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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 같은 한약사 박종선

[소년희망편지] 박종선 후원자의 아름다운 삶



“내가 쓰러지지 않게 된 것은 아무래도 한약 때문인 것 같아요!” 아내 최승주 권사는 연례행사처럼 1년에 한 번 정도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신우신염’을 앓으면서 오른쪽 신장 기능에 장애가 생긴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밤낮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과로 환경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쓰러졌던 시기는 소년희망공장이 폐업 위기에 처한 2017년이었습니다. 그랬던 아내가 6년째 쓰러지지 않은 채 버티고 있습니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소년희망공장 1호점이 살아났을 뿐 아니라 7호점까지 늘어난 데 이어 8호점과 9호점으로 확장될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한국에 온 중도입국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하면서 업무에 대한 부담과 재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마지막으로 쓰러진 2017년보다 커졌는데도 건재하자 그 원인이 어게인 후원자이신 박종선 한약사가 5~6년째 후원해주시는 진한 쌍화탕 덕분인 것 같다고 아내가 말했고 저 또한 동의했습니다. 올해로 19년 차 한약사인 박종선 후원자는 저희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후손과 부천의 복지관과 공익활동가와 미혼모 엄마에게 버림받은 손주를 키우는 원미동 할머니에게까지 한약을 후원했습니다.


한약사 출신의 어른 김장하 선생님처럼 부천의 한약사인 박종선 후원자 또한 자가용이 없습니다. 운전면허증도 있고 자가용을 사려고 마음먹으면 살 수도 있지만 근검절약하며 살라고 하신 부모님의 가르침을 위반할 생각이 없습니다. 한약을 배달해야 하거나 바람을 쐬고 싶으면 자전거를 이용하면 됩니다. 효심이 지극한 그는 전주에 사시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가면 편하게 귀향할 수 있는데도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갑니다. 자가용의 편리함보다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선택한 그의 가족들은 천천히 가면서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며 가족애를 나눕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마이 카’(my car) 시대가 되면서 차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조금의 불편도 참지 못하고 자가용을 굴릴 뿐 아니라 차가 이동수단을 넘어 자기 과시 수단이 되면서 사람의 됨됨이보다는 고급차냐 아니냐로 등급을 매깁니다. 고급차의 주인 상당수는 장기 할부금과 유지비에 치인 욕망의 노예인데도 말입니다.


박종선 한약사가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은 아주 낡았습니다. 20년이 넘으면서 곳곳이 낡고 헤졌는데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머님이 주신 선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쉽게 사고 마구 버리는 사람들처럼 자본주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은 불편함을 그리도 못 참으면서도 불의한 권력이 정의를 짓밟는 것을 보면 그렇게도 잘도 참습니다. 조금의 손해를 봐도 참지 못하고 그렇게도 잘 따지는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도 잘 외면합니다. 박종선 한약사의 가족들은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선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흘리는 눈물을 편하게 외면하는데 그의 가족들은 약자들이 흘리는 눈물이 불편해서 외면하지 못합니다. 불의한 권력의 폭력을 외면하는 편함보다 저항의 불편함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수입의 10분의 1인 50만 원을 매월 시민단체와 진보언론과 그리고, 미혼모와 위기 청소년 돕는 어게인에 후원하면서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이하, 부천지부)는 민족문제연구소 30여 곳의 국내외 지부 가운데에서도 선도적이고 모범적으로 활동하는 지부로 꼽힙니다. 2005년 창립한 부천지부는 부천의 독립운동을 알림과 일제 잔재 청산 운동 그리고, 남북의 평화통일 관련 사업을 하고 있으며 회원은 350여 명입니다. 상근 활동가를 두지 못한 부천지부가 친일청산 등의 전국 현안과 함께 지역 연대 활동에 앞장설 수 있는 것은 성실한 시민운동가인 박종선(46세) 지부장의 헌신과 희생 덕분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부터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을 시작한 박 지부장은 2011년부터 6년간 부천지부 사무국장을 지낸 뒤 2017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7년째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부천지부가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지부로 꼽히는 것은 박 지부장의 솔선수범 리더십 덕분입니다. 13년째 무보수 활동가인 그는 출마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간절히 원하고 꿈꾸는 것은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와 그 잔재들을 청산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온전히 기리는 정의로운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학생운동권 출신이 아닙니다. 그가 친일 문제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은 상식적인 가치관 때문이었습니다. 문학 청소년이었던 그는 고교 시절, 친일파 문인 서정주를 놓고 친구와 토론했는데 그 친구는 “서정주의 삶과 문학을 분리해야 한다”며 서정주의 친일 행위를 옹호했던 반면 그는 “삶과 문학을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 서정주와 그의 작품을 한국 문학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교생 박종선의 친일 문인 청산 주장은 시민 박종선의 신념이 됐고 삶의 방향이 됐습니다. 그의 시민운동은 삶이 있는 운동입니다. 간호사 출신인 아내와 두 아들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인 동시에 시민운동에 앞장선 남편과 아빠의 지지자이자 동지입니다. 그의 가족에게 친일청산과 일본제품 불매운동 집회 및 시위 현장은 살아 있는 역사 교육현장입니다. 역사를 외면한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데 어찌 가족에게 미래가 있겠습니까. 그는 두 아들과 함께 부천역 광장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피켓 시위를 전개했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정직한 한약사이자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성실한 시민운동가 박종선을 보면서 복잡하거나 비루하지 않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지하게 용감하지 않을지라도 불의에 맞설 수 있다는 것, 돈을 많이 벌지 못할지라도 허튼 과소비를 하지 않으면 가난한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것, 거짓 투성이 욕망의 삶으로 얻는 재물과 권력에 비해 정직하고 성실한 삶은 낡은 가방처럼 남루해 보일지라도 그 삶이 깊어지면 그 샘에서 자족과 감사의 삶을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것.


박종선은 언제나 묵묵히 자기 길을 갑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을지라도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니 시비에 걸리지 않습니다. 수많은 헌신과 희생을 할지라도 공치사를 하거나 자기를 자랑하지 않으니 다툴 일이 없습니다. 그가 한약사이기보다는 수도사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수도사 같은 한약사 박종선의 눈이 맑은 것은 삶은 소박하고, 행동은 겸손하며, 나눔은 진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상도 진주는 한약사 김장하 선생이 계셔서 좋겠습니다. 어른이 없는 이 세상에서 어른과 함께 살고 있으니 남강은 더욱 유유히 흐를 것입니다. 진주에 비할 바 아니지만 경기도 부천에는 어른 김장하 선생의 삶을 따르는 정직한 한약사이자 성실한 시민운동가 박종선이 있으니 부끄러운 삶을 부끄러워할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문득, 욕망의 삶에서 하차하고 싶거나 혹은 자족과 감사의 샘물에 목을 축이고 싶거든 부천의 시민운동가 박종선을 찾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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