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생면부지 청년과 나눈 생명
- 소년희망배달부
- 4월 1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사순절 참회록] 기독교 잡지 <빛과 소금> 2025년 4월호

#. 1 프롤로그
지난 3월, 기독교 잡지인 <빛과 소금>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빛과 소금>은 "사랑이 상실되어 가는 사회에서 여전히 사랑의 자리를 비추는 거룩하고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면서 '사랑이 한 일'이란 주제로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원고를 청탁한 기자님이 저를 지목한 까닭은 18년 전, 생면부지의 25세 청년에게 드린 신장 한 쪽 때문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을 수락하고 나서 사랑에 대하여 찬찬히 생각하였더니 뿌듯함보다는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밀려 들었습니다. 나는 진실로 사랑을 행한 것일까? 나는 정말로 올바른 사랑을 하고 있을까? 자문(自問)한 결과 "그렇다, 정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자답'(自答) 할 수 없어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썼던 것은 사랑이 부족한 삶에 대해 참회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욕되고 부끄러운 삶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난 날 뿐만이 아니라 현재도 그렇습니다. 위기 청소년들을 제대로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마치 사랑하는 것처럼 표를 내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딱합니다. '위기 청소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 덕분에 먹고 사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면 양심이 찔립니다.
나름 정직하고 진실하게 산다고 했지만 아무리 살아봐도 늘어나는 것은 상처와 부끄러움뿐입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습니다. 상처와 부끄러움 투성이인 인생에게도 남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져 가던 한 청년의 생명을 살린 것이 아닐까. 그로 인해 벼랑 끝 위태롭던 삶이 구조를 받았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드린 것은 신장 한 쪽인데 받은 것은 열이고 스물이니 제가 무엇을 잘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윤동주 시인보다 너무 오래 살면서 지은 죄와 부끄러움을 감추기 싫어서 참회록을 썼습니다. 용서와 양해를 구합니다.
아래의 글은 <빛과 소금> 2025년 4월호에 기고한 졸고의 일부입니다.
#. 2

내 몸을 떠난 신장 한쪽이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서 신장이식 절차 진행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연락했더니 신장을 공여받은 그 청년 아니, 이제는 40대 중반이 된 그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신다.”는 안부를 전해주었습니다. 2007년 5월 31일 오전 8시경 아산병원 수술실, 마흔여섯 해 동안 내 몸의 건강을 지켜준 왼쪽 신장이 만성신부전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스물다섯 살 청년에게이식됐습니다.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마흔셋의 중년이 된 그분은 이식에 따른 부작용 없이 건강하게 지내다 결혼했으며 행복하게 지낸다고 했습니다. 부모 형제끼리 주고받은 경우를 제외한 대다수의 신장 공여자와 수용자는 생면부지입니다. 이식의 부작용을 주의해야 하듯이 신장 공여에 대한 대가 요구 등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나의 것을 나눈 게 아니라 주신 걸 나눈 것이므로 대가를 바라거나 생색내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 없습니다. 그래서, 잊고 지냈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이 나서 처음으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2007년 6월 6일 퇴원하던 날, 40대 후반의 여인이 제 병실에 찾아오셨습니다. 청년의 어머니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청년의 어머니는 “부모도 주지 못했는데 남이 어떻게 주실 수 있는지요…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얼마나…”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 까닭은 여인의 두 아들이 유전에 의한 만성신부전으로 고통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낳은 두 아들이 현대 의학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병으로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면서, 부모의 유전에 의한 병이라는 사실 앞에서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을 치면서 울부짖었을까요.
청년의 어머니는 자신의 한쪽 신장을 한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을 다른 아들에게 주고 싶었으나 줄 수가 없는 가슴 아픈 사정을 전해 들은 저는 청년의 어머니에게 “다 잘 됐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는 말과 함께 “아드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말의 속뜻은 내 몸을 떠나 그 청년의 신체가 된 한쪽 신장이 나에게 해준 것처럼 임무 수행을 완수해 달라는 당부였고, 그 청년이 만성신부전의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살길 빈다는 기도였습니다.
#. 3

30대의 저는, 이혼과 파산의 벼랑에 내몰렸던, 문패도 번지도 없는 주소 불명의 아비였습니다. 세상은 막막했고 살벌했습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월세방을 얻으러 갔더니 홀아비에겐 방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린 큰아들이 ”아빠, 하나님이 더 좋은 곳을 주실 거예요!“라면서 못난 아비를 위로했고, 막내아들은 누군가 준 꼬깃꼬깃한 5천 원짜리를 저에게 주면서 ”아빠, 이 돈으로 빚 갚으세요“라며 막장에 내몰린 저에게 삶의 용기를 선물했습니다.
하나님과 저는 생면부지였습니다. 판자촌에 살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교회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가난을 차별하는 것만 같아서 다신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미워하던 제가 울며불며 기도했습니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캄캄한 지하 예배당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 생면부지였던 하나님이 저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안아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나와 함께 살아야 이혼과 파산, 배신과 버려짐, 술 취함과 방탕으로 얼룩진 가계의 저주를 끊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원(誓願)했습니다. 깨진 가정을 회복시켜 주시면 하나님이 주신 신장 한쪽을 나누겠노라고. 그랬더니 천사 같은 아내와 재혼을 허락해 주시고 깨진 가정을 회복시켜 주셨으며, 아프리카 선교사를 꿈꾸던 큰아들을 연구교수로 세워주시고 막내아들은 위기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소년희망공장‘(카페) 공장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복에 겨운데 손녀와 손자까지 선물로 주셨으니 고난을 끝내 이기면 복된 날이 오리라던 말씀은 헛된 약속이 아니라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생면부지인 저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셨지만 저는 조건을 내걸고 거래했습니다. 불순한 의도를 잘 아시면서도 괜찮다고, 가난과 버림받음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죄의 웅덩이에 또 빠지고 또 빠지는 인생을 건져주었음에도 아버지 품을 떠나는 탕자를 기다리겠노라고, 어미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다 씻겨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환대해주셨습니다. 티끌만큼이라도 염치가 있으면 통회 자복하고 다신 빠지지 말아야 함에도 죄의 수렁에 또 빠지는 저를 향해 "네 놈은 구제 불능의 인생!"이라고 욕하면서 잡은 손을 놓으신다 해도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불쌍한 나의 아들아! 가계에 흐르는 저주의 피를 씻어야지. 네가 아니면 그 누가 저주를 끊겠느냐며 죄의 웅덩이에 빠진 저를 건져 주셨습니다. 몸이 아플 때면 가장 취약한 곳인 이식한 왼쪽 신장 부위가 쓰리고 아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수술 자국이 선연한 옆구리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 4 에필로그
나에겐 강력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자녀와 손주들 그리고, 후손들이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부디, 힘들거나 괴로운 사랑이라면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사랑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으므로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사랑하면서 상처를 주었고,
사랑하면서 미워했고, 사랑하면서 괴로워했던 적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족을 비롯해 여러분은 그런 사랑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저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면서 지은 죄를 씻을 수 있다면 다 씻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죄를 다 씻고서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날, 임무를 완수하느라 수고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고아나 다름 없었던 어머니는 나를 혼자서 낳았습니다. 노점상 아버지는 생계의 벼랑 끝으로 몰렸습니다. 그래서 영등포 피난민촌 하꼬방에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나는 축복 받지 못하고 태어났지만 간난신고의 생을 마치고 떠날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웅을 받으며서 떠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4월 후원자 및 지역아동센터 물품 기부자]
낯선 땅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중도입국 이주 청소년들과
미혼모에게 버려진 아이와 원미동 할머니를 비롯한
어게인이 돕는 이웃에게 사랑을 나눠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4장 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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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 설립에 필요한 물품 기부자]
김동민 PD(CBS-TV)
김익태 변호사(CIL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김미숙, 류창형, 이미연, 이유주, 이현정, 정윤경
※ 기독교 잡지 <빛과 소금> 2025년 4월호에 기고한 졸고의 전체를 읽고 싶으신 분은 아래 붉은 글씨로 표기된 웹주소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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