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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투병 중인 엄마에게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새끼줄에 꿰어 사 온 낱개 연탄마저 떨어졌던 그해 추운 봄, 단속반에게 물건을 빼앗긴 노점상 아버지는 벌금을 내지 못해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 구류 살았습니다. 새마을고등공민학교를 때려치우고 가출한 형은 영등포 역전에서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다가 소년원에 갔습니다. 봄이 왔는데도 집 나간 엄마는 안 오시려나, 영영 안 오시려나… 배급 밀가루 수제비로 허기를 달랜 뚝방촌 아이들은 양지바른 판자촌 처마 밑에 모여 해바라기 하다가 봄볕에 취한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던 그해 추운 봄.

봄이 왔는데도

겨울처럼 춥디추웠고

수제비를 먹었는데도 배고팠고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겠다면서

망치 들고 나타난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추위와 배고픔과 무서움에 떨던 아이들을

포근하게 안아준 따스한 봄볕마저 없었다면

살벌한 이 세상과 화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춥디추웠고

몹시 배고팠던

버짐 핀 아이들을

포근하게 재워준 봄볕,

가출한 엄마보다 따뜻했던 봄볕,

그 봄님이 제주도에 도착하셨습니다.

열네 살 차이 나는 막내 여동생,

업어서 키운 처제와 둘이서 제주도로

여행을 간 아내가 봄소식을 전했습니다.

붉디붉은 겨울 동백은

각혈하는 폐병쟁이처럼

꽃잎을 떨구기 시작했고

코발트 빛 바다를 그리워하던

해안가 유채꽃들은 방긋방긋 노랗게

샛노란 봉우리를 피우기 시작했답니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아내에게

제주도에서 중학생 아들을 키우면서

요양도 하고 일도 하는 희망이 엄마에게

최근에 펴낸 수필집 <희망 한 톨>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장장 3시간 넘게 이야기꽃을 피웠답니다.

사랑은 배려이고

배려는 따뜻함이고

그 따뜻함으로 인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여행 중에 먹으라고

아내에게 싸준 희망이 엄마의

진한 레드향이 희망이 엄마에게 바친

한 편의 시를 불러서 여기에 올립니다.

자신도 아프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삶을 떼어주시는 그대

자신도 살기 힘들면서

더 힘든 미혼모를 위해

일당을 떼어주시는 그대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고해에

쓰나미로 덮친 괴로움과 서러움이

눈물겨운 삶을 산산이 부수곤 합니다.

그런 날은 그대의 지친 심신은

폭풍우처럼 덮친 통증에 시달립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삶의 텃밭에 씨를 뿌립니다.

아픈 인생의 눈물로 짠한 눈물을 닦아줍니다.

그대로 인해 척박한 자갈밭이

인생 꽃피울만한 옥토가 됩니다

그대의 별 하나로 인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갑니다.

(졸시, '거룩한 일당' 전문)

일당벌이가 끊겼는데도 후원금을 보내주셔서 가슴이 미어졌으나 그 거룩한 일당으로 인해 상처투성이 아이들에게도 희망 꽃이 피어났고, 별빛보다 빛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해 절망의 심연에서 희망의 빛이 생성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그대의 별빛으로 인해 어두운 이 세상이 조금은 밝아졌으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거룩한 일당을 대신 좀 갚아주세요. 아름다운 사람들 좀 고만 아프게 하세요. 아름다운 사람들의 눈물이 그렇게도 필요하세요. 따스한 이웃의 눈물로 아픈 이웃의 눈물을 씻어주는 눈물의 세례식을 이제 고만 좀 하면 안 될까요? 하나님께 항의하고 하소연하면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부천역 아이들에게

희망 파티를 열어주었던

2019년 봄,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희망이 엄마는 그렇게 안 아픈 척했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그냥 힘든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들 희망이를 혼자 키우느라 힘들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습니다.

희망이가 세 살이 되던 그해 겨울,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건강검진을 했다가

‘만성골수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답니다.

청천벽력 같은 ‘백혈병’ 진단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답니다.

슬픔과 아픔은 왜 한 번에 몰려올까요.

뼈만 아팠으면 그나마 좋았으련만 불행과 비극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어린 아들로 인해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골수 이식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백혈병 치료제가 개발되고 의료보험이 적용되면서 골수 이식 수술 대신에 약을 통해 치료하게 되었답니다.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투병 생활 10년이 넘는 동안 치료와 관리를 잘 해서인지 유전자검사 수치가 정상 수치로 나타났답니다. 백혈병 치료의 최고 명의로 알려진 김 교수님께서 오는 여름까지 현재 수치가 유지되면 약 끊기를 시도해보자고 했답니다.

지난 2020년 희망이와 함께 제주도에 왔답니다. 요양차 온 것만은 아니랍니다. 혼자의 힘으로 백혈병을 이겨내야 할 뿐 아니라 생계라는 막중한 책임도 져야 하는 희망이 엄마에게 제주도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고 제주도의 학교로 전학한 아들 희망이가 새로운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이주를 결심했답니다. 제주도의 푸른 해풍과 따듯한 햇살 그리고, 삶의 희망이 건강을 회복시켜준 것 같아서 제주도에 눌러앉기로 했답니다.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를 생각하면 이렇게 행복한 것이 미안하답니다. 자신만 행복하면 그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니랍니다.

희망이 엄마, 고마워요.

봄날에 통화해서 행복했어요.

희망이 엄마가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아내에게 싸준 레드향과 고급 멸치보다

암세포들이 일제히 퇴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무엇보다 희망이 엄마의 희망인 중학생 아들 희망이가

제주도의 푸른 친구들과 잘 지낸다는 소식이 가장 기뻤어요.

하나뿐인 아들 희망이뿐 아니라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희망이 엄마의 따스한 기도 고마워요.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품어주시는 엄마의 기도가 참 감사해요.

그러므로, 희망이 엄마 다시는 아프지 마세요.

한 때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행복하기로 해요.

희망이 엄마로 인해 우리의 봄볕이 더 따뜻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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