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연변 소녀를 어이할꼬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소녀가 살고 있는 고시원.


봄날처럼 따사롭던 지난 16일,

연변에서 온 소녀 영혜(가명·17세)와

뚝배기 삼계탕으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월 25만 원짜리 고시원에 사는

소녀는 먹고 돌아서면 허기진 고시원 밥으로

끼니를 때워서인지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 또한 18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밥과 김치로 허기를 때운 적이 있습니다.

먹고 돌아서면 금방 허기가 찾아오는 고시원 밥,

그 밥에 눈물 흘려봤기에 소녀에게 기름진 밥을 먹이고 싶었습니다.

허기진 삶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저의 삶은 가난함 그대로입니다.

가난한 아이들 곁에서 살면서 기름진 밥을 먹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형편이기에

직접 한 밥을 냉동실에 쟁여 놓았다가 전자렌지에 해동해

국과 김치로 혼밥을 하면서 점심을 때우곤 하면서 살고 있기에

모처럼 먹는 보양식에 호사를 누린 것은 연변 소녀 덕분이었습니다.

연변 소녀가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게 된 까닭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연변 소녀.


연변 소녀 영혜가 소년희망공장 1호점(카페)에서 일하게 된 것은 여성가족부의 지원으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진행한 학교 밖 청소년 취업프로그램 ‘드림잡’때문입니다. 영혜는‘드림잡’에 따라 매월 50시간 정도 일하고 50만 원 정도를 받으면서 6개월간 일했습니다. 영혜는 한국에 오기 전에 고향 연변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일을 성실하게 잘했습니다.

영혜의 ‘드림잡’종료 일은 삼계탕을 함께 먹은 11월 16일이었습니다. 영혜와 함께 소년희망공장에서 ‘드림잡’을 시작했던 은수(가명·19세)는 프로젝트가 종료되면서 진즉에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영혜는 이날도 소년희망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영혜를 계속 일하게 한 것은 필요한 일손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소년희망공장 또한 코로나로 인해 운영이 어렵기에 영혜를 계속 고용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혜에게 그만두라고 하지 못한 것은 영혜가 벼랑 끝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영혜가 소년희망공장을 그만두면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한국의 청소년들도 알바 자리를 찾지 못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데 연변에서 온 소녀를 누가 쉽게 고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시원 비용을 내지 못하면 영혜는 쫓겨날 수도 있는 막막한 상황입니다.

영혜는 불행한 소녀입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깊은 병을 앓게 되면서 엄마의 양육과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데다 아빠는 영혜가 네 살 되던 2007년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나면서 부모의 사랑도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조선족인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한국에 간 영혜 아빠가 코리안 드림에 성공했다면 영혜의 고통은 그나마 줄었을 텐데 돈을 벌기는커녕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푸른 꿈과 희망이 넘쳐야 할 열일곱 소녀의 눈에 슬픔과 절망이 그렁그렁 가득 찬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영혜의 고향은 연변, 윤동주 시인과 독립운동가들이 살던 용정과 해란강이 흐르는 북간도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부르면서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지만 영혜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고 친구들의 놀림과 왕따에 시달리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아빠가 있는 한국에 공부하러 왔습니다. 하지만 몹쓸 병에 걸린 아빠는 삶을 비관하면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타국이나 다름없는 낯선 땅에

오직 아빠 한 사람을 믿고 찾아왔는데

삶을 비관하고 자살을 시도했으니 연변 소녀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듭니다.


연변 소녀를

도와주고 싶습니다!

▲일송정에서 바라본 해란강과 용정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