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미혼모의 행복한 이야기


정인이를 잃은 슬픔과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8일 내복 입은 아이가

영하 20도의 한파가 엄습한 거리에서 발견됐는데

사흘 뒤인 11일 또다시 내복 차림의 다른 아이가 거리에서

한파에 방치된 채 발견되면서 안타까움과 분노가 일었습니다.

아동 학대 사건을 조금만 세심히 보면 부모들은 가난한 미혼모 혹은 한부모 또는 재혼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8일 발견된 아이의 엄마는 보호시설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다 자립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자활근로기관에서 하루 8시간씩 주 5일 근무해야 했기에 아이를 집에 두고 출근했고 홀로 집에 남겨진 아이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가 출입문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다 발견된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그나마 살아서 발견됐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정태춘 작사·작곡 ‘우리들의 죽음’ 중 일부)

1990년 발생한 어린 남매 화재 참사를 비가(悲歌)로 만든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 내레이션입니다. 참사 당시, 한 아기의 아빠이자 비정규 노동자였던 나는 이 비가를 끝까지 듣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고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연기에 질식해 숨진 다섯 살 혜영이와 네 살 영철이가 내 아이가 겪을 수도 있는 참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30년 전에 발생한 사건이니 이젠 잊어버려도 괜찮을까요. 그럴 순 없습니다. 그 시절보다 부유해지긴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은 그대로이기에 가난이 끝났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고 반지하 셋방도 그대로입니다. 분노로는 아이들을 살릴 수 없습니다. 물론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법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위기에 처한 이웃에 대한 따듯한 관심이 더 필요합니다. 가난한 미혼모와 한부모에 대한 낙인과 비난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면 그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자가 격리할 것이고 아이들은 학대와 방임에 희생될 것입니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던 미혼모 은주네(가명·22세)가 지난 4일, 방 2개와 거실이 있는 LH 임대주택으로 이사했습니다. 이사 간 곳은 공장이 많은 동네입니다.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가난한 동네입니다. 은주는 냉장고를 비롯한 가전제품 없이 대충 살았습니다. 그래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와 아기용 세탁기 등을 사주었고 도배도 새로 해주었습니다. 살림이 제대로 들어앉은 집을 찾아갔더니 좀처럼 웃지 않던 은주가 슬그머니 웃으며 반겨주었습니다.



지난 8일 부천의 한 스튜디오에서 주훈이 돌 가족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처음엔 사진작가의 주문에 어색해하던 은주와 병호는 슬금슬금 웃기 시작하더니 사랑의 포즈를 취할 때는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습니다. 손만 잡아도 뜨거워지는 청춘이기 때문입니다. 발그레 달아오른 이들 부부의 모습은 반지하 단칸방에서의 어두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뿐 아니라 주훈이의 얼굴도 축복받은 얼굴로 변했습니다. 스튜디오의 밝은 조명과 사진작가의 솜씨 때문에 그랬지만 엄마 아빠가 행복한 모습을 하면서 아기 주훈이의 얼굴도 축복의 얼굴로 바뀐 것입니다.


“후원해주셔서 감사하고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은주가 후원자에게 쓴 감사 편지입니다. 은주가 쓴 짧은 편지 중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는 대목에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위기에 처한 이웃의 손을 잡아주는 것도 대단하지만 자칫 그 이웃의 아픔과 상처를 건드리면 더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데 그 아픔을 헤아리면서 따뜻하게 잡아주었더니 이렇게 큰 칭찬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이웃을 도울 때는 낮은 곳에 사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들이 아기를 버리거나 학대하는 것은 삶의 용기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버리고 싶어서 버리고 학대하고 싶어서 학대하는 엄마가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삶의 의지를 빼앗는 세상사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아기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가난과 학대 속에서 자란 그대로 가난과 학대를 대물림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불행할지라도 만일 자신을 이해해주는 따뜻한 이웃 한 사람이 있고 그 이웃으로부터 사랑과 도움을 받는다면 자식을 버리거나 학대하는 일이 이렇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주가 감사 편지에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잘 키우고 잘 살겠습니다~!!”



“그 자매(은주)에게 아기 지금까지 키워온 것

정말 대단한 일을 한 것이라고 많이 칭찬해주세요~^^”

주훈이 돌 선물로 미아방지용 14K 목걸이와 팔찌를 선물한

임진성(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님이 저에게 부탁한 말입니다.

편의점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은주는 주훈이 돌 선물로

미아방지용 목걸이와 팔찌를 해주려고 한 푼 두 푼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편이 그렇게 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 변호사님께 부탁했더니

선뜻 수락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도움 없이 아기를 키우는 미혼모 은주에게

찬사를 선물했습니다. 올해 둘째 딸의 아빠가 되면서 아기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절감했기에 은주에게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것입니다.

분노하고 돌아서고

낙인찍고 외면하면서

비난의 화살을 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미혼모와 한부모의

힘겨운 삶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면서

삶의 용기를 갖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삶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연대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은주네 가정에

삶의 용기를 선물해준

후원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잠시 행복했던

은주네 가정의 행복이

이대로 지속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바람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은주네 가정을 계속 보살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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