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물 1화. 2015-07-08
3년 전
성동구치소 접견실에서 열일곱 살 소년을 면회했습니다. 가로 막은 아크릴 차단막 너머로 감색 수의를 입은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깡마른 몸과 이국적인 얼굴, 소년의 눈빛엔 원망과 슬픔이 서려 있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 담벼락에다 화염병 투척실험을 하고 자신이 사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다섯 번이나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됐었습니다. 소년은 열일곱 살 인생 동안 주목받은 적이 전혀 없었는데 갑작스레 주인공이 됐었습니다. 방송과 신문 등이 연일 대서 특필한 것은 다문화와 왕따 문제가 사회 이슈였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저는 반쪽짜리인가요?
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저는 분명 한국 사람인데 주변에선 한국 사람도 아니고 러시아 사람도 아니라고 해요. 그러면 저는 반쪽짜리인가요?"라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왕따 당한 다문화 소년이 저지른 연쇄방화, 언론은 비극의 흥행을 노렸을 것입니다. 불행한 가족사도 큰 몫을 했을겁니다. 러시아 엄마와 한국 아빠를 둔 소년은 1995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공산당 간부의 딸이었다는 '정발렌티나 니콜라예브나'인 소년의 엄마는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떠나버렸습니다. 소년의 아빠는 떠나간 아내를 기다리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다 소년을 돌보던 할머니는 가출한 손자를 찾아 나섰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이 비극, 이 고통, 이 슬픔을 소년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요?
언론이 대서특필하자 각계 인사들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영화감독은 소년의 가족사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어떤 선교사는 소년을 선교지로 데려가서 공부시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헛바람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언론의 대서특필이 평지풍파를 일으킨 뒤 잠잠해지자 그들도 무관심으로 돌아섰습니다. 값싼 자비와 관심은 그렇게 끝나버렸습니다. 소년의 인생은 '놀림'과 ' 왕따'의 인생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쏘련놈'이라고 놀림을 당했답니다. 쏘련을 아십니까? 소련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약칭으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였습니다. 그러다 1991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됐었습니다. 쏘련놈이라는 놀림과 왕따에 시달린 소년은 우울증에 걸렸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소년은 고통을 주는 학교와 외로운 집을 탈출해서 노숙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버려진 소년은 버려진 어른들이 편했던 겁니다.
엄마란 이름은 금기어
소년은 철수라는 이름의 노숙자를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 '아빠'. 아빠라고 부르니 기분이 좋아져서 아빠, 아빠하고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이름도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엄마'. 엄마의 'ㅇ'(이응)만 발음해도 기분이 우울해지기 때문에 소년에게 엄마란 이름은 금기어하고 합니다. 소년은 노숙자 아빠에게서 술을 배웠습니다. 하얀 액체를 마시면 슬픔은 사라지고, 알딸딸한 불콰함이 소년을 구름에 태워주었습니다. 그래서 술과 금방 친해졌습니다. 술과 친해진 소년은 술값 마련을 위해 폐품을 줍고, 폐품을 팔아서 소주와 컵라면을 사고..그러다가 할머니에게 붙잡혀 귀가하고 또 가출하기를 반복습니다. 2011년 여름, 소년은 급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너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가출한 너를 찾으러 다니다가!"
할머니의 사망으로 소년이 귀가하자 철수씨는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그러던 2011년 겨울, 철수 씨는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노숙자 아저씨들에게 이렇게 전해 들었다며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거적 같은 것에 덮인 김철수, 거적을 제대로 덮지 않아 삐져나온 너의 아빠의 때 묻은 발가락을 봤다" 라고 말입니다.
"너 때문에 할머니가 죽었어!"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울기만 했습니다. 친척들과 조문객들은 소년을 비난했습니다. 소년은 사죄의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장례식 내내 울었다고 합니다. 소년은 울보이자 약골이었습니다. 소년은 어려서부터 자주 아팠습니다.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으니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은 '아픈 아이'입니다.그런데 어른들은 '나쁜 아이'라고 낙인찍었습니다. 소년은 뇌경색 환자인 할아버지와 살았습니다. 할머니와 노숙자 아빠마저 떠나면서 소년은 더 외로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친구가 나타났습니다. 길에서 유기 토끼를 만난 겁니다.
"토끼야, 토끼야 우리 집에 갈래?" "주인은 나를 버렸는데 너는 왜 나를 데려가려고 하니? 혹시 나를 잡아먹으려고?" "그건,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럼, 너는 누구니?" "나는..나는 아픈 아이야!" "아픈 아이, 어디가 아픈데? 왜 아픈데?" "그건 묻지 말아줘. 아픈 이야기를 하면 눈물이 자꾸 나와. 그리고 더 아프고..나는 너처럼 외로워. 그러니까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살자!" "나처럼 외롭다고? 그럼, 친구하자! 외로운 친구! 친구끼리는 같이 살아도 되니까, 좋아 너의 집에 가자!"
소년은 바둑무늬 토끼를 집에 데려왔습니다. 집이라고 하기엔 너무 좁고 어두컴컴한 지하방이습니다. 소년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토끼는 검은 귀를 쫑긋거리며 친구를 반겼지만 할아버지는 무서워했습니다. 이가 가려워 벽지를 물어뜯는 등의 말썽을 부리자 토끼를 내다 버리라고 할아버지가 소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소년은 "친구를 어떻게 버려요!" 라고 항의하며 울먹였였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구속되면서 토끼는 다시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 내 친구 토끼 잘 있어요?" "친군지 뭔지, 토끼 그놈이 말썽을 피어서 죽겠다!" "할아버지! 그래도 친구를 버리면 절대 안 돼요!" "그래, 안 버리마! 할아버지는 안중에도 없구나!"
수의(囚衣)를 입은 소년이 겁먹은 토끼처럼 말했습니다. 소년의 할아버지가 "토끼도 할아버지도 걱정하지 마라"고 하자 잠시 웃었지만 다시 겁먹은 토끼처럼 저를 곁눈질했습니다. 서로 초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소년에게 '수의가 어울리지 않는구나. 너의 친구처럼 바둑무늬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초면이라 참았습니다. 소년 이야기는 잠시 중단해야겠습니다. '이렇게 감질나게 해놓고 끝나면 어떻게 하냐'고요? 걱정 마십시오. 이후의 이야기는 <소년의 눈물>에서 다시 들려드리겠습니다. 연속극이 원래 그렇잖아요. 감질나게 끝내야 또 보시니까요. 여하튼, 소년을 접견한 뒤에 불행한 가족사를 바탕으로 탄원서를 쓰고, 소년의 우울증 치료를 위한 병동을 알아보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이런 질문을 해봤습니다.
누가 소년을 우울증 환자로 만들었을까요? 누가 소년을 연쇄방화범으로 만들었을까요? 토끼도 소년처럼 소년을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20년 전입니다
이번엔 잠시 다른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소년의 얼굴은 자주 멍들어 있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을 반기지 않는 학교를 빼먹고 오락실에서 게임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등의 사고를 쳤습니다. 그러면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마구 때렸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늘 취해 있었습니다. 기초생활 수급비는 술값으로 사용됐습니다. 소년의 엄마 또한 남편의 폭력에 몸과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소년과 엄마에게 12평짜리 아파트는, 전기세를 내지 못해 단전되기 일쑤인 영구임대 아파트이자 보금자리가 아닌 감옥이었습니다. 어서 도망치고 싶은 생지옥. 소년은 용의자 1순위였습니다. 학교나 교회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 소년부터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소년의 결석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고,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야 한다던 교회는 소년이 나타나면 경계했습니다. 얼굴에 마른버짐이 더 번져가던 그해 봄, 배가 고팠던 소년이 빵을 훔치다 걸렸습니다. 주인에게 이끌려 파출소에 간 소년은 범행 경위를 묻는 경찰에게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것이 더 쉬웠다"고 진술했습니다.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게 더 쉬운 세상
저와 소년은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봤습니다. 눈이 시퍼렇게 멍든 소년을 보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빵을 준 적이 있냐고요? 저 또한 빵을 주지 못했습니다. 멍든 얼굴을 달래라고 계란 하나 준적도 없고, 어둠에 잠긴 소년의 집을 밝히기 위해 전기세를 대납한 적도 없었습니다. 매 맞는 소년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초인종을 눌러본 적도 없고, 소년의 아빠를 찾아가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의 술잔을 나눈 적도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절망의 아비였습니다. 이혼과 빚더미에 쫓기다 영구임대아파트에 불법 입주했습니다. 불법 입주 사실을 알게 된 관리소장은 집을 비우라고 경고했지만 두 아들을 데리고 갈 데가 없어 버텼습니다. 그러자 명도소송을 해왔습니다. 소년의 아빠나 저나, 제 아들이나 소년이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죄일까요? 아닐까요? 이웃의 아픔을 외면했다고 잡혀간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실정법상의 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양심의 소리가 자꾸 찌릅니다. 피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으며 사는 죄목을 아느냐고? 그건 '무정(無情)한 죄'라고..
아픈 소년을 외면하는 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까? 길 잃은 양을 돌보지 않는 교회의 사랑과 구원은 무엇인가? 빵을 얻기보다 훔치게 만드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소년은 그 후, 빈집털이범이 됐습니다. 빵을 훔치다 붙잡혔을 때 파출소에 끌고 가지 말고 "배가 많이 고팠나보구나! 급하게 먹으면 언치니까 사이다랑 같이 천천히 먹어라!"고 하면서 "아이야, 배가 고프면 훔치지 말고 이리로 오라!"며 관용의 품으로 안아주었다면, 빵 몇 개를 챙겨주어 돌려보냈다면 소년은 어떻게 됐을까요? 고급 기술을 익힌 소년은 아파트 비상계단으로 숨어 들어가 드라이버 하나로 빈집을 털었습니다. 자주 털었던 것 같습니다. 피해자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아파트 경비원과 경찰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범인검거에 나서면서 소년은 결국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구속되진 않았습니다. 형사 책임 능력이 없는 '촉법소년'(10세~14세)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 덕이이었습니다. 구속되진 않았지만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고 소년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새 2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쉰여섯이 됐으니 소년도 30대의 청년이 됐을 겁니다. 청년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무정한 세상을 헤매다 법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요?
법자를 아십니까?
법자(法子)란 '법무부 자식'이란 은어입니다. 비행과 범행을 저질러 처분과 처벌을 받은 소년들입니다. '나쁜 놈'이란 낙인과 '위험한 놈'으로 지목된 소년들, 소년들은 정말 나쁜 놈이고, 위험한 놈들일까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소년들은 왜 법자가 됐을까요? 왜 나쁜 짓을 하고, 위험한 행동을 할까요? 애초에 나쁜 놈과 위험한 놈으로 태어난 걸까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만 그런 소년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 등은 소년의 죄를 주목하지만 시인인 저는 소년의 눈물을 주목하렵니다. 제가 만나고 돌봤던 소년 중에 90%가량은 가정해체의 피해자,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가엾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면회 올 사람도 없는데도 누군가의 면회를 기다리는 소년, 엄마아빠와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소원인 소년, 딱 한 번만이라도 가족끼리 밥을 먹어보는 것이 소망인 소년, 버림받은 분노로 자해한 소년, 꿈과 희망이 뭔지도 모르는 소년..
"아픈 소년들아, 얼마나 힘들게 살았니? 얼마나 배고팠고, 얼마나 외롭게 살았니? 너희 마음속에 품은 칼은 누군가를 찌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버려지고, 더 당하지 않기 위해 품은 것을 나는 안다. 누가 너희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니. 소년아, 우는 수밖에 없으니 같이 울자. 가슴에 품은 칼을 눈물로 녹여 희망의 날이 서게 하자. 버려지고 뒹굴다 깨진 소년들아, 눈물이 희망을 머금으면 얼마나 빛나는지 보여주자, 부디 그러자"
'소년의 눈물'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혹시, 소년의 눈물을 만나고 싶습니까? 그러면 인정(人情)의 눈을 뜨십시오. 그러면 소년의 눈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년의 눈물을 만나거든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어준 미리엘 신부님처럼 관용의 품으로 안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무정한 거리에 '자복'이란 저의 시를 내어 겁니다. 자복(自服)이란 자기 잘못을 스스로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소년의 죄가 사실은 어른의 죄라는 자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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