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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승주 최

국민 아버지의 꿈

[소년이 희망이다 10화] 2016-05-23

국민아버지 최불암 ⓒ 김진석

국민아버지 최불암 ⓒ 김진석


지난 3일 '소년이 희망이다' 인터뷰를 요청하려고 최불암(76)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최 이사장은 소년수형자 교화와 청소년 범죄 예방을 위한 비영리 문화예술단체 (사)제로캠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 이사장께선 감자탕은 사주셨지만 인터뷰는 사양했습니다.


"하는 것도 별로 없는 데 무엇이나 하는 양 비치는 게 쑥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중하게 사양하시기에 스토리펀딩 '소년의 눈물' 리워드로 제작한 시화 액자 '누군가'와 시집 <소년원의 봄>을 선물로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가난한 시인을 챙겨준 따뜻함 ⓒ 김진석

가난한 시인을 챙겨준 따뜻함 ⓒ 김진석

가난한 시인을 챙겨준 따뜻함 ⓒ 김진석


최 이사장께선 지난 5일 "시인이 입을 만한 옷을 챙겨놓았다"며 자택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뵌 날, 10년 된 낡은 셔츠를 입었는데 가난한 시인의 모습이 맘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옷을 챙겨주시면서 "잠바 주머니에 봉투를 넣었으니 집에 가서 보라"고 하셔서 귀가하자마자 보았더니 책값이라며 주신 금일봉과 봉투 겉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책상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호진님의 시를 다지고, 나를 다지고, 사랑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맙소. 최불암"

옷과 봉투를 챙겨주면서 "바쁠 테니, 어서 가보라"고 배웅하는 손짓에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세상을 떠난 피난민 아버지의 구부정한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시인에게 어버이날은 불효의 날이었는데 주신 금일봉 덕분에 올해만큼은 효자가 됐습니다. 주신 옷은 맞춤복처럼 딱 맞습니다.


천안 소년교도소 수형자 500명과 함께한 뮤지컬의 감동


사형수 출신 대통령에게 걸려온 전화 "나, 김대중이오!"

배우생활 50년 그리고, 봉사의 삶 30년 ⓒ 김진석

배우생활 50년 그리고, 봉사의 삶 30년 ⓒ 김진석


2000년 4월 15일 소년 수형자 500명이 무대에 오르는 초대형 뮤지컬 '춤추는 별들'(연출 정일성)이 천안 소년교도소 특설무대에 올랐습니다. 줄거리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수형자가 된 청소년들이 주위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분노와 절망을 삭히고 밝은 미래를 열어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날 연극하기 위해 천안 소년교도소에 막 도착했는데 대통령이라며 전화가 왔어요. '나, 김대중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연극하러 갔다면서요.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억이 다 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연극한다고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대통령의 전화는 굉장한 감동이고 충격이었습니다."

최불암 이사장을 지난 13일 홍대 인근 스페이스 제로에서 만났습니다. 인터뷰 첫 이야기는 16년 전의 일화였습니다. 사형수 신분으로 옥중생활을 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소년 수형자들에게 보여준 애정에 감동받았다고 했습니다. 뮤지컬에 우정 출연한 최 이사장께선 소년교도소 재소자 1000명을 위한 뮤지컬 '춤추는 별들'의 감동을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고독한 배우생활 그리고, 가르침 ⓒ 김진석


"무대에 오른 소년 코러스단 500명이 뮤지컬 곡을 합창으로 허밍 하는데 무대에 오른 소년들과 관객인 재소자 소년들까지 모두 울었어요. 지독한 충격을 받으면서 이 아이들을 위한 일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안타까운 점도 있었어요. 일본 NHK와 미국 NBC가 와서 취재했는데 우리 언론은 오지 않았어요. 언론이 우리 아이들의 밝게 비춰주어야 국민들이 사랑이든 환한 빛이든 나눠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쉬워요."

제로캠프는 2013년부터 3년째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2일 뮤지컬 공연 '날개'에는 소년 수형자 20여 명이 출연했습니다. 무대에 오르는 소년들은 10개월 동안의 춤과 연기 그리고 노래 연습을 통해 삶의 아픔을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다집니다. 최 이사장께선 소년 수형자들의 공연은 매년 눈물바다라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제가 여진이와 함께 불렀던 '아빠의 말씀'(원곡-Life Itself Will Let You Know)이 김천 소년교도소 뮤지컬에서 불려졌는데 가사 중에 '나는 누가 이끌어 주나요 그냥 어른이 되나요 나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등의 대목에서 아이들이 모두 우는 거예요.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기 아픔에 우는 거지요. 공연이 끝난 뒤에 출연자 아이 부모들을 무대에 올라오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는 거예요. 왜 그러니 했더니 부모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중앙고 학창 시절엔 패싸움..그땐 그래도 낭만


미국 자본주의의 좋은 점 빼고 나쁜 점만 배워

어두운 객석에서 손짓하는 최불암 이사장 ⓒ 김진석


'수사반장'의 박 반장이자 '전원일기'의 김 회장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을까요.


모범생은 아니었습니다. 중앙고 학창 시절 주먹 잡이였던 그가 패싸움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중앙고와 경복고가 농구시합 중에 시비가 벌어지면서 경복고 아이를 내가 손을 좀 봤지. 그 사건 후, 친구 4명과 함께 낙원상가 부근을 지나는데 경북고 우두머리인 중덕(가수 차중락의 형)이가 패거리 10명을 데리고 나타났어. 막다른 골목에 끌고 가더니 자신의 경복고 모자를 내 발아래 던지면서 밟으라는 거야. 만일 밟았다면 큰 사고가 생겼을 거야. 중덕이 패거리에겐 자전거 체인과 쇠파이프 등의 무기가 있었거든. 그래서 농구선수 팬 것을 사과했어. 그랬더니 내가 쓴 중앙고 모자를 벗겨서 땅에 던지더니 몇 번 밟고는 자기 패거리들에게 '야,가자!'하면서 떠나는 거야. 나와 모교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생각에 한숨을 못 잤어. 복수하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 패거리들을 데리고 중덕이 집에 찾아갔어. 눈치를 챈 중덕이 어머님이 아침을 같이 먹자면서 방 안으로 끌어들였어. 집 밖에 대기하던 패거리들은 내가 명령하면 뛰어 들어오기로 했으니 중덕이에겐 큰 위기였지.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팰순 없어서 사과를 받고는 바로 나왔어. LA주부가요열창 출연 때문에 그곳에 갔다가 중덕이를 40~50년 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어. 대기업 임원을 지내다 지금은 교회 장로가 되었더라고."



배우의 꿈을 심어주는 최불암 이사장 ⓒ 김진석


6.25 전쟁세대인 그의 청소년 시절은 지금보다 더 가난했고 더 거칠었습니다. 쇠파이프 등 무기로 중무장하고 패싸움을 벌였으니 경찰도 쉽게 개입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엔 낭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승복하면 더 이상 보복하지 않았으니까요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에 대해 여쭈었더니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옛날보다 잘살게 됐으면 가난한 시절보다 평화와 행복을 더 누려야 되는데 오히려 시기와 질투, 분노와 적개심이 더 커졌어요. 청소년들은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를 빠르게 흡수합니다. 부모와 선생에게 지혜를 배우려 하기보다 정답만 써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힘을 키우지 않은 채 자본주의 틀에서 몸부림치다가 좌절하면 생명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인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 후원회장을 31년째 맡고 있는 그는 생명 경시 풍조의 원인은 탐욕의 자본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경험한 오래 전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1984년 어린이재단 본부가 있는 미국 리치먼드를 방문해서 한국 소녀를 입양한 미국인 부부를 만났어요. 일주일에 2~3번 뇌전증 증세로 발작을 일으키는, 그레이스(당시 22세, 대학 3학년)라는 이름의 한국 입양 소녀를 극진히 돌보는 부부였습니다. 한편으론 부끄럽고 한편으론 존경스러워서 '당신들의 정신엔 무엇이 있냐?'라고 물었더니 저에게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으로) 당신이 앞장서서 하는 헌신과 사랑'이라는 겁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자본주의를 배우면서 미국의 문화예술 정책과 사랑보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탐욕을 숭배하면서 나라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책상 없는 연극 교실 운영 중


위기청소년 대안 예술학교 설립이 꿈

돈과 인기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국민 아버지 ⓒ 김진석


노배우들이 망가지는 시대입니다. 왕년의 근엄한 배우보다 우스꽝스러운 배우를 원하는 시대이다 보니 명품 배우들이 너나할 것 없이 시트콤 대사와 피에로 몸짓을 합니다. 그런데 최불암 이사장은 50년 배우 생활 중 30년을 봉사와 나눔으로 살다 보니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꼿꼿한 성격때문에 그런 출연은 거절합니다.


돈과 인기보다 명분을 중시하는 그는 천상 국민 아버지입니다


최불암 이사장의 마지막 꿈은 위기청소년들을 위한 예술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소년 수형자들을 문화예술로 치료하고, 위기청소년들을 연극으로 지도하면서 내린 결론은 '상처로 얼룩진 소년들을 치유하면서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술'입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뒤 홀어머니(문인들의 아지트 은성 주점을 운영한 이명숙 여사)의 손에 자라면서 방황하던 자신을 구한 것도 연극이었습니다.


"예술은 상처를 치유해줍니다. 예술은 분쟁보다 평화를 사랑합니다. 예술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청소년들을 살리고 나라의 미래를 밝히려면 천민자본주의의 길이 아닌 문화 보국의 길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위기청소년을 위한 대안 예술학교를 만들어 희곡, 미술, 음악, 무용, 조명, 의상, 배우 등의 종합예술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봉사하는 게저의 꿈입니다."


위기 청소년들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최불암 이사장 ⓒ 김진석


새한(22․가명)이는 열 살 때부터 엄마 없이 살았습니다. 버림받은 상처로 방황하던 새한이에게 '울림 있는 배우'의 꿈이 생긴 것은 제로캠프에서 연극을 배우면 서입니다. 지난해 8월부터 연극 공부를 시작하면서 공연 조연출과 조명 오퍼도 해봤습니다. 새한이를 비롯해 연극을 배우는 위기청소년 14명 모두 제로캠프가 아니었다면 방황과 좌절의 세상 무대에서 분노와 증오를 토하며 쓰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불암 이사장은 연극을 배우는 위기청소년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공연장을 마련했습니다.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을 30년 넘게 했으면서도 자신이 운영하는 제로캠프에 대해선 좀처럼 손을 벌리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자존심이란 그런 것입니다


명품 배우란 이름으로 다양한 배역을 한 그에게 가장 힘겨운 배역은 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살리는 예술학교 설립을 위해선 각계의 도움 요청을 해야만 합니다.

홍대 거리를 걷고 있는 최불암 이사장 ⓒ 김진석


"제로캠프하면서 인연을 맺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예술학교 설립을 돕겠다고 하셨고,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이 '좋은 일 하시는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면서 깍듯이 대해주었지만 이런(예술학교 설립) 일을 하는 데는 아마추어입니다.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 세우는 일이니 각계각층에 도움을 청하려고 합니다. 위기청소년을 위한 예술학교를 꼭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려고 합니다."

고관대작들의 노욕과 국민 아버지의 꿈

술과 밥을 사주신 국민 아버지와 기념촬영 ⓒ 김진석


정치권과 재벌가에는 노년의 고관대작들이 맹활약합니다. 불로장생할 것처럼 욕망을 불태우는 이들을 보면 노욕(老慾)의 끝은 어디일까? 죽음도 막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어버이연합 노인들의 추태는 그들에 비하면 추레하고 가련할 뿐입니다. 어른 없는 사회의 민낯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은 아예 없는 걸까? 답답한 마음으로 자문해 봅니다.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꿈은 무엇일까요?


손자뻘인 위기청소년들에게 연기를 지도하고 밥을 사주는 모습, 소년교도소에 갇힌 수형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최불암의 꿈은 청년처럼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년 배우 생활과 30년 봉사 인생으로 수고하셨으니 이제 그만 쉬어도 될 텐데 표도 없고, 돈도 안 되는 위기청소년에게 마지막까지 희망을 보태려고 하십니다. 그의 순정을 보면서 대안 예술학교 세우는 일에 벽돌 하나라도 보태고 싶어 졌습니다. 가난한 시인에게 베푼 따뜻한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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