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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미혼부를 위한 기도


▶영호를 키워주신 할머니와 영호의 둘째아기. ⓒ 조호진


영호(가명·20세)에게 할머니는 엄마입니다.

영호를 낳은 엄마는 영호가 갓난아기 때 떠났습니다. 그래서 영호는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만약에 할머니가 없었다면 영호는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영호를 눈물로 키운 할머니에게 영호는 가슴 아픈 손가락입니다. 영호 아빠는 아내가 떠난 뒤 방황하면서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부모 사랑을 받지 못한 영호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영호 할머니(71세)는 부천시 원미동의 2층짜리 단독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삽니다. 낡고 오래된 이 집은 원래 할머니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장만한 집이 가정 사정으로 집이 날아갔고 할머니는 자신의 집이었던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호 할아버지가 살다 떠난 집, 그리고 이 집에서 자란 영호는 돈을 많이 벌어 할머니의 집을 할머니에게 선물하는 것이 꿈입니다. 청소부로 일하는 영호 할머니의 꿈 또한 잃어버린 집을 되찾는 것입니다.


영호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치킨 집 배달 알바와 오토바이 배달대행업체에서 열심히 일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덕업주가 영호의 꿈을 빼앗아 갔습니다. 20개월 치의 체불임금 3천 여 만원을 받지 못한 영호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받고 휴대폰 업자에게 속는 등으로 인해 2천만 원이 넘는 부채가 생겼습니다. 게다가 오토바이 교통사고까지 발생, 소년재판에서 8호 처분(소년원 1개월 이내 송치)을 받고 한 달간 소년원 생활을 했습니다.


▶어린 미혼부를 품어준 회사 씨티이텍 전경. ⓒ 조호진


영호의 체불임금 해결을 위해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인 김광민 변호사님을 찾아갔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악덕업주가 신용불량자 상태인 데다가 영호가 계약서 등으로 자기권리를 챙겼어야 했는데 영호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자기 권리를 구제받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위기청소년들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세상입니다.


지난해 7월, 소년원에 갔다 온 영호를 처음 만났습니다.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영호는 동거녀인 은희(가명)와 함께 3개월 된 아기 혜은(가명)이를 안고 나타났습니다. 영호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순진한 소년이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소년원에서 나온 영호는 치킨 집 알바를 뛰었지만 알바 수입으로는 2천만 원이 넘는 부채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영호네 가정은 십중팔구 깨질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렇게 되면 혜은이는 아빠처럼 엄마 없는 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어린 미혼부. ⓒ 조호진


영호네 가정을 살린 좋은 이웃은 어게인의 후원자이신 이종하 선생님입니다. 지진과 건물붕괴 등의 재난에서 실종자가 발생되면 구조견을 통해 인명을 구조하는 순수 지원봉사 활동가인 이 선생님은 경기도교육청과 인천가정법원이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에게 위탁한 보호소년 특별교육에 애견치료 자원봉사자로 활동했습니다. 이 선생님은 영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취직시키기에 앞장섰습니다. 고졸이 기본인 취업 시장에서 고등학교를 자퇴한 영호가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더군다나 소년원 출신을 채용할 기업이 과연 있을까요.


가난의 설움을 겪은 영호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자퇴한 열일곱 살 때부터 오토바이를 몰면서 배달 대행을 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악덕업주에게 수천만 원을 떼이고도 보호받지 못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소년원에서 나오자마자 치킨 집 오토바이를 몬 것은 이 때문입니다. 아빠처럼 살지 않기 위해 몸부림쳐도 아빠처럼 되어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가난 때문에 못 배우고 못 배웠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굴레에서 영호는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영호의 첫째아기 돌잔치가 열렸습니다. ⓒ 조호진


"시인 아저씨, 잔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저를 시인 아저씨라고 부르는 영호는 자신의 안부를 이렇게 전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어린 부부의 철없는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가 칼로 물베기로 끝나면 가슴을 쓸어내리곤 합니다. 외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어린 부부가 안정된 삶의 고지를 얻으면서 조금은 든든해졌습니다. 든든한 고지는 좋은 일터입니다.


영호는 현재 이종하 선생님의 형님 회사로 변압기 제조업체인 '시티이텍'(대표 이성하)에서 생산직 사원으로 9개월째 일하고 있습니다. 연봉 2700만 원 가량이니 오토바이 알바로는 벌기 힘든 수입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돈으로 채무를 거의 다 갚았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언제 사고 날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오토바이 배달에 비하면 이 회사는 안정된 직장이자 안전한 일터입니다.


학력도 경력도 미달인 영호가 회사 생활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권혁중 관리이사님을 비롯한 회사 동료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회사의 배려가 아니었다면 일손이 느렸던 영호는 수습기간을 채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스무 살에 두 아이의 아빠이자 네 식구의 가장인 영호를 보호하기 위해 애써주신 씨티이텍 대표이사님과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여러분은 어린 노동자 한 명을 고용한 게 아니라 위기에 처한 가정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지난 4일(토), 영호 할머니네 집에서 영호 첫째아기 혜은이 돌잔치가 열렸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할머니네 반지하 단칸방에서 조촐한 돌잔치로 대신한 것입니다. 홀로 초대받은 저는 어게인 후원자이신 김민수 선생님이 주신 유모차와 보행기 등을 축하선물로 전달했고 코로나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회사 동료들은 축하봉투를 십시일반으로 만들어 선물했습니다. 의지 가지할 이웃도 어른도 없던 영호에게 회사 동료들은 든든한 형님이고, 삼촌이고, 보호막입니다.


지난 3월초엔 둘째 현호(가명)가 태어났습니다. 회사는 열흘간의 출산휴가를 챙겨주었습니다. 갓난아기 현호가 아플 때는 바쁜 회사일보다 가정사를 우선해주었습니다. 어린 미혼부인 영호에게 이 세상은 너무 폭력적이었고 무자비했지만 좋은 회사와 좋은 어른들을 만나면서 세상은 빛과 희망의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에는 어둠도 있지만 빛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세상으로 진입한 영호네 가정이 어둠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비는 마음으로 시를 나눕니다.



두 아이의 아빠인 스무 살 미혼부여

권리를 빼앗겼던 억울한 시절은 지나갔으니

이제는 삶의 진실한 꿈 아름다운 꿈을 꾸어라

할머니에게 원미동 집을 선물하는 꿈을 꾸어라

좋은 이웃에게 받았던 사랑을 갚는 꿈을 꾸어라

좋은 아빠를 못 만났으니 좋은 아빠의 꿈을 꾸어라

아픔과 슬픔으로 자란 미혼부를 위해 빌고 또 비나니

두 아이에겐 엄마 없는 아픔이 없기를 빌고 비나이다

돈 무서운 줄 몰랐던 철없는 시절로 돌아가지 말기를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의 눈물을 잊지 말기를

아직은 철없는 사랑 아슬아슬한 가정이 잘 지켜지기를

그댈 아는 사람들도 빌고 모르는 사람들도 빌고 비나니

삶은 저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저버리는 것이 아니므로

어둠이 아닌 빚을 향해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걸어 가다오


(조호진 시인의 '어린 미혼부를 위한 기도')



※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는 위기청소년과 어린 미혼모의 사연을 담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돕는 따뜻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입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에서 '소년희망배달부'로 활동 중인 조호진 시인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기금을 조성, 2016년에는 경기도 부천에 <소년희망공장>을 만들었고 2018년에는 부천역 뒷골목에 <소년희망센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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