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감사편지] 하나님, 복 내려 주시옵소서!
보육원 출신 미혼모 숙희(가명·30세)가 솜이(가명·10세)와 준이(가명·8세) 두 자녀를 잘 키우고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툭하면 쓰러질 것 같았는데 서른에 접어들면서 많이 튼튼해진 숙희를 보니 이제는 인생 비바람이 닥쳐도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8년 전, 처음 만난 숙희가 설 명절에 "큰엄마 집에 가서 명절 지내면 안 될까요?"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된 명절 같이 지내기가 서서히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매년 설과 추석이면 숙희네를 비롯해 미혼모 가정과 위기 청소년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 명절을 같이 지냈는데 올해 추석에는 "아이들과 함께 추석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소식을 숙희가 알려왔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천안에서 서울까지 오고 가는 길이 쉽지 않은 길인 데다가 숙희에게 듬직한 사내가 생겨서 이제는 자신들끼리 오붓한 명절을 지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슬픔과 외로움을 벗어버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날이 언제쯤 올까? 오기는 올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행복한 날이 왔습니다. 숙희에게 아빠가 있긴 있었지만 없는 것보다 못했습니다. 숙희가 열일곱 되던 해에 아빠가 찾아왔는데, 너무 그리운 핏줄이어서 너무 좋아했는데 아빠란 사람은 어린 딸을 이용해 돈을 끌어쓴 뒤에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놓고는 소식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버려주어서 고맙다고, 다시는 버림받지 않도록 소식을 끊어주어서 고맙다고, 차라리 ‘천애고아’(天涯孤兒)로 사는 것이 낫다고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외롭고 외로워서 보육원 출신 사내와 자취방 같은 작은 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예쁜 딸 솜이가 태어나고 잘 생긴 아들 준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오순도순 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자기도 버림받았으면서, 버림받은 슬픔과 아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면서 두 아이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뒤, 숙희뿐 아니라 두 아이까지 소아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외롭고 힘들어서, 버림받은 상처를 씻고 싶어서 가정을 만들었는데 준이가 첫 생일이 되기도 전에 가정을 버리고 달아난 것입니다. 못난 놈, 나쁜 놈, 자식을 버린 놈…. "큰엄마, 준이가 폐렴에 걸렸는데 병원비가 없어요…." 숙희가 울면서 전화했습니다. 준이가 급성 폐렴에 걸렸는데 병원비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면서 큰엄마라고 부르는 최승주 권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천안까지 달려가서 숙희를 위로하며 병원비를 지급하고, 생활비를 주면서 힘내라고 격려했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그 정도뿐이어서 미안했는데 고맙게도 숙희가 힘을 내주었습니다. 그런 뒤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원자들과 함께 준이 첫 돌잔치를 했고, 툭하면 잘리는 아르바이트 인생으로는 두 아이를 키우기 힘드니 방법을 찾아보자고 해서 찾은 게 보육교사, 숙희의 꿈이던 보육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학원비와 생활비 등을 지원했더니 보육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보조교사의 설움을 잘 견디면서 성실하게 일한 결과 이제는 어엿한 담임교사가 됐습니다. 슬픔과 절망을 견디면 보름달처럼 환한 날이 온다는 것을 착한 숙희가 인생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잘 견뎌준 숙희가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랑과 도움을 주어도 자립과 독립을 하지 못한 채 계속 손을 벌리면서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고아의 외로움을 벗어버린 숙희가 고맙습니다. 두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가 되어주어서 고맙습니다. 불행에 처한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비극적 뉴스가 들려오는 이 끔찍한 시대, 정부는 뭐하고 있느냐고 탄식하는 것 말고는, 무슨 무슨 대책을 세우겠다며 난리를 피우던 정부가 뉴스가 잊혀지면 슬그머니 손을 놓는 것 말고는, 그래서 비극과 참사가 다람쥐 쳇바퀴처럼 또 벌어지고 잊혀지는 망각의 굴레 속에서 숙희네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참 좋은 이웃들로 인해 보육원 출신 미혼모 숙희네 가정이 행복하게 되었다고 보고하게 되어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벼랑 끝에 매달려서도 목숨 같은 자식을 끝끝내 지킨 생명의 어미와 아비들을 축복하소서! 내 자식과 내 식구끼리만 잘 살려하지 않고 슬픔과 절망에 내몰린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며 나누지 않는 사랑이 어찌 사랑이며 축복일 수 있느냐며 나눔과 사랑으로 우리들의 차디찬 세상을 훈훈하게 뎁히는
따뜻한 이웃들에게 환한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넉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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