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미혼모 도와준 CEO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성탄 전야의 부천역 일대는 여느 때보다 더 불야성입니다. 크리스마스 인파로 술렁이는 유흥의 거리에는 흥분한 소년들이 우르르 몰려다닙니다. 더러는 노래방과 PC방 등으로 들어가고 더러는 엄마 없는 집에서 우울한 밤을 보냅니다. 어떤 젊은 연인들은 음식점과 술집에서 1차와 2차를 한 후 모텔에서 3차를 가기도 하고 괜스레 들뜬 중년과 중늙은이들은 뒷골목 술집에서 쓰디쓴 인생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부천역 뒷골목에 있는 소년희망센터는 어둠에 잠겼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 거리를 벗어나 북한산 둘레 길에 인접한 서울 집으로 달려갑니다.



성탄 전야, 아내는 선물을 쌌습니다. 아내가 싸는 선물은 느닷없이 임신하고 준비도 없이 아기를 낳은 어린 미혼모들에게 줄 선물입니다. 엄마 없이 자란 소년들은 떠돌이로 살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떠돌다가 떠돌이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 엄마가 떠나면 아기는 보육원에 보내지거나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 손에 맡깁니다. 불행의 대물림입니다. 이들을 구원할 능력도 없는 아내는 색색이 예쁜 옷을 정성껏 포장한 박스에 담았습니다. 어린 미혼모들에게 성탄 선물로 주기 위해 포장한 옷은 니트입니다. 니트를 뺨에 대보니 아주 포근하고 부드럽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살아온 어린 미혼모들은 사나운 환경에서 살아서 그런지 성격이 거친 편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되면서, 아기를 키우면서 조금은 부드러워집니다. 부모에게 사랑 받으면서 곱게 자랐으면, 행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면, 축복 받으면서 아기를 낳았으면 이들은 아기를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짐승도 제 새끼를 지키는데…. 아기들은 부드러운 엄마 품을 좋아합니다. 니트를 입은 엄마 품에 안겨 잠들 아기를 생각하니 제 마음까지 포근해집니다. 이 니트는 '분유 아빠' 회사 임직원들이 선물해주신 옷입니다. 저희가 '분유 아빠'라고 부르는 분은 IT회사를 경영하는 젊은 CEO이자 아기 아빠입니다. 2015년부터 매월 17명의 아기들이 먹을 수 있는 분유와 아기들의 보험료를 5년째 후원하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미혼모 선물을 보내주거나 선물을 사줄 비용을 보내주시는데 자신의 이름과 회사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부득불 '분유 아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유를 훔치다 붙잡힌 30대 부자에게 국밥을 사주신 인천의 한 경찰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경찰이 눈물 흘리면서 하신 말씀을 TV에서 보다 저도 모르게 울컥했고 저뿐 아니라 수많은 분들도 가슴 적셨습니다. 밥 굶은 사람이 있어선 안 되는 것처럼 분유 값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미혼모 또한 있어선 안 됩니다. 가난한 미혼모의 아기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배고픔 때문에 우는 아기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분유 값이 없어 애태우는 미혼모 아기들은 존재합니다. 마트에서 분유를 훔치다 붙잡힌 미혼모의 딱한 사연을 뉴스로 보면서 가슴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은 지난 5년 동안 2500여 통의 분유를 800여명(누적)의 미혼모 아기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어게인의 분유를 처음 먹은 보육원 출신 미혼모 아기 솜(가명)이는 어느덧 여섯 살 소녀로 훌쩍 자랐습니다. 어게인이 미혼모 분유 지원사업을 5년째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5년 내내 분유를 후원해주신 '분유 아빠' 덕분입니다. 그런데 분유 아빠의 얼굴을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이렇게 감사한데도 감사패 하나 드리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유 또한 얼마든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하루도 굶어선 안 되는 아기에게 꼬박꼬박 대주려면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분유 아빠가 돌본 아이들이 자그마치 백 명이 넘습니다. 돈이 많아서 돈으로 키운 게 아니라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세상은 돈 많이 벌라고 하지만 하늘은 생명을 살리라고 합니다. 분유 아빠의 분유로 아기를 키운 한 미혼모가 보내온 감사 편지입니다.



저희 부부는 후원자이신 목사님의 아주 작은 예배당에서 성탄 예배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드리는 데, 저도 모르게 예수님께 따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래도 아빠가 있잖아요. 하늘에는 아바 아버지가 계시고 땅에는 목수 아빠가 계셨지만 미혼모 아기들은 아빠가 없어요. 그러니, 더욱 안아주세요. 미혼모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예배를 마친 뒤에 니트 옷과 분유를 챙겨 어린 미혼모와 아기들을 만나러갔습니다. 저희 부부만 간 게 아니라 눈물의 예수도 동행했습니다. 미혼모 시설에서 산타 모자를 쓴 어린 엄마와 아기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크리스마스라고 기뻐하며 선물을 주고받는데 이들은 빈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쓸쓸하고 외로워보였습니다. 동행하신 예수님이 이들에게 부드러운 니트와 분유를 선물했습니다.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어린 나이에 아기를 낳은 미혼모와 아빠 없는 아기들을 안아주신 예수님, 저희 부부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미혼모의 눈물을 닦아주셨네!" 라며 찬양했습니다. 구유가 없는 곳에서 아빠도 없이 태어난 단칸방에 뉘인 아가야 울지 마라, 춥지 마라 엄마야, 어린 미혼모야 홀로 떠돌다 홀로 낳은 어린 엄마야, 떨지 마라 춥고 배고픈 세상이 야속해 허기져서 떨며 울며 헤매는데 가엾은 여자여 너도 우는 구나 구유에서 태어난 눈물의 사내가 홀로 아기 낳은 마리아를 부여안고 그대가 울면 슬픈 나도 눈물 난다고 서로 눈물 닦아주며 슬픔 달래는 밤 (조호진 시인의 '성탄 전야')



※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는 위기청소년과 어린 미혼모의 사연을 담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돕는 따뜻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입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에서 '소년희망배달부'로 활동 중인 조호진 시인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기금을 조성, 2016년에는 경기도 부천에 <소년희망공장>을 만들었고 2018년에는 부천역 뒷골목에 <소년희망센터>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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