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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후원자를 배웅했습니다

[소년희망편지] 최영일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신장 기증 후의 최영일님 모습. (사진 제공 -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빈소도 없고

영정도 없고

조문객도 없는


무연고 후원자의 쓸쓸한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9일) 인천 승화원에 다녀왔습니다.


고(故) 최영일님은 지난 11월 20일 김포의 한 요양원에서 향년 8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딸도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김포시청은 고인의 아들과 딸에게 사망 사실을 통보하면서 시신 인수에 대한 의향을 묻는 절차를 진행했는데 아들은 연락처가 없어서 등기를 보내지 못했고 딸에게 등기를 보냈으나 회신이 없어서 무연고자 공영장례를 진행했습니다.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사실상 거부한 딸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가정과 자식을 부양하지 않은 채 죄를 짓고 교도소를 드나드는 전과자 아버지, 서로 소식을 끊은 채 수십 년을 남남보다 못한 관계로 살아온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하겠냐? 라는 느닷없는 소식에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아버지로 인해 겪었을 수많은 고통과 슬픔, 그로 인해 고단하고 서러웠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무연고자 공영장례는 사실 장례랄 것도 없었습니다. 유족도 조문객도 없으니 빈소를 차릴 필요가 없게 된 고인은 무연고자 처리 절차를 마친 후, 이날 앰뷸런스 장의차에 실려 인천가족공원 승화원에 도착했습니다. 고인의 관이 13번 로(盧)에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유일한 배웅자가 되어 지켜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던 다른 유족들이 울부짖고, 조문객들은 애도하는데 고인의 텅 빈 유족 대기실은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습니다. 텅 빈 유족 대기실에서 기도드렸습니다.


고인은 전과 11범의 중한 죄인이었습니다.

자식에겐 아비 노릇을 하지 못해 외면당했습니다.

고인은 그러나,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도 외면하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신장을 기증해 생명을 살린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고인은 슬프고 외로웠던 이 세상을 무연고자로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연고자가 되어 그의 영혼을 거두어주소서.


▲신장기증인 고(故) 최영일님 장례 예배가 2023년 11월 23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관으로 진행됐습니다.


전과 11범이었던 고인은 1990년 2월, 10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모범수로 가출소했습니다. 그는 출소 며칠 후, 쓰러진 취객을 목격했습니다. 행인들은 쓰러진 취객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갔으나 그는 차마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그해 2월의 한밤중은 한겨울 못지않게 추웠습니다. 그는 취객을 부축해서 여관에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천사, 헐벗은 채로 지상에 버려진 미하일처럼 그 취객은 천사였는지도 모릅니다. 취객은 그를 생명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취객을 여관방에 누인 그는 탁자에 놓인 신문을 펼쳐 들었습니다. 그 신문에는 어떤 목사가 신장을 기증해 생명을 살렸다는 미담 기사가 실렸고, 그 기사를 읽고 신장을 기증하고 싶어진 고인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찾아가 "신장 기증을 통해 지은 죄의 백 분의 일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전과자의 더러운 몸이지만 신장 기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했고 1991년 6월 13일 생면부지의 20대 청년에게 신장을 기증했습니다. 혈액투석으로 생명을 힘겹게 연장하던 청년은 그의 신장을 이식받으면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한 여자 전도사가 저같이

못난 놈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고인이 속죄 인생을 결심한 것은 ‘청송 보호감호소’에서 만난 여자 전도사 덕분이라고 말했습니다. 1·4후퇴 때, 남한으로 피난 내려와 떠돌이로 살던 어린 그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면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드는 '법자'(법무부의 자식)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를 속죄 인생으로 바꾼 것은 법과 감옥이 아니라 심장판막증 환자였던 한 여자 전도사님의 헌신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그 여자 전도사를 만났다면 전과 11범이 되진 않았을 텐데….


신장 기증 후, 고인은 경찰에 불려가지 않았습니다. 신장 기증을 하면서 새사람이 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고달팠습니다. 50대 나이에 신문 배달을 하고, 공공근로 등으로 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신문 배달에서 잘리는 등 생계 위협이 고인의 삶을 위협했습니다.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면 이깟 궁핍한 생활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잖아' 라는 유혹이 끊이지 않았을 것인데도 그는 옛날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제 아내 최승주 권사가 고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재직할 때였습니다. 혈혈단신 무연고자였던 고인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흘을 굶었다면서 도움을 청했고, 말소된 주민등록증을 살리려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도움을 청했고, 신문 배달 일을 하려면 중고오토바이를 사야 한다면서 도움을 청했고, 틀니 비용을 요청했고,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성심을 다해 도와드렸습니다. 고인이 무척 좋아하던 돼지갈비와 탕수육을 사드리고, 고인이 좋아하는 영화를 관람하도록 해드렸습니다. 그는 장기기증 10년째 되던 날, 아내에게 이런 소회를 밝혔습니다.


"오늘이 신장 기증을 한 지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봤는데 경찰서에 불려가거나 어떤 사건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속죄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줘서 고마워요.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청했는데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들어줘서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고(故) 최영일님은 지난 12월 9일(토) 인천가족공원 승화원 13번  로(盧)에서 한줌 재가 됐습니다.


고인은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한 평가량의 고시원에 살던 고인은 옷과 이불을 아내에게 맡겼습니다. 여름이 되면 겨울옷과 이불을, 겨울이 되면 여름 이불을 맡기면 아내는 깨끗이 세탁해서 보관했다가 계절이 바뀌면 옷과 이불을 내어주었습니다.


고인이 파킨스병에 걸려 힘들어하던 어느 해 여름이었습니다. 수박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파킨슨 환자에게 수박 한 통 사드려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드시게 좋게 깍두기처럼 썰어서 드렸더니 생일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칠순이 넘도록 생일 케이크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여름옷을 장만해서 생일 케이크와 함께 생일 선물로 드렸습니다. 고인은 아내에겐 도움을 청했으나 아무에게나 손 벌리진 않았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신장을 기증한 청년에겐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 고인이 투박한 목소리로 전화했습니다. 아내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기초생활수급비로 돈을 좀 모았다면서, 30여 년간 받은 도움의 얼마라도 갚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피 같은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고, 그는 계좌번호를 계속 요청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내가 고인에게 ”그럼, 최 선생님처럼 불우한 아이들에게 후원하면 어떻겠냐?“고 말씀을 드렸고, 고인이 "좋다"고 응하셔서 어게인 후원계좌를 알려드렸고 고인은 피 같은 거금 100만 원을 후원했습니다.


생전에 고인은 최승주 권사에게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기증한 뒤에 장례를 치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고인의 부탁을 끝내 이행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최 권사를 보호자처럼 30여 년간 의지하고 신뢰했으나 세상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유언은 법적 효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가족도 아니고 법적 관계도 아닌 최 권사는 고인의 장례를 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슬프고 외롭게 떠난 선한 사마리아 사람 최영일님, 슬프고 외롭게 떠나신 고인을 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을 것을 믿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로 청원하오니 부디, 들어주소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통성으로 고백한 적 없고

교회를 다닌 적 또한 없었으며

고아와 전과자로 이 풍진 세상을 떠돌았으나

차디차게 얼어죽어 가던 생명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

신장 기증으로 한 청년의 생명을 살린 선한 사마리아 사람!

최영일님의 가엾은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안아주셨을 줄 믿습니다.

슬픔도 없고, 파킨스병도 없는 나라에서 안식하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고(高) 최영일님의 삶과 죽음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무연고자의 쓸쓸한 죽음으로 묻히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고인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오니 기억해주시고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고인 생전에 따뜻한 손길로 외로움과 힘겨움을 달래주신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후원자 박소원님(헬렌스타인 CEO) 박종선님(한약사, 약초당한약국) 홍석경님(민족문제연구소 과천의왕 지부장)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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