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7화] 2016-05-02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김진석
"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봉사,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 있고 행복한 거잖아. 꼭 돈 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게 아니잖아. 나만 그렇게 살면 뭐해? 나만 편안하면 뭐해?"
1986년 1월 15일 전교 1등이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성공한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삶을 원했던 소녀가 성적만 강요하는 세상을 향해 '나만 잘 살면 뭐해! 나만 편안하면 뭐해!'라고 항의했던 것입니다. 소녀가 행복을 가르쳐주고 떠난 지 30년이 지난 2016년,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장덕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이 2014년 11월 발표한 제12차 미래 한국 리포트에서 한국인의 핵심 가치관은 '경쟁'과 '성공'이라고 밝혔습니다. 청소년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은 조사대상 36개국 중 35등, 어른들의 관용에 대한 의지는 조사대상 62개국 중에 꼴찌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는 모두가 알아서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사유 1위는 '학교 부적응'
"공부 못하는 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어요."
학교 밖 청소년이 된 사유 1위는 '학교 부적응' ⓒ김진석
2016년 학교 밖 청소년은 39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학교 밖 청소년은 학교 부적응, 유학, 질병, 가정 사정, 비행 등의 사유로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이 가운데 학교 밖 청소년이 되는 가장 큰 사유는 학교 부적응이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도시형 대안학교 '사랑의 학교'.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부적응 이유를 들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공부 못하는 애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어요." - 철호(19) -
"선생님들과 담을 쌓고 살았어요. 학교가 싫었고 공부도 따라갈
수 없었어요." - 수아(18) -
학교의 관심은 여전히 성적입니다
교사들은 그렇게 취급하지 않았겠지만 철호와 수아처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으로 바닥에 깔린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잠자고 결석합니다. 교사들은 수업 방해만 하지 말라고 묵인하고 방치합니다. 학교를 다녀야 할 의미를 상실한 학생들은 학칙을 위반하고 찍히면서 자퇴합니다.
학교 밖에서 학교 안을 그리워하는 아이들 ⓒ김진석
자퇴(自退)란 스스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과연 학생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걸까요? 아니면 성적 지상주의에 의해 학교 밖으로 쫓겨난 걸까요? 학교 밖 청소년 가운데 대안학교 진학과 검정고시 등 학습형이 41.7%, 방황하고 배회하는 유형이 20.1%, 아르바이트 등 취업형이 11.8% 순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 범죄율이 23.1%로 나타난 것처럼 학교 밖 청소년의 상당수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가정과 학교의 압박과 무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합니다.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학교 밖을 선택하지만 청소년들의 막연한 기대는 순식간에 깨집니다. 생존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채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 학교 안을 그리워합니다.
"낮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 밤새 게임하는 등 밤낮이 바뀌면서 가
족과의 갈등이 심했어요." - 창훈(19) -
"학교를 그만둔 것을 후회해요. 처음에는 자유롭고 좋았는데 시
간이 지나면서 교복 입은 애들이 부럽기도 하고 복학하고 싶은데
후배들과 함께 다닐 자신은 없고 막막했어요." - 휘재(18) -
"학교가 싫었는데 그만두고 나서 노는 것이 지겹고 할 일도 없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장 컸어요. 학교가 그렇게 싫었는데 교복
입고 있는 애들이 부러워요." - 성훈(20) -
사랑의 학교에서 일어난 기적
미래가 깜깜했는데 희망이 생겼어요!
선생님, 희망이 생겼어요! ⓒ김진석
2001년 공부방으로 출발한 '사랑의 학교'는 시설과 재정 등에서 제도권 학교에 비해 매우 부족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절망했던 학생들이 부족한 게 많은 이곳에서 희망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절망 대신에 희망을 품은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공부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일대일 수업으로 모르는 것은 기초부터 가르쳐줘서 적응하게 되었어요. 캠프 활동, 여행, 마술, 난타 등 다양한 체험활동과 가족적인 분위기와 맞춤식 학습지도가 도움이 됐고, 중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면서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꿈을 갖게 됐어요." - 철호(19) -
"적응이 힘들어 나오지 않으면 (자원봉사 교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처음에는 귀찮기도 했지만 점점 마음이 열렸고 나만 힘들고 불행한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불행한 애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대인관계가 어려웠는데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어려운 애들을 만나면서 서로 위로도 되고 친해지면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됐어요." - 수남(22) -
"초졸 학력이 검정고시로 중졸과 고졸까지 딴 것은 저에게는 기적이었어요. 지금은 옷가게에 취업해서 돈도 벌고,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이제는 앵벌이 안 하고 내가 번 돈으로 월세를 내면서 살게 됐어요." - 원진(20) -
"어머니와는 관계가 많이 회복됐어요." ⓒ김진석
어떤 학교 교사들은 소년들의 마음을 닫게 했지만 이 학교의 자원봉사 교사들은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알아서 따라오라는 학교나 학원의 수업방식이 아닌 일대일 맞춤식 수업방식은 학습 의욕과 능력을 고취시키면서 공부해야 할 이유를 갖게 했어요. 무엇보다 자기만 힘든 줄 알고 원망하고 불평했는데 자신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좌절에서 탈피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원진이는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앵벌이 소년에서 자립생활을 하는 대학생이 된 것은 그의 표현대로 기적입니다. 원진이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미래가 깜깜했는데 공부와 다양한 활동을 통해 희망과 의욕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가족 간의 갈등이 해소되면서 집안이 편안해진 소식은 모두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어머니와는 관계가 많이 회복됐어요. 대안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여행 다니고 마을 축제도 하면서 형, 동생들과 많이 친해졌어요. 동물학과를 진학하려고 지원했는데 탈락했어요. 좌절도 했지만 그래도 내년에 도전해 보고 안 되면 군대 가려고요." - 철호(19) -
은희(16)는 어렸을 때 손을 다치면서 의수를 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그런 은희를 배려하기는커녕 놀리고 왕따 시켰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은희는 사랑의 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엑셀, 파워포인트, 한글, 포토샵 자격증 땄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난타공연을 하고 130km 도보여행을 완주한 은희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도움을 받았으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행복은 학벌이 아닌 봉사 순
스펙 쌓기가 아닌 사랑의 수고를! ⓒ김진석
사랑의 학교를 거쳐 간 자원봉사 교사들은 200여 명입니다
이들은 행복은 학벌과 성적이 아니라 나눔과 봉사라는 것을 알고 실천했습니다. 스펙 쌓기가 아닌 사랑의 수고로 청년 시절을 보낸 자원봉사 교사들은 의사, 변호사, 대기업 임원 등으로 살아가면서 사랑의 학교를 후원합니다. 이들에게 사랑의 학교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삶의 아픔과 기쁨이 있으면 연어처럼 돌아와 봉사하며 아픔과 기쁨을 나눕니다.
익명을 요청한 변호사(37)는 10년 전에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한 그는 2차를 준비해야 함에도 교사 생활에 충실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만 자신보다 남은 돕는 자를 더 돕지 않을까요.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결혼을 하고 변호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에 지난달부터 자원봉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사양한 변호사가 들려준 짧은 코멘트는 이렇습니다.
"제가 행복해지려고 자원봉사를 다시 시작한 것뿐입니다."
빚 갚는 중이라는 교사 서성구씨. ⓒ김진석
서성구(29․엔젤스헤이븐 해외사업팀)씨는 2013년 10월부터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빚을 갚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무료 급식 쿠폰을 받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는 담임선생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 덕분에 가난한 시절을 잘 극복했다면서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상처 입고 밖으로 나온 제자들에게 정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보다는 형과 오빠처럼 지냅니다. 힘든 점이 있냐고요? 그냥 재밌고 행복합니다."
2016년에 채택해야 할 1986년 소녀의 메시지
문전박대하지 말라..학교 밖으로 쫓아내지 말라
2016년 대한민국이 채택해야 할 것은? ⓒ김진석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소녀가 남긴 유서의 끝부분입니다
유서를 읽는 것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소녀가 남긴 것은 유서가 아니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2016년 대한민국이 채택할 것은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이 아니라 1986년 소녀의 행복 메시지입니다. 소녀는 경고합니다. 이대로 욕망에 쫓겨 살면 일본과 에콰도르를 덮친 지진보다 더 큰 재난이 덮칠 거라고, 도움과 사랑을 구하는 이웃을 문전박대하고, 아이들을 학교 밖으로 쫓아내는 세상을 신은 축복하지 않을 거라고..
저녁밥도 함께 먹는 사랑의 학교 ⓒ김진석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주기 위해 떠난 소녀여, 학교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소년에겐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해주십시오. 희망은 공기와 같아서 희망이 없으면 소년들은 절망으로 질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십시오. 소년에게 절망을 권하면 나라가 절망으로 붕괴할 것이요, 소년에게 희망을 주면 우리가 희망을 볼 것이요, 소년에게 희망으로 손을 잡아주면 세상이 희망으로 일어설 것임을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저 또한 소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행복은 성적과 학벌이 아닌 나눔과 사랑이라는 소녀의 기도를 신이여, 세상 사람들이 이제라도 깨우치도록 도우소서, 제발!
왼쪽부터 서동진(25․수학), 김가연(26․한국사-미술), 김교은(31․영어-수학)
서성구(29․사회) 자원봉사 교사
※ [소년이 희망이다]는 조호진 시인이 2016년 3월부터 6월까지 <국민일보>와 다음카카오에서 동시 연재한 스토리펀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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