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원미동 할머니의 소원
1.
산후우울증을 앓던 탈북 미혼모가
문란한 사생활과 술에 의지한 생활로
세 살과 한 살배기 두 아이를 학대·방임하다
자살을 기도했고 아이들은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기와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엄마가 키워야한다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낳은 생명을 학대하다 죽게하거나 죽인 여자는
엄마가 아니라 악마라는 것을 끔찍한 뉴스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2.
이혼한 아빠와 계모에게
아동학대를 심하게 당한 피해자가
친할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됐습니다.
결국, 쫓겨나서 청소년 쉼터를 전전하던 품행장애 소년
동현(가명 20세)이를 거두어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게 하고
원룸 등의 숙소를 마련해주고 학교를 중퇴하려는 것을 달래고
혼내면서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시켰고 취직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겨우 일하다가 그만두고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한 경찰서에서 동현이 관련해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동현이가 인터넷 물건판매 사기 사건에 연루됐습니다."
동현이를 무조건 도와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됐으니 범법(犯法) 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기로, 동현이가 살려달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개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3.
부모에게 버려졌으면서도
부모에게 학대당했으면서도
나쁜 형들의 폭력에 시달렸으면서도
그 고통과 아픔에 좌절하지 않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쏟았던 이등병 니체가
훈련소에서 발생한 공황장애가 악화되면서
의병(依病) 제대했으나 돌봐줄 부모가 없으니
스스로 생계를 잇기 위해 아픈 몸으로 배달하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발생, 보험 적용이 되지 않으면서
피해 보상금을 책임지기 위해 악전 고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돕겠다고 설득했지만
청년 니체는 스스로 극복하겠다고 했습니다.
공황장애를 앓으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께, 청년 니체를 위한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너무 곤히 자서 깨우기
안타까워 전철 타고 가요."
사무실에서 자고 일어나니
함께 잤던 아내가 없어졌습니다.
맨발로 뛰쳐나가 아내를 불렀는데도 답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이런 메모지를 남기고 소년희망공장에 혼자 일하러 간 것입니다.
저희 부부는 다시 사무실에서 숙식하고 있습니다.
침낭에 들어가서 뻔데기처럼 간이침대에서 잡니다.
다시 침낭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소년희망공장 때문입니다.
소년희망공장에서
희망을 키우던 아이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
자살을 꿈꾸던 아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면 희망이 생길 것이고
희망이 생기면 아픔을 극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소년희망공장을 운영했었는데….
MBTI 검사 결과
제가 ‘ISFP’로 나왔습니다.
“ISFP형은 마치 양털 안감을 넣은 오버코트처럼 속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면서 “타인의 괴로움과 고통에 특히 예민하여 아시씨의 성프란시스코처럼 연민의 정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ISFP형은 (상대를) 지나치게 신뢰하여 잘 속으며 그로 인해 마음이 상해서 어떤 일에서 물러나거나 포기한다.”며 주의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희망이 꺾이지 말아야 하는데
의기소침해지면서 위축됐습니다.
약간의 무기력증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희망편지를 쓸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라면 한동안 편지를 못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이 도착했고 다시 기운을 내게 됐습니다.
그 기쁜 소식은 손주와 함께 자살을 기도했던
원미동 할머니의 작은 소원을 들어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의 작은 소원은 20년 넘게 사용한 낡은 냉장고를 바꾸는 것입니다.
손주와 자식들이 떠안긴 카드빚과 은행빚에 쫓기는 할머니에게 새 냉장고는
꿈꿀 수 없는 가전이었기에 늙고 병든 자신처럼 낡은 냉장고를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천희망재단'에서 '소원우체통'을 공모했습니다.
'소원우체통'은 부천시에 거주하는 가난한 어르신 10명에게
100만 원 이내의 작은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소원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원미동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적으면서 삶의 용기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살 희망이 안 보여서 자살을 기도한 원미동 할머니에게는 따뜻한 희망이 필요합니다. 오래된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작동을 멈춘다면 할머니는 또 막막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새 냉장고가 생긴다면 그것은 새 희망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생기는 것이어서 증손주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삶의 용기를 낼 것입니다."
'소원우체통'에 선정됐다는 기쁜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할머니에게 전했더니 고맙다고 했습니다.
오늘(9일)은 할머니에게 어떤 냉장고를 선물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낡은 냉장고를 대신할 희망 냉장고를 찾았습니다.
절망의 가시밭길을 걷지 않고서는
희망에 이를 수 없음을 거듭 깨닫습니다.
아픔 끝에 도착한 곳이 희망봉인 줄 알고 소리쳤는데
알고 보니 절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은 그대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날개를 펴기 위한 몸부림이고 결국에 비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로 인해 수없이 마음이 상하고
이제는 그만 물러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아흔아홉 번 절망할지라도 단 한 번의 희망을 낳기 위해
가야 할 절망의 길을 걸어갑니다. 혼자라면 가지 못할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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