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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좀 달라고 했더니

작성자 사진: 승주 최승주 최

조호진 시인의 '빵에 대하여'

   


Matthias Stomer, Pilate Washing His Hands, 1630
Matthias Stomer, Pilate Washing His Hands, 1630

     

잡혀가는 소년아

고개 숙여 눈물 흘리는

소년아, 포승줄에 묶여서

호송차를 타고 가는 소년범아

그 죄패(罪牌)는 너의 것이 아니니

이리 다오, 이녁이 그 죄를 지고 가마

     

거리를 떠도는 소년이

배가 고파요

너무 추워요

빵을 달라고 하면 돌을 던지고

도둑잠을 청하면 경찰에 신고하는데

죄 짓지 않고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삥 뜯은 것은 범죄이고

빵 훔친 것은 죄이지만

그 죄가 온전히 너의 죄겠느냐

우리의 죄가 아니라고 손을 씻는

그대들은 어찌하여 얼굴 돌리는가


 (졸시, '빵에 대하여' 전문)   

     

#. 1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마티아스 스토메르'​(Matthias Stomer, 1600-1650)가 1630년에 그린 '손을 씻는 빌라도'의 배경은 마태오복음서 27장 19-26절, 광기에 휩싸인 유대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폭동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자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는 군중 앞에서 물에 손을 씻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그러자, 유대 군중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그 사람(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 2


20년 전, 항구 도시에 있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서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소년의 아빠는 늘 취해 있었습니다. 정부가 지급한 기초생활 수급비는 그 아비의 술값으로 사용됐습니다. 아내가 가출한 이후, 그의 술주정과 가정 폭력은 더 심해졌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소년의 얼굴은 자주 멍들어 있었습니다. 잔뜩 취한 날은 소주병을 창밖으로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소년을 외면하던 세상이 소년을 가끔 주목할 때가 있었습니다. 학교와 교회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 교사와 전도사는 소년을 용의선상 1순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교사들은 소년의 결석을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겼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야 한다던 교회에선 소년이 나타나면 경계했습니다. 그해 봄, 빵을 훔치다 붙잡혀 파출소로 연행된 소년은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빵을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게 더 쉬웠어요.“


#. 3


소년원 등지에서 '법자'들을 만났습니다. 법자(法子)란 '법무부 자식'이란 뜻의 은어입니다. 소년 법자들은 빈곤과 가정폭력 그리고, 부모 이혼과 가정 해체 과정을 거치면서 가출하거나 학교 폭력과 절도 등의 비행을 저지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소년들을 '도둑놈', '양아치', '쓰레기'라고 부르면서 격리시키라고 요구합니다.


이 아이들은 왜 법자가 됐을까요? 소년의 엄마는 왜 가출했고 아빠는 왜 술에 취해 있을까요. 그 소년들이 능력 있는 부모의 자녀였다면, 온유하고 따뜻한 부모의 자녀였다면 과연 법자가 됐을까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소년 법자 역시 부모를 선택한 적도 없고 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 이혼과 가정 해체, 가정 폭력과 가난의 책임을 떠안은 위기 청소년들이 들개처럼 거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다며 빵 좀 달라는 소년에게

빵은 주지 않고 ‘빵’에 가두어버린 사람들은

소년의 죄에 대한 과연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오직 내 새끼만 잘 되게 하기 위해

남의 자식들을 짓밟는 사람들이 소리칩니다.

     

"양아치 새끼들을 빵에 가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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