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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며느리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 서정홍 시인의 큰아들 결혼


▲2023년 6월 1일부터 2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전북 진안 김용만 시인 집에서 진행된 일과시 동인 모임. (왼쪽부터 김용만, 서정홍, 김해화, 이한주, 조호진, 오진엽 시인.

서정홍 시인을 5년 만에 성사된 <일과시> 동인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일과시> 동인은 1990년에 결성된 시(詩) 동인으로 시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김명환, 김용만, 김해화, 서정홍, 손상렬, 송경동, 오진엽, 이한주, 조호진 시인 등이 3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시보다 삶이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문학 모임입니다. 김용만 시인은 암 투병 중이고, 김해화 시인은 칠순을 앞두고도 철근 노동자로 살아가고, 정년퇴직한 김명환 시인은 1년 계약직으로 취직하면서 모임에 못 왔고, 송경동 시인은 모임에 와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에 항의하는 긴급 성명서를 작성하고, 환갑을 앞둔 철도노동자 이한주 시인은 명예퇴직을 고민했습니다. 전북 완주에 있는 김용만 시인의 시골집에서 가진 1박 2일간의 모임을 마친 동인들은 여전히 고단한 삶의 현장, 노동 현장, 투쟁 현장으로 복귀했습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삶의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인들, 고단한 노동과 가난한 삶에 지친 동인들의 검정 머리카락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렸습니다. 그이들과 나눈 가슴 아프고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경남 합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서정홍 시인의 큰아들 결혼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할 딸과 아들을 둔 아비의 부끄러움이 제 가슴을 울렸습니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졸업한 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막노동과 길거리에서 ‘우리밀 붕어빵’ 장사로 번 돈으로 인도, 네팔, 파키스탄 등을 여행했던 큰아들 영교씨가 결혼할 여성을 서정홍 시인에게 데려왔는데 큰며느리가 될 여성은 시각장애 1급이었습니다. 영교씨는 아버지 서정홍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 될 사람이 비록 앞은 잘 보이지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 성격이 밝고 착해요. 제가 한평생 ‘눈’이 되어 살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남자든 여자든 착한 사람 만나 사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서정홍 시인은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과 사는 것이 당연하다”며 아들의 결혼을 흔쾌히 찬성했지만 속으로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러면서 영교씨는 자신의 결혼식 계획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아버지, 혼인식을 올리기로 했어요. 장소는 충남 금산에 있는 아주 작은 산골이에요. 폐교된 건천 초등학교 들머리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하도 좋아서요. 찾아오시는 길이 멀어 걱정입니다만 축하해 주러 오셔야 합니다. 혼인 잔치 음식은 아내 영미랑 친구들이랑 같이 준비할게요. 아버지는 어머니랑 시간 맞추어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축의금은 받지 않기로 했어요. 손님을 초대해 놓고 돈을 받는다는 게 우습잖아요. 저희들은 입던 옷 깨끗이 빨아서 입고 혼인식을 올릴 생각이니 아버지도 그냥 편안한 옷 입고 오시면 좋겠어요.” 서정홍 시인은 아들의 결혼식 계획에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그동안 부은 수많은 축의금을 회수할 기회를 차단한 큰아들의 말에 앞이 캄캄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 며느리라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낳아 기른 딸이라 생각하자. 앞이 잘 안 보이는 딸 앞에 건강한 사내가 나타나 한평생 눈이 되어 함께 산다고 생각하자.” 서정홍 시인은 이런 아버지입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대안학교 ‘하자작업장학교’ 교사를 거쳐 현재 장애인 대안학교인 ‘노들야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교씨는, 시각장애인 아내 영미씨와 서울 변두리 집에 살면서 서정홍 시인의 큰 기쁨인 손주 ‘서로’를 잘 키우고 있습니다. 서정홍 시인은 태어난 손주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이런 다짐의 시를 썼습니다. 손자 ‘서로’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사흘 동안 농사일, 쉬기로 했다 산밭에 괭이질을 하다 지렁이 한 마리라도 찍으면 마음이 짠하니까 삼 주 동안 좋아하던 술도 끊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해서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되니까 석 달 동안 채식을 하기로 했다 손자 서로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맑아질 테니까 동시집 《골목길 붕어빵》(상추쌈출판사), ‘작은 다짐’ 전문) 서정홍 시인은 이런 시인입니다.


▲1박2일 모임을 마치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왼쪽부터 송경동, 김용만, 김해화, 오진엽, 조호진, 서정홍, 이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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