후배 경찰이 '경찰청 모 경감이 박용호씨가 정년퇴직했으면 아이들을 경찰청에 들여보내지 말아야지. 왜 또 오게 하느냐. 못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고 전해주었다. 그 경감을 찾아가 '청장님(인천지방경찰청장)도 <사랑의 유도교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한 적이 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랑의 유도교실>이 언젠가 중단될 것이고 아이들은 쫓겨날 것이란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에 인천교육청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어게인'에게 2년 전부터 유도관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게인이 지난 4월 <소년희망센터건립추진위원회>(이하, 건추위)를 발족시킨 가운데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스토리펀딩'(희망의 한판승)이 진행되고 있다. <건추위>의 꿈은 좋은 경찰과 좋은 시민이 힘을 합쳐 위기청소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변호사, 의사, 목사, 교수, 교사 등이 모여 소년 희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데 나쁜 경찰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랑의 유도교실>을 중단시켰다. 경찰이 <건추위>의 꿈을 방해하는 현실 앞에서 전직 경찰이자 사부 자격으로 <건추위>에 참여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사랑의 유도교실>을 운영하면서 제자들에게 유도를 가르치고 있는 박 사부.

ⓒ 김진석


경찰이 <사랑의 유도교실> 중단에 대해 상의해온 적 없나?


"전혀 없었다. 남동경찰서 여성청소년과는 인천지방경찰청 유도동우회가 <사랑의 유도교실>을 자원봉사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만일 유도동우회가 재능기부로 운영할 계획이었다면 나와 상의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아무런 대책 없이 <사랑의 유도교실>을 중단시켰다. 가난하고 불우한 제자들을 무시했다는 반증이다. 만일 제자들의 부모가 돈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었어도 무시했을까. 여성청소년과의 재능기부 주장은 <사랑의 유도교실>을 대책 없이 중단했다가 언론 보도로 문제가 커지자 책임을 회피하려고 급히 내 놓은 주장에 불과하다. 그래서 주장의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여청과장은 <사랑의 유도교실>을 중단했지만 소년들이 상무관에서 운동하는데 문제가 없다면서 소년들을 쫒아냈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여청과장은 <사랑의 유도교실>을 찾아오거나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관련 기사로 경찰이 발칵 뒤집어지자 보도 당일(5월 1일) 저녁에 아이들과 훈련 중인 선배 유도관에 막무가내로 찾아왔다. 여청과장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을 내쫓은 적이 없다', '상무관에 와서 운동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변명하고 회유했다. 나쁜 경찰이 개입하면서 4년 동안 맺어왔던 사제관계가 순식간에 깨졌다. 그리고 제자들과 부모들이 관련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과연 제자들과 부모들의 순수한 뜻이었을까. 제자들은 관련 기사와 영상 촬영에 동의하면서 스스로 참여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돌변했다. 불순한 배후에 의해 제자와 부모들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 사부와 <사랑의 유도교실> 제자가 맞절하고 있다. 이 제자는 유도대회에서 딴 메

달을 박 사부 목에 걸어주면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이 제자도 사부에게 등을 돌렸다.

ⓒ 조호진


사제관계가 깨지면서 아픔이 컸겠다.


"여청과장이 제자들을 흔들고 간 사흘 뒤(5월 3일), 훈련 날이어서 선배 유도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유를 알아보니 상무관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비참한 심정이었다. 4년간 가르친 결과가 이런 것인가. 내가 제자들을 잘못 가르쳤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이뿐이 아니다. 경찰 편에 선 다수의 아이들이 내 편에 선 소수의 아이들을 왕따시켰다. 하지만 제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사랑의 유도교실>을 중단한 것을 사과하면 수습될 문제를 이렇게 크게 만드나. 소년들을 쫓아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짓이다. 언론 보도로 경찰이 발칵 뒤집히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상무관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을까. 경찰이 제자들을 계속 돌봐주었을까. 경찰이란 어른들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런 비인간적인 짓을 해야만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경찰이었다는 사실이 참담하고 부끄럽다."


여청과장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다고 들었다.


"여청과장에게 제자들을 이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제자들을 이용해 언론플레이를 하고 심지어 앵벌이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 말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여청과장에게 모욕당한 직후에는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비록 하위직 경찰이지만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한 경찰 간부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지난 3년간은 <사랑의 유도교실> 때문에 토요일에 쉬지 못했다. 나라고 왜 토요일에 쉬고 싶지 않았겠나. 토요일에 쉬면 제자들이 사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제자들이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이 때문에 토요일에도 제자들과 함께했다. 나는 30년 된 만성간염 환자이고 아내는 '후골인대 골화증' 환자다. 내 몸과 아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제자들을 지키려고 했는데 후한 무치한 인간으로 취급당했다. 제자들과 함께 언론에 나간 적이 있다. 한 방송에 출연한 것은 불우한 제자의 집을 보수해주고 생활비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출연하게 했다. 언론에 나간 것은 경찰의 청소년 선도 활동을 홍보하고 위기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애들을 이용한 적은 없었다. 모 방송사 수사 프로그램 관계자로부터 주 5회 출연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못하겠다고 했다. 방송에 출연하면 제자들의 손을 놔야 한다. 제자들이 사고 치면 누가 검사에게 사정하고, 누가 법원에 달려가고, 누가 유도를 가르칠까. 이런 걱정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방송 출연하면 돈도 벌고 인기도 누릴 수 있다. 그런 것을 왜 모르겠나. 하지만 망치 형사 박용호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제자가 유도대회 시합에서 한판승을 거두자 기뻐하고 있는 박 사부. ⓒ 조호진


제자들과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나?


"지난 두 달간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유도를 가르치지 말자고 수십, 수백 번을 다짐했는데 아이들이 사부님이라고 부르면서 찾아왔다. 아이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지난 6월 20일부터 6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사랑의 유도교실>을 다시 시작했다. 경찰 편이 된 제자 3명이 최근에 선배 유도관을 찾아왔다. 선배 유도관 소속으로 인천유도대회에 출전하려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유도대회에 출전하려면 소속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은 <사랑의 유도교실>을 통해 경찰청 마크를 달고 출전했는데 <사랑의 유도교실>이 중단되고 소속이 없어지면서 유도대회을 출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찰이 제자들을 데려갔으면 유도대회 출전까지도 책임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제자들은 어떤 소년들이었나?


"지난 2014년 제자 한 명이 소년재판을 받게 됐다. 소년원에 갈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부모 없이 소년을 키운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눈물로 사정하는데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판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아이를 살려주면 책임지고 사람 만들겠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판사가 '이런 광경을 처음 본다'면서 제자에게 '너, 사부님 말씀 잘 들어라'면서 선처를 베풀어주셨다. 또 한 번은 검사에게 선처를 호소했더니 '아이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해서 썼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유도대회에서 패한 제자를 위로하고 있는 박 사부. ⓒ 조호진


어떻게 해야 위기청소년을 살릴 수 있나?


태권도 교실과 유도교실 제자들을 끌어안고 살다시피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면서 품 안에 안겼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면서도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 반항하고 사고 치면서 튕겨나가려고 한다. 속된 말로 간을 본다. 그러다, 지속적으로 사랑해주면 어느 순간 '우리를 진짜로 사랑하는 구나'라고 믿는다.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변한다. 경찰을 비롯한 청소년 관련 부처와 지자체들이 위기청소년 선도 프로그램과 청소년 행사를 한다. 내가 보기엔 효과가 크지 않다. 전시행정과 실적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위기청소년을 진짜로 살리고 싶다면 일회성 행사와 실적에 매달리기보다 지속적으로 사랑해주어야 한다.

학교폭력 예방 강사 활동을 얼마나 했나?

"24년간 2500여회에 걸쳐 20만 명 정도에게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했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제자가 있다. 학교폭력 가해자로 대안학교로 강제 전학 간 개골뱅이 이었는데 강연을 통해 사제 인연을 맺었다. 교사를 폭행할 정도로 사고뭉치였던 소년이 대안학교 최초로 서울의 H대학교에 입학했다. 멋지게 변하는 제자들을 보면 힘이 난다. 이 보람 때문에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은둔 청소년 문제로 KBS-TV <속 보이는 TV> 28회에 출연한 박 사부. ⓒ KBS


은둔 청소년 문제로 KBS-TV <속 보이는 TV> 28회에 출연했다.


"2년째 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이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그 학교 학교전담경찰이었다. 학교를 방문하면 학생들을 안아주거나 쓰다듬어 주었는데 이 아이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정년퇴직 한 달을 앞둔 지난해 5월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아이가 자살사이트에 접속했다는 것이다. 교장과 교사들이 찾아가도 방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서 도움을 청했다. 아이 집에 찾아가 내 신분을 밝히면서 그 아이 이름을 불렀더니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곁에 있던 교감 선생님과 상담사와 엄마가 깜짝 놀랐다. 지난 25년 동안 별별 위기청소년들을 만났는데 중요한 해법은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면서 아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방송 이후 여러 학부형로부터 연락이 왔다. 명문대 자녀를 둔 학부모와 중소기업체 대표, 병원장과 경찰 부모 등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학부형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부모와의 대화 단절과 이로 인한 학교 결석과 은둔 생활 등이었다. 은퇴한 교장 부인이 찾아왔는데 부자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권위로 억누르는 아버지에게 상처 받은 교장의 아들은 일부러 사고치고,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에 먹칠한다며 아들을 미워하는 상황이었다. 하나 같이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위기청소년 살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은 한 경찰에게 받은 은혜 때문이다."


박 사부와 <사랑의 유도교실> 새 제자가 손가락 약속을 하고 있다. 사고 치지

않고 열심히 운동 하기로. ⓒ 조호진


어떤 은혜를 받았나.


"부평중학교 개골뱅이 시절이었다. 부평극장 뒷골목에서 아이들을 때리고 돈을 뺏다가 경찰에 붙잡혀 파출소(현, 지구대)로 끌려갔다. 보통은 큰소리로 욕설하며 취조하듯이 조사하는데 그 경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경찰아저씨가 부모님이 뭐하시냐고 물었다. 상이군인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으며 자랐다고 했더니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리고는 배고프냐고 물어보셨다. 배고프다고 했더니 부평시장 안에 있는 중국집에 데려가 자장면을 사주었다. 허겁지겁 먹고 나서 죄송한 태도를 취하자 경찰아저씨가 '나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네가 나중에 커서 너보다 불쌍하고 불행한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사주면 된다. 이제부터는 아무렇게나 막 살지 말고 가치 있게 살라'고 당부하셨다. 그때는 어려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말이 자꾸만 따라다니면서 내 삶을 바꾸었다. 좋은 경찰이 베풀어 주신 은혜 때문에 내 인생이 달라졌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위기청소년들에게 자장면뿐 아니라 국밥을 사주는 경찰, 개골뱅이들을 살리는 경찰이 되려고 노력했다. 부평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좋은 경찰아저씨가 개골뱅이 박용호를 오늘의 박용호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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