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아기의 돌잔치, 하객들이 '하트' 그린 사연

※이 이야기는 조호진 시인이 2017년 5월 <오마이뉴스>와 네이버 뉴스를 통해 알린 사연입니다.

준이 돌잔치에 참석한 축하객들이 숙희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합창하면서 두 팔로 하트 모양을 그렸습니다. ⓒ 임종진

"준아,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커라!" "준아, 행복해야 돼. 그리고 사랑해!"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5월 3일, 충남 천안의 돌잔치 전문점 '라라슈슈'에서 준이 돌잔치를 했습니다. 준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엄마와 큰아빠, 이모와 삼촌들이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하며 "사랑해!"라고 합창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준이 친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엄마와 큰아빠, 이모와 삼촌이 아닙니다. 이날 처음 준이를 봤으니까요. 축하객끼리도 서로 처음 본 경우가 대다수입입니다. 이들의 합창이 여느 돌잔치보다 훈훈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적당한 친척 또는 아는 선후배와 동료의 돌잔치라면 그렇게 애써 모였을까요. 황금연휴 기간에 휴일을 반납한 채 꽉꽉 막힌 고속도로를 달려왔을까요. 뉴질랜드, 서울, 대전, 과천, 의왕, 인천 등지에서 천안까지 달려왔을까요. 사진작가 임종진 선생은 왜 아픈 자기 아기를 아내에게 맡겨두고 전철과 택시를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 않고 달려와 사진을 찍어줬을까요. 왜 핏줄도 아닌 생면부지의 아기를 위해 달려와서 정성 담긴 후원금을 전달했을까요.


아내가 천안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숙희네와 병원비와 준이 돌잔치에 대해 의논하고 있습니다. ⓒ 조호진


"큰엄마, 준이가 아파요…." 지난 4월 17일 새벽, 숙희(24)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보육원 출신인 숙희는 소년원 출신인 수철(23)이를 만나 큰딸 솜(3)이와 둘째아들 준이를 낳았는데 수철이가 집을 떠나는 바람에 두 아기를 혼자 키우게 됐습니다. 숙희가 큰엄마라고 부르는 제 아내는 3년 전에 숙희를 만난 이후로 분유와 아기 생필품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숙희가 급하게 도움을 청한 것은 준이가 폐렴으로 응급실에 입원했기 때문입니다. 전기요금을 체납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숙희가 도움 청할 사람이라고는 아내뿐입니다. 작은 비영리 민간단체(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를 운영하면서 미혼모를 돕는 한편, 소년원 출신들의 자립을 위한 '소년희망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내(61)는 대전 사업가의 도움으로 병원비 일부를 마련했습니다. 체납 전기요금은 소년원 출신 후원자인 김 선생이 해결해줬습니다. 김 선생은 숙희네 전기세를 자신이 내겠다고 했습니다. 김 선생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소년원생들도 취업시켜줬습니다.


급성 폐렴으로 입원한 준이가 잠들었습니다. ⓒ 조호진


아내와 저는 다음 날 천안으로 달려갔습니다. 간호사가 숙희에게 비보험인 바이러스 검사(15만 원)를 하겠냐고 묻자 숙희는 고개 숙인 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간호사에게 검사를 해달라고 하면서 숙희에게는 병원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링거 주사 등이 발에 꽂힌 준이를 조심스레 안았더니 폐렴 때문인지 숨소리가 거칠었습니다. 잠시 웃어주던 준이가 힘들었는지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준이가 돌도 되기 전에 수철이가 떠나면서 한부모가 된 숙희는 큰딸 솜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준이를 놀이방에 맡겨야 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부모가 아기 카시트를 준비하지 않으면 차량에 태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숙희가 카시트를 카시트는 경찰청에 근무하는 김 경감이 해결해줬습니다. 아기는 아프면서 큽니다. 아기가 아픈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병원비가 없는 건 큰 문제입니다. 불덩이가 된 준이를 안고 응급실에 달려가는 건 그래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알바에서 잘리는 것입니다. 일터에서는 아이가 아프다고 봐주지 않기에 숙희는 남몰래 울었습니다. 하지만 운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아무리 울어도 돈이 생기지 않고 일자리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아내는 압니다. 설사 친정부모가 있더라도 한부모가 되면 선뜻 도움 받기가 쉽지 않은데 천애고아로 자란 숙희 혼자 힘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이혼한 뒤 혼자의 힘으로 어린 딸을 키워 봤기에,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에 가면서 피눈물을 흘려봤기에, 천안으로 급히 달려가 숙희를 안아줬습니다. 그리고 병원비를 지불하고 생활비를 줬습니다. 그래서 숙희는 준이를 안고 솜이의 손을 잡고 웃으며 퇴원했습니다.


숙희와 준이 그리고, 축하객들. ⓒ 임종진


3년 전입니다. 숙희 부부는 솜이 돌잔치를 앞두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의 첫 번째 생일상을 멋지게 차려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숙희 부부는 그때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떡도 하고, 한복도 마련하고, 쌀 포대도 나르면서 숙희네 자취방에서 솜이 돌잔치를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홍석경 과천의왕지부장은 제가 찍은 돌잔치 사진으로 솜이 돌잔치 앨범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은 축복받아야 합니다. 외로운 준이 또한 축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내는 큰할머니의 심정으로 돌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솜이 돌잔치와 달리 아빠가 없어서 더욱 애타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분들에게 준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엄마와 큰아빠, 이모와 삼촌이 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선뜻 참여해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온정을 모아 주셨습니다. 이용길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장'은 자신의 천안고 후배인 '라라슈슈' 사장에게 준이네 사정을 전했고 그 후배 사장은 최소 비용만 받고서 정성스런 돌잔치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이날 참석한 축하객의 직업은 아주 다양합니다. 노동운동가인 이용길 위원장 부부를 비롯해 홍석경 지부장, 거리소년을 위해 2000만 원을 쾌척한 임진성 변호사, 소년원생들의 대부인 법무부 윤용범 서기관, <소년의 눈물> 전도사인 보건복지부의 박영주 주무관, 사업하는 인천 후배 김혁민, 사진작가 임종진, 페이스북 친구 최태이, 성미선, 김용주 선생 등이 천안까지 달려와줬습니다. 김용주 선생은 뉴질랜드에서 오셨습니다.


숙희가 돌잔치 무대에서 돌아 앉아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 임종진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참석한 축하객들은 준이를 위해 덕담하면서 한껏 축하했습니다. 특히, 준이가 돌잡이에서 청진기와 명주실을 붙잡자 환호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참석자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며 숙희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합창하자 숙희는 참다못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자 돌잔치 무대 뒤로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아내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는 인사말에서 "이렇게 힘든데도 열심히 살면서 아이들을 지켜준 어린 엄마 숙희가 고맙다"라면서 "준이 돌잔치를 위해 멀리서 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준이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처럼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계속 손잡아주시면 더 감사하겠다"고 관심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참석자들에게 준이는 그냥 아이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손자이자 조카가 됐습니다.


▲저희 작은아들이 별이를 안고 아쿠라리움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 조호진


아내는 명절이면 소년원 출신들과 소년희망공장 아르바이트생을 초대해서 음식도 먹이고 설빔과 세뱃돈을 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불우한 청소년들을 소년희망공장으로 초대해 음식을 먹이며 선물을 나눠줍니다. 다들 행복한 날이면 유독 슬퍼지는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큰엄마네 집에서 명절을 지내고 싶다"는 숙희의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 것입니다. 지난 설에는 숙희네 세 가족과 별이네 모녀,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는 성준이를 초대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잠시 귀국한 큰아들(29)과 아프리카로 떠난 작은아들(26)은 자원봉사자가 돼 숙희네와 별이네 가족을 데리고 63빌딩 아쿠아리움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별이 엄마(25)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은 뒤 떠돌이로 살았습니다. 별이 엄마는 고아로 사는 세상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소년원에도 갔다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또래의 불우한 소년을 만나 별이를 낳았지만 그는 아빠 노릇을 하지 않고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별이를 혼자 키우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별이 엄마의 치아는 매우 심하게 상했습니다. 그래서 잘 웃지 않았습니다. 웃을 일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간혹 웃을 때는 손으로 입으로 가리면서 웃습니다. 별이 엄마는 외톨이로 살아온 탓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런데다 치아 상태까지 심각하니 사회생활에 큰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아내가 나섰습니다. 강남성모병원 수녀님께 도움을 청해 2000만 원가량 드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도록 했습니다. 별이 엄마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닙니다. 별이 엄마가 임플란트로 치아를 보강하고 간호조무사가 되면 별처럼 빛나는 웃음을 짓을 것입니다. 그래서 별이도 엄마와 함께 웃을 것입니다. 아내는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손 모아 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