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하나. 얼마만의 만남일까?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는
‘(사)지구촌사랑나눔’이란 단체에서 6년가량 활동하다
연쇄 방화범으로 구속된 다문화 청소년을 만난 인연으로
이러한 위기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하겠다면서 떠난 지 10년.
‘지구촌사랑나눔’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운
다문화 대안 초등학교인 '지구촌학교'에서 교장을 지내신
박세진 교장 선생님이 지난 2일(목), 어게인 사무실에 오셨습니다.
몇 년 만의 만남인지 햇수조차 아득할 정도로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그간의 안부와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박 교장 선생님은 제가 지구촌사랑나눔을 떠난 뒤 6년 후인
2017년에 학교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행시 출신의 고위 공직자로
퇴직한 뒤 지구촌학교 2대 교장으로 부임한 외유내강형의 박 교장 선생님은
다문화 아이들에겐 할아버지 같은 좋은 교장, 교사들에겐 든든한 울타리 같은
교장으로 교권을 보호해준 듬직한 인생 선배였고 소박한 크리스천이셨습니다.
박 교장 선생님은 제가 썼던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여러 소식을 접하면서 안타까워하셨다고 했습니다.
안타까움 가운데 가장 큰 안타까움은 미혼모 자립을 돕기 위해 세운
샌드위치&샐러드 전문점 ‘소년희망공장 3호점’(스위트그린) 배달부로
힘들게 일하는 소식이었다고 했습니다. 저렇게 힘들게 일하다 쓰러지면 어떡하나?
저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 2년가량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다가
도시락 배달이든 샌드위치 배달이든 뭐든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지구촌학교 졸업식에서 다문화 소년에게 졸업장을 주는 박세진 교장 선생님.
둘. 소년희망공장 3호점을 정리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뼈를 갈아 넣으며 일한다고
그렇게 일하다간 큰일 난다는
우려의 말을 수없이 들으며 일했습니다.
죽을 둥 살 둥 일했던 것은
위기 청소년과 미혼모의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소년희망공장 3호점을 시작한 때가
‘코로나19 펜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초였습니다.
소년희망공장 1호점을 적자에서 흑자로 바꾼 경험과 자신감으로
3호점을 시작했는데 미증유(未曾有)의 바이러스 창궐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미크론 확진자가 기하급수로 퍼지고
소년희망공장 직원들도 어김없이 감염되면서
우리 부부는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더 힘들게 일했고
점포주는 매출액이 반 토막 났는데도 임대료 인상을 예고했습니다.
매월 400~500만 원가량 적자가 발생하는
소년희망공장 3호점을 살리기 위해 우리 부부는
사무실에 베이스캠프 차려 놓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습니다.
주 80~90시간 노동, 주 6~7일 때론 휴식도 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
침낭 속에서 번데기처럼 잠자며 추위를 달래는 등으로 투혼을 발휘했더니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오미크론의 공습으로 적자가
다시 발생한 가운데 2년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계약 만료 일인 2020년 4월 30일부로
소년희망공장 3호점의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더 큰 어려움이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셋. 박 교장선생님,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박 교장 선생님은 어려운 길을 걷는다며
저희 부부를 위로해주시면서 점심을 사주셨습니다.
연금 생활자라 돈으로는 크게 도울 수 없어 몸으로라도
돕고 싶어서 왔는데 3호점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안타깝다며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후원금을 주시고는 돌아가셨습니다.
박세진 교장 선생님!
소년희망공장 3호점 문을 닫았으나
아예 문을 닫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3호점에서 사용하던 커피머신과 냉동·냉장고 등의 집기류를
부천역 뒷골목에서 청소년 무료급식소 ‘청개구리 식당’을 운영하는
청소년공동체 ‘물푸레나무’(대표 이정아)에 기증했고 물푸레나무 측은
위기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소년희망공장의 정신과 상호(스위트그린)를
그대로 이어받기로 하고 6월 중순 오픈을 목표로 한창 내부 공사 중입니다.
박세진 교장 선생님!
안타까운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무거운 짐을 덜어 주시기 위해 와주시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후원해주고 가신 귀한 발걸음
헛되지 않도록 희망의 경주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소년희망공장 3호점이 새롭게 출발하면 초대하겠습니다.
넷. 기적을 꿈꾸는 소년희망공장
대물림 된 가난과 상처로 뒹굴다가 자포자기한
아이들의 절망을 희망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몇 번의 동정과 사랑으로 무얼 해보겠다고 어설피 접근했다가는
희망의 ‘희’자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나뒹굴기 일쑤인 바닥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닥에서 희망 키우기란 힘들고, 괴롭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가시밭길인데도
소년 희망의 길은 굽히거나 끝나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확장되고 있습니다.
소년희망공장 7호점(컴포즈커피 가양양천초점)
현판식이 지난 5월 4일(수) 서울 강서구 양천로에서 진행됐습니다.
현판식에는 소년희망공장을 운영하는 ‘스마일어게인사회적협동조합’
최승주 대표와 어게인 초대 사무국장으로 소년희망공장 2호점과 5호점을
운영하는 두현호 목사와 7호점 점주인 서지미님 참석했습니다. 서지미님은
두현호 목사가 운영하는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다 동역자로 거듭난 분입니다.
‘스마일어게인사회적협동조합’은
소년희망공장 협의체를 추진 중입니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
청소년들이 정신적·신체적·사회적으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협의체, 신앙 공동체가 목적입니다.
소년희망공장이 확장됐으면 좋겠습니다.
소년희망공장 한 군데서 일하는 위기 청소년은 3~5명,
현재 7곳에서 일하는 청소년은 20명~30명으로 작지 않습니다.
소년희망공장 아이들은 소년희망공장을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일하고, 공부하고, 꿈꾸면서 가난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쓰러진 위기 청소년을
일으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설픈 적선과 사랑보다는 일자리입니다.
스스로 일해 돈을 벌면 비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성실한 노동을 통해 게으름과 나쁜 습관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소년희망공장이 10호점으로
늘어나면 일자리가 자그만지 50여 명!
소년희망공장이 100호점으로
늘어나면 일자리가 놀랍게도 500여 명!
500명의 위기 청소년들이 자립 일자리를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면서 가난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놀라운 기적일 것입니다.
소년희망공장에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증보(仲保) 기도해주세요.
▲2017년 폐업 위기에 처한 <소년희망공장>이 JTBC 자영업자 위기탈출 프로그램 <나도 CEO> 10호점에 선정되면서 희망의 거점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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