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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의 눈물을 닦아준 도강회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이 선생님의 페이스북 사진입니다.

     

이 선생님께서 설 명절을 앞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얼만 만의 통화였을까요. 햇수를 세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습니다. 청년 시절에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선생님은 참교육의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으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감당하셨습니다. 월급쟁이의 길이 아닌 참다운 스승이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유수(流水) 같이 흐르면서 정년 퇴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정년 퇴임한 뒤 전남광주, 여수, 순천에 살고 계시는 10여 명과 함께 ‘도강회’(渡江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산행을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연말에 도강회 회원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기금을 마련했다면서 어떤 분들을 도우면 좋겠냐고 상의하려고 연락하신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하, 어게인)을 통해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를 돕고 계십니다. 선생님이 정기 후원자로 묵묵히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원체 말씀이 없으신 데다 자신이 할 일을 조용히 하시는 분이어서 모르고 있다가 후원자 명단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단디아와 아들 '안데믹헥키로고줌'(오른쪽)과 안젤라와 딸 '김미안나아델'(왼쪽)

     

도강회에 세 분을 추천했습니다. 한 분은 미혼모에게 버림받은 증손주(4세)를 양육하고 계시는 원미동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두 분은 한국인 남성에게 버림받은 *코피노 미혼모입니다. 이들 코피노 미혼모는 자녀와 함께 남편이자 아빠의 나라인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지난해 한국에 왔습니다.

     

’코피노‘(Kopino)란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의미합니다. 유학과 사업 등의 이유로 필리핀에 간 한국 남성이 결혼을 전제로 하는 등으로 필리핀 여성과 사귀면서 혼혈아인 ’코피노‘가 태어나면 필리핀 여성과 아기를 외면한 채 한국으로 도피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필리핀 미혼모 ‘고줌 단디아 레인’(36세·단디아)은 한국인 남성 안모(50세)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안데믹헥키로고줌’(12세)을 데리고 2023년 1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 아빠인 ‘안’씨 성을 따서 ‘안데믹헥키로고줌’이라고 이름을 지은 아들에 대한 ‘인지’(認知 법률상의 혼인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를 자녀라고 인정하는 일) 청구를 통해 지난해 6월 한국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단디아는 2011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친구 소개로 한국 남성 안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서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단디아의 부모 집에서 살게 됐고 임신까지 한 뒤에 안씨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단디아는 안씨와 함께 필리핀 시청에서 출생 신고를 했고 성당에서 영아세례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씨가 한국으로 도피하면서 중증 자폐아인 아들을 혼자 양육해야만 했습니다.

     

필리핀 미혼모인 ‘아델 안젤라 바우티스타’(35세·안젤라) 또한 한국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딸 ‘김미안나아델’(11세)을 데리고 2023년 1월 한국에 입국했고 지난해 7월 ‘인지청구’를 통해 딸의 한국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안젤라는 2013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 남성들이 마련한 파티에 초대됐고 거기서 한국인 남성 김모(38세)씨를 만나 연인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임신 사실을 알리자 김씨가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현재, 단디아와 안젤라는 두 아이의 한국 아빠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했거나 소송을 통해 겨우 양육비를 받아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단디아와 안젤라는 한국에서 자녀를 키우기 위해 입국했고 인지청구를 통해 자녀에 대한 한국국적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가 코피노 두 미혼모가 신청한 ‘자녀 양육’(F-6-2) 비자를 내주지 않아서 의료보험 가입과 취업 등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법무부는 한국인 친부(나쁜 아빠)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중혼’ 상태이기 때문에 ‘자녀 양육’ 비자를 내줄 수 없다고 합니다.  


▲코피노 미혼모들이 쓴 감사편지


자식을 외면한 나쁜 아빠만 있다면, 자녀 양육 비자를 내주지 않는 냉정한 법무부만 있다면 코피노 미혼모에게 한국은 나쁜 나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코피노 미혼모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신 좋은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도강회’는 어게인이 추천한 세 분에게 각각 60만 원씩 모두 18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후원금을 전달한 시기가 설 명절이어서 더욱 감사했고 따뜻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에게 설날은 온 가족이 모여 행복을 나누는 명절이지만 늙고 병든 몸으로 버림받은 손주를 키워야 하는 원미동 할머니와 버림받은 자식과 함께 타국에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코피노 미혼모에겐 얼마나 서러운 겨울이었을까요.

     

이름도 모르고,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따뜻한 남녘의 한국 사람들!

     

도강회 회원들의 선한 기부로 인해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자의 나라에서 흘리는

아프고 서러운 눈물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도강회 회원께 감사드립니다.

     

한편, 어려운 처지의 코피노 미혼모들 나눔을 또한 나누어서 코끝이 찡했습니다. 코피노 미혼모인 단디아와 안젤라는 자신들에게 전달된 도강회 후원금 120만 원을 자신들처럼 코피노 자녀에게 한국국적을 찾아주기 위해 한국에 와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코피노 미혼모와 똑같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들 착한 코피노 미혼모의 한국 정착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소년희망편지에서는 등장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가명’ 또는 ‘별칭’ 등을 사용했으나 코피노 미혼모의 경우 이미 언론에서 실명과 사진 등이 노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코피노 미혼모의 동의를 받고 실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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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화되니 쑥스럽습니다.

이주민들을 비롯한 모든 약자들이 인간평등의 차원에서 충분히 인간적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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