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이야

[소년이 희망이다 15화] 2016-06-27


*기사에 등장하는 아기와 소년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증손자 키우는 팔순 노인의 기구한 인생과 눈물


훈이 돌잔치에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 장민영


지난 2월 11일은 훈이의 첫 생일이었습니다. 이국적인 얼굴의 훈이는 아주 잘생긴 사내아이입니다. 그런 훈이 눈빛엔 형언 못할 슬픔이 고였습니다. 엄마 없는 돌잔치이기 때문입니다. 훈이 엄마(20)는 아기가 3개월 때 떠났습니다. 딱한 것은 훈이 아빠(21) 또한 그 무렵에 엄마에게 버림받은 것입니다. 훈이는 가난에 사무쳤던지 돌잡이에서 지폐를 잡았습니다.


중고 핸드폰 소매상인 훈이 아빠는 지난 5월 장물취득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면회 갔더니 "도난 핸드폰을 매입한 적이 없는데도 경찰이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후배 진술만으로 체포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등의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바쁜 와중에도 수락했습니다. 29일 첫 재판이 열립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훈이 아빠를 면회한 것은 훈이 양육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훈이를 돌보는 이는 뇌경색 환자인 팔순의 할아버지입니다. 훈이에겐 증조부입니다. 병든 노인이 증손자를 양육하는 것이 안타까워 훈이를 아동시설에 위탁하려고 앞장섰습니다. 아들만큼은 자기가 키우겠다던 훈이 아빠는 수인의 몸으로 어쩔 수 없기에 아들의 보호 위탁에 동의했습니다.


훈이는 돌잡이에서 지폐를 잡았다. ⓒ 장민영


훈이 증조부 정씨(80)는 기구한 인생입니다. 정씨를 처음 만난 때는 큰손자(당시 18세․훈이 큰아빠)가 연쇄방화로 구속된 2012년 5월이었습니다. 정군의 엄마는 두 살 때 떠났고, 아빠는 세 살 때 사망했으며, 어린 정군과 훈이 아빠를 키우던 정씨의 아내는 2011년 6월 가출한 정군을 찾으러 나섰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홀로 된 정씨는 소년원을 드나드는 두 손자의 옥바라지를 하느라 더 늙고 병들었습니다.


"훈이 보내기로 한 시설에 갔다 왔는데(한참 우시다가)

가슴이 아파서 도저히 못 보내겠어요. (또 우시면서)

그래도 핏줄인데 어떻게 보내요.

아기가 불쌍하니 이를 악물고 키워 봐야지요."

지난 25일 훈이 위탁 문제로 정씨와 통화했습니다. 훈이 위탁에 앞장섰던 저는 팔순 노인의 흐느낌을 삭이느라 참담한데 수화기 너머로 훈이가 옹알거렸습니다. 저 아기를 어쩌면 좋을까요? 병든 노인의 눈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용역을 동원하겠다는 땅주인 쫓겨난 천막 식당 새 공간 마련


거리 소년들의 집결지 부천역 ⓒ 김진석


지난 24일 부천역을 찾았습니다. '소년이 희망이다' 첫 번째에서 이야기했던 천막식당이 사라졌습니다. 6년째 운영 중인 천막 식당은 거리 소년들에게 밥을 주는 무료 식당입니다. 이정아(49)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 대표는 천막 식당을 중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땅주인 측에서 '밥을 먹으러 온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 먹고 사고치는 등 문제를 일으킨다'면서 천막 식당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철거하지 않으면 용역을 부르겠다고 해서 식당을 중단하고 인근 건물에 세를 얻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데 월세(200만 원)가 큰 부담입니다."

부천역 천막 식당이 사라졌다. ⓒ 임종진


이정아 대표는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번 쫓겨났습니다. 거리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것조차 봐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면 눈물을 흘려야했습니다. 그러다 부천역 인근에 식당 공간을 얻은 것입니다. 이 대표는 "가정과 학교에서 내쳐진 청소년들이 여기서는 내쳐지지 않고 삶의 방향과 계획들을 실현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습니다.


비바람을 피할 공간을 마련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월세를 내지 못하면 여기서도 쫓겨나야 합니다. 그래서 '소년이 희망이다' 후원금 가운데 얼마를 천막 식당에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쫓겨나지 않도록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힘들어도 연락할 곳이 없는 거리 소년들 세상과 어른에 분노하는 소년들의 증오심


손목밴드 '힘들면 연락해' ⓒ 김진석


이날 부천 역에서 수환(18)이와 민훈(18)이를 만났습니다. 생일을 맞은 수환이가 밥을 사달라고 해서 콩불(콩나물 불고기)을 사주었습니다. 수환이는 지난해 11월 1호, 3호, 5호 처분을 받고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나왔습니다. 보호관찰 처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소년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수환이 팔에 수갑 대신에 '힘들면 연락해'라는 글귀가 새겨진 손목밴드가 채워졌습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답니다. 힘들어도 연락할 곳이 없는 소년이 저에게 연락한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소년들에게 밥을 주었는데도 훔치면 그땐 처벌해야 하지만 밥을 주지 않으면서, 훔치게 만들면서 범죄자로 모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교도소에 간 소년 ⓒ 임종진


수환이에게 영진(20)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동생 3명과 함께 가출팸 생활을 하던 영진이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월세를 못내 원룸에서 쫓겨난 영진이가 지난 4월 "며칠 굶었더니 배가 고파요. 돈 좀 보내주세요"라고 저에게 두 번 도움청한 적이 있습니다. 입금해준 얼마 뒤에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 것입니다.


지난 2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출소한 영진이가 귀가하지 않고 부천 역으로 돌아온 것은 이혼한 엄마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애증 관계의 불편한 가족보다 같은 처지인 거리 소년이 편했던 것입니다. 소년원에서 미용사 자격을 딴 영진이는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영진이의 꿈은 이루어질까요? 아니면 법자(법무부의 자식)로 울부짖을까요?


"세상은 우리 같은 애들 받아주지 않아요" ⓒ 김진석


민훈이는 알바 인생입니다. 먹고사는 게 꿈이라는 민훈이는 알바 인생으로 끝날까 봐 걱정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전단지 배포와 웨딩홀 알바를 했다는 민훈이는 몇 번이나 아르바이트하고 일당을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민훈이에게 세상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항의하듯 말했습니다.


"세상은 우리 같은 애들을 받아주지 않아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알바 밖에는 못하고요. 치사하게 애들 돈을 떼어먹는 어른들과 세상을 때려 업고 싶지만 힘이 없으니 참아야죠."

아빠 흉기에 크게 다친 소년들의 절망 희망의 복서가 되어 꿈을 키우는 소년


가족보다 가출팸이 편한 소년들 ⓒ 임종진


'세상을품은아이들'(세품아)은 보호소년 위탁시설이자 기독교공동체입니다. 인천지방법원 소년부는 보호자가 돌보기 어려운 소년들을 세품아에 위탁합니다. 세품아 소년들은 가족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입니다. 아픔이 아물 날 없는 가운데 최근에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잠시 귀가했던 준현(18)이와 태진(19)이가 크게 다친 것은 아빠와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준현이는 높은 곳에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고 태진이는 아빠가 휘두른 흉기에 크게 다쳤습니다. 세품아 대표인 명성진(48) 목사는 아이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치료비 마련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의 복서가 된 경준(19)이가 기쁨입니다.


소년 복서를 돕는 배장환(맨 오른쪽) 형사와 최근식 관장 ⓒ 김진석


1호와 5호 처분을 받은 경준(19)이 엄마도 어렸을 때 떠났습니다. 형은 보호관찰 중이고 여동생은 안양소년원에서 생활 중입니다. 거칠고 어둡던 경준이가 밝은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은 권투를 시작하면서입니다.


지난 5월 초부터 권투를 시작한 경수는 5월 22일 부천시복싱연합회장배 생활체육대회 65kg급 출전해 우승했습니다. 첫 출전에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본 경준이는 권투가 재밌어졌습니다. 스스로 샌드백을 치고 줄넘기를 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복서의 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경준이는 "UFC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서 "나중에 권투도장을 운영하면서 위기청소년을 지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나쁜 아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 김진석


경준이를 무료로 지도하는 최근식(33․부천용인대탑복싱체육관) 관장은 "권투를 배운지 1개월도 안 된 경준이가 1년 이상 권투한 선수를 이겼다"면서 "경준이에겐 다른 선수에겐 찾기 힘든 절박함과 투지가 있다. 경준이의 꿈을 최대한 지원 하겠다"고 도움을 약속했습니다.


경준이가 권투하도록 도와준 이는 부천오정경찰서 배장환(32) 학교전담경찰관입니다. 배 형사는 학생뿐 아니라 거리 소년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주말이든 야간이든 달려가는 슈퍼맨 같은 경찰입니다. 배 수사관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복서의 꿈을 키우는 경준이가 기특하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쁜 아이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정환경과 사회가 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밥과 사랑 그리고 관용을 소망하며 절망의 시대에 부치는 소년희망편지


소년들이 사는 원룸 ⓒ 김진석


위가 아파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더니 '역류성 식도염'과 용종 등이 발견됐습니다. 지난해 '소년의 눈물'과 올해 '소년이 희망이다' 연재를 위해 글을 쓰느라 식사를 거르거나 배고프면 라면을 끊여 먹고 그것도 귀찮으면 과자에다 빵 그리고, 커피를 마셨더니 위장병이 생겼습니다.


'소년이 희망이다'에 동행한 '길 위의 사진가&#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