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소년희망배달부

아내와 자식을 잃은 제화공

톨스토이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제화공 마르띤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아들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그의 아내가 세 살배기 막내아들을 두고 차마 떠나지 못할 하늘나라로 떠난 것입니다. 마르띤은 막내아들 까삐또시까를 시골 누이에게 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쌍한 생각이 들어 셋집을 얻어 둘이 살았습니다. 엄마 잃은 까삐또시까가 자라서 아버지를 도울 수 있게 되자 마르띤은 기뻤습니다. 그런데, 열병을 일주일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 남은 혈육마저 잃은 마르띤은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입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죄도 없는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앗아 간 하나님을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르띤은 자신도 데려가달라고 조르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마르띤은 이대로 죽어서 아내와 자식 곁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어느 날, 8년째 순례 중인 노인이 절망에 빠진 마르띤을 찾아왔습니다. 마르띤은 노인에게 “하나님께 자신을 데려가라고 빌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난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소연하자 노인은 하나님을 위해 살면 삶의 소망이 생길 것이라면서 “복음서를 읽으면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노인의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래서 마르띤은 활자가 큰 신약성경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는 슬픔에 잠겨 탄식하거나 선술집에서 보드카를 마시고 밖으로 나와 행인에게 시비를 걸면서 욕설을 지껄여대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저녁 성경을 읽으면서 비통에 잠겼던 삶에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마르띤은 아침에도 복음서를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슬픔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주님은 애통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잘 먹게 해서 배부르게 해주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일쑤이지만 애통하는 사람은 그 슬픔 때문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주님을 원망하지만 주님의 손을 뿌리치진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애통하는 이웃을 찾아가 우는 자와 함께 우시면서 안아주십니다. 그런 주님이 어느 날, 마르띤에게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마르띤, 마르띤! 내일 거리를 보아라. 내가 너를 찾아가겠다!”

     

다음 날 새벽 기도를 하고 벽난로에 불을 피운 마르띤은 주님의 목소리가 환청일까? 정말일까? 긴가민가하다가 “주님이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다니. 늙어서 바보가 되었나 봐”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목소리가 생각나서 창밖을 바라보는데 눈을 치우던 늙은 청소부 스쩨빠니치가 얼어버린 것처럼 서 있었습니다. 마르띤은 스쩨빠니치를 집안으로 불러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언 몸을 녹이게 했습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언 몸을 녹인 스쩨빠니치는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성호를 그으며 말했습니다.

     

“마르띤, 자네는 나를 후하게 대접했고 영혼도 몸도 배부르게 했구먼.”

     

스쩨빠니치가 나간 뒤, 구두 뒤축을 박던 마르띤이 창밖을 보는데 여름 옷을 입은 여인이 품에 안은 아기를 달래려고 애를 썼지만 살을 에이는 추위에 시달리던 아기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기 엄마를 집으로 데려온 마르띤이 벽난로에 몸을 녹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라고 하자 아기 엄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 젖이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마르띤은 따뜻한 야채 수프와 빵을 대접했습니다.

     

허기를 채운 여인이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군인 남편이 멀리 떠난 뒤 소식이 끊겼고 혼자 아기를 낳았으며 가정부로 일하려고 했지만 아기가 있는 자신을 아무도 고용하지 않아서 가진 옷을 팔고 스카프까지 저당 잡혀 연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불쌍히 여긴 어느 여주인이 집에 와서 살라고 해서 찾아가던 길이었다고 했습니다. 마르띤이 딱한 여인에게 낡은 외투와 은전을 건네면서 “주님을 위해 받겠나.”라고 말하자 아기 엄마가 울음을 터트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이 저를 할아버지에게 보내셨나 봐요. 그렇지 않았으면 아기는 얼어 죽었을 거예요.”

     

아기 엄마가 감사하며 성호를 긋고 떠난 뒤, 마르띤은 다시 일감 앞에 앉아 일하며 창밖은 보는데 사과 장수 노파가 사과를 훔치려고 했던 소년의 머리채를 붙잡고 욕하고 있었습니다. 험악한 장면에 놀란 마르띤은 바늘을 내 던지고 문밖으로 나가다가 계단에서 넘어져 안경을 떨어뜨렸습니다. 밖으로 뛰어 가보니 노파가 소년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욕을 하면서 파출소에 데려가려고 했습니다.

     

마르띤은 노파에게 “할멈, 주님을 위해 놓아줘요!”라고 부탁하면서 사과를 훔치지 않았다고 발뺌하는 소년에게는 “할머니에게 용서를 구해라. 네가 가져가는 걸 내가 봤다”고 말하자 소년이 울음을 터뜨리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마르띤이 노파에게 사과 값을 지불하겠다고 말하면서 훔치려고 했던 사과를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노파의 사정도 딱했습니다. 자식이 일곱이나 있었는데 다 죽고 딸 하나만 남았다고 밝힌 노파는 가엾은 손자들을 위해 늙고 병든 몸으로 사과를 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노파가 소년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이라는 게 다 그렇지.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소년을 용서해준 노파와 용서 받은 소년이 할머니와 손자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떠났습니다. 슬픈 사람은 슬픈 이웃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의 아픔을 잘 헤아릴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그런 사정에 처한 이웃이 남 같지 않아서 가난한 빵을 나누고, 서로 보듬으면서 상대방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마르띤이 램프에 불을 밝혔습니다. 그새 어둠이 내린 것입니다. 장화 하나를 다 만든 마르띤은 작업 도구와 가죽 쪼가리와 실 뭉치 등을 정리한 뒤에 복음서를 꺼냈습니다. 성경을 읽으려고 하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르띤이 고개를 돌리자 어떤 목소리들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늙은 청소부 스쩨빠니치와 아기를 안은 여인과 사과 장사 노파와 소년이 연속 나타나 미소를 짓다가 밝은 모습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성호를 그은 마르띤은 기쁜 마음으로 마태복음서를 읽었습니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그대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환대해주었으며, 헐벗었을 때에는 따뜻한 옷을 입혀주었고, 병이 들었을 때에는 돌보아 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위로해주었다. 그러므로, 내 형제인 가장 작은 이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선대’(善待)했으니 그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주님은 저 높은 곳에서 이 낮은 땅을 내리 깔아보시는 군림의 제왕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구원자이심을 마르띤은 깨달았습니다. 늙은 청소부와 아기 엄마와 사과 장사 노파와 소년을 대접한 것이 사실은 구원자를 대접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감명을 받은 늙은 제화공 마르띤은 두 손을 모아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이 아기 예수로 오신 성탄절에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의 줄거리에다

제 마음을 약간 보태어 쓴 글을 선물로 드립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entá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