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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할머니의 편지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미혼모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기

윤호(가명·3세) 12월 지원금 40만 원을

원미동 할머니에게 송금해 드렸습니다.

30만 원은 양육비이고 10만 원은 월동비입니다.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 동안은 월동비를 지원합니다.

윤호는 어린 미혼모 엄마인

은희(가명·22세)의 둘째 아기입니다.

원미동 할머니 집에서 기거하던 은희는

2021년 2월경에 두 아이를 데리고 가출해서

딴 남자와 동거했고, 두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지자

2021년 3월, 돌을 앞둔 윤호를 할머니 집에 버렸습니다.

부천시 원미동에 사는 금자(가명·73세)씨는

손자인 영호(가명·22세)를 손수 키웠습니다.

며느리가 아기 영호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열아홉이던 영호는 스물에 아빠가 된 영호 아빠처럼

너무 일찍 아빠가 됐고, 거리에서 만난 동거녀 은희 또한

아기를 낳았을 뿐 책임을 지지 않고 떠난 영호의 생모처럼

첫째 혜은(가명·4세)이와 둘째 윤호를 낳았을 뿐 부모로서

양육의 책임은 소홀히 한 채 거리를 떠돌며 살아온 습관대로

유흥에 빠져살며 흥청망청 서로 싸우다가 가출했던 것입니다.

며느리에 이어 손주 며느리까지 가출하고

손주에 이어 증손주까지 떠안은 원미동 할머니는

기구한 팔자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늙고 병든 몸으로

손주를 어떻게 키울까? 생각하니 세상이 막막하고 두려워

한 많은 이 세상 그만 하직하자, 불쌍한 윤호를 두고 갈 수 없으니

내가 데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 생각이 왜 안 들었겠습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윤호 할머니입니다

쓸즐 모르는 글씨지만 몇자 적습니다


다름이 안이오라 저와 우리 윤호를 적국적으로(적극적으로) 휴원해(후원해) 주신 휴원자분들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저야 말로 그 엍던(어떤) 말로도 할수 없지만 무엇보다도 제 살임이(삶이) 끝나는 날까지 열심히 키울겁니다 한때는 포기 할라고도 햇지만(했지만) 우리 윤호 얼굴을 볼 때 나를 처다보는 모습이 너무 행복햇(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모습을 지겼분따(지켜보다) 아무것도 할수 없서습니다(없었습니다) 제가 나뿐지도(나쁜지도 생각을) 헸반지만(해봤지만) 그게 운면(운명)으로 안되더라구요 저는 우리 윤호를 대표님 아저씨 많나(만나) 다시 태어난 걸(것) 갓은(같은) 것입니다 우리 휴원자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림님다(드립니다) 회장님 대표니 아저씨 너무 고맙습니다 이제는 저는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휴원자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모든 분들 몸건강 하세요 저는 너무 죄인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원미동 할머니가 감사편지를 썼습니다.

철자와 띄어쓰기도 틀리고 글씨는 할머니의

인생처럼 삐뚤빼뚤 이었으나 꽃 편지지에 정성껏 쓴

할머니의 편지는 그 어떤 편지보다 더 가슴을 울렸습니다.

할머니는 편지에서 한때는 윤호를

포기하려 했다고 고백하면서 그런 자신이,

후원자에게 신세를 지고도 갚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죄인입니다’라고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면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윤호를 잘 키우겠다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우울증과 빈혈 등의 지병을 가진 할머니는 종종 앓아 눕습니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윤호 또한 코로나에 전염되고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젊은 엄마들도 아기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오죽했을까요.

손주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청소원으로 일하기도 하는 원미동 할머니는

아기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면서도 증조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윤호가 버림받은

상처를 조금씩 씻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행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윤호에게는 생부인 아빠도 있고,

친할아버지도 있고, 고모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엉킨 인생도 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윤호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없는 그들이 툭 던지듯이

하는 말이 "고생 그만하고 보육원에 보내라"고 하지만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는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내 핏줄을 어떻게 고아로 만들어.”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원미동 할머니의 강력한 핏줄 의식이

자칫하면, 끔찍한 불행을 불러올 뻔했습니다.

그런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윤호가 이렇게 살았고,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은

할머니에게 삶의 용기를 주신 후원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후원금으로 지원하는 윤호의

양육비는 그냥 돈이 아니라 삶의 용기이고 희망입니다.

지난 2021년 5월부터 2022년 12월 현재까지 20개월 동안

지원했던 양육비와 월동비는 2023년 내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양육비를 지원할 뿐 아니라 윤호 할아버지가 되어 함께 키우겠습니다.

자식들과 손주로 인해 가슴이 썩어 문드러진 할머니 신세타령도 들어주고

후원자이신 박종선 한약사님이 보내주신 보약을 나누며 건강도 챙겨드리고

할머니 집에 놀러가서 닭백숙과 만둣국도 먹고 싸주신 김치도 잘 먹겠습니다.



'소년희망배달부'인 저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원미동 할머니가 저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할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족히 3년이 넘으면서

남남이 아니라 좋은 동생 같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우리 윤호 잘 지켜바주시(지켜봐주시)’라 당부하며

‘아저씨는 눈을 감아도 못이일(못 잊을)’거라고 하면서

저를 위해 ‘항상 기도할께요’라고 하시니 눈물이 납니다.


조상묘를 잘못 써서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다고 한탄 하시는

할머니가 짠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교회 다니라고 권면했더니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아저씨 말은 믿겠다면서 동네 교회 갔는데

옷차림이 누추하고 늙었다고 홀대 당하고 돌아와서 속이 상했답니다.

가난하고, 상처받고, 외롭고, 슬픈 이웃들이 가야할 교회가 없습니다.

이들을 안아주고, 위로하며, 따뜻한 밥을 나눠줄 하나님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원미동 할머니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 올리오니 부디 들어주소서.

하나님 아버지!

큰맘 먹고 교회 갔는데

옷차림이 누추하고 늙었다

홀대당하고 그게 상처가 되어

다시는 교회를 가지 않을지라도

무슨 하나님이 이리도 야속하냐고

가난하고 병든 인생을 푸대접한다고

원망했을지라도 부디 거두어주시옵소서

제 몸과 살을 자식과 손주에게 다 내어주고

다 뜯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칠순 노인이

버려진 핏줄 거두고도 늙었다 구박받는 날이

기어코 오고야 말리니 그러면 또 타령하리니

한 많은 인생 야속한 세상을 이제 그만 떠날라네

마른 젖가슴 치다가 가슴 뜯다가 인생 하직하거든

부디, 모른 채 마시고 아버지 집에 들어가게 하소서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시면 이 영혼이 어디를 가오리까

북망산천이나 가라 하시면 황망해서 나는 어찌하오리까

짠하고 불쌍해서 내 어찌 눈물 흘리지 아니하오리까, 주여

부디, 모르채 마소서, 그리하면 내 어찌 아버지를 안다 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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