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청년 미혼부의 가족사진

[조호진 시인의 소년희망편지]



스물넷 고아 청년 미혼부 ‘현우’(가명)

엄마는 어릴 적에 떠났고 유일한 보호자인 아빠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현우는 다섯 살 때인가? 여섯 살 때인가? 보육원에 맡겨졌습니다. 그리고 열여덟, 어린 나이에 어쩔 수 없이 보육원을 나와야 했습니다. 열여덟에 과연 자립할 수 있을까요? 현우는 낯설고 무서운 세상을 이리저리 떠돌며 방황하다 또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빼닮은 예쁜 딸 ‘미연’(가명·2살)이를 낳았습니다. 외롭고 서럽고 힘들었던 만큼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떠났습니다.

현우는 항구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수중 용접사가 꿈인 현우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났지만 아직은 취업하지 못했습니다. 고아 출신이 혼자의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우에겐 두 살배기 딸 미연이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살 집도 없고 살림 도구도 없습니다. 지금은 후배 집에서 잠시 얹혀살고 있습니다. 현우는 직업도 없고, 살집도 없고, 돈도 없지만 딸 만큼은 꼭 지키고 싶습니다.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과 헤어질 것만 같아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현우는 추석에 오갈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혼자 있으면 별별 생각이 들어 위험할 수 있기에

우리 집에서 추석을 같이 지내자며 여비를 보내주었습니다.

보육원 출신 미혼모 숙희(가명)는 “명절이 돼도 갈 데가 없어요. 그래서 더 외로워요. 큰엄마(숙희는 제 아내를 이렇게 부릅니다) 집에서 명절을 지낼 수 없을까요?”라고 부탁했고 아내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숙희는 명절이 되면 친정 나들이하듯 우리 집에 와서 명절을 쇘습니다. 그렇게 두 아기 돌잔치를 해주었고, 둘째 준이(가명)가 폐렴에 걸렸을 때는 한 발걸음에 달려가 병원비를 대는 등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숙희는 두 아이를 버리지도 않았고, 나쁜 길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세월이 어느덧, 7년이나 흘렀습니다. 첫째 딸 솜이(가명)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 아들 준이는 씩씩한 개구쟁이로 자랐으며 단기 알바 생으로 이리저리 떠돌던 숙희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딴 뒤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취업했습니다. 현우에게 숙희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미연이를 같이 키우자는 뜻이었습니다. 혼자 살면 외롭고 힘들고 위험하므로 함께 살자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추석 연휴 기간에 미연이 돌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미연이가 9월 현재, 생후 670일쯤이니 돌사진 찍을 시기는 지났지만, 먼 훗날 미연이가 아빠에게 “왜 나는 돌사진이 없어?”라고 물으면 피차 서러울 것 같아서 돌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60년대, 노점상이었던 부모님은 빈곤한 형편에도 우리 삼형제 돌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돌사진 전문 스튜디오에서 미연이 돌사진 겸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원래 추석 연휴에는 사진관도 쉽니다. 하지만 현우네 사정을 설명하면서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항구도시에 살기 때문에 일정 잡기 어려우니 사진관을 열어달라고, 가슴이 아픈 아기이므로 특별한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셨습니다.

미연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없어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족이라곤 아빠밖에 없지만,

스물넷 고아인 아빠가 헤쳐가야 할 세상 또한 막막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헤어지지 말고 꼭 같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스물넷, 고아 출신 아빠 현우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노을이 지는 바닷가에서 외로이 서 있는 미연이 사진

그리고, 아빠 등에 업힌 딸이 아빠에게 “괜찮아 아빠?”라고 묻자

눈이 큰 아빠가 “아빠는 괜찮아!”라고 대답하는 그림 한 컷과 함께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림이 가슴 아프게, 슬프게 담겨 있어서

슬프고 외로운 사진과 그림 자리에 행복한 사진으로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돌사진 촬영, 늦었지만 괜찮아!

미연이가 행복했으면 정말 좋겠어!"

미연이 돌사진 겸 가족사진 타이틀입니다. 돌사진 촬영이 늦었으면 어떻습니까. 엄마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늦으면 늦은 대로 괜찮고 표정이 슬프면 기쁜 표정으로 뽀삽 처리하면 됩니다. 저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첫 손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귀국하지 못했던 첫 손녀의 늦은 돌사진 겸 가족사진을 이 스튜디오에서 찍었는데 얼마나 뽀샵 처리했는지 제 얼굴이 10년이나 젊은 훈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슬픈 현우의 프로필 사진을 행복한 사진으로 교체해주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현우의 슬픈 인생이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게 해달라고 빌어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사진 한 번 찍어주는 이벤트로 끝낼 순 없잖습니까.


이대로 외면하면 현우는

유일한 가족인 딸과 헤어질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딸 미연이가 아빠처럼 보육원에 맡겨져

피눈물을 흘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선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저희 부부의 힘만으로는

현우와 미연이를 지켜주기 어렵습니다.

저희 부부의 사랑은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서

미혼부와 아기의 상처를 제대로 씻어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우와 미연이를 함께 지켜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부녀의 얼굴에 깃든 슬픔과 불행을 지워달라는 것입니다.

이들 부녀의 행복해도 괜찮을까? 라는 의구심 또한 지워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보름달 밝은 한가위에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아 청년 현우의 예쁜 딸

미연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기들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버려지고 버리는 불행의 대물림이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뜻이 원이고 원이어서

이렇게 기도드리며 간구(懇求)하지만

돌아서면 그들의 눈물을 잊어버리고 마는

껍데기 사랑이었기에 이렇게 자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신명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 빌고 비나니

할 수 있거든 우리들이 고아 청년 현우와

엄마에게 버림받은 미연이를 지키게 하소서!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죄를 그만 짓게 하소서!

현우와 미연이에게 행복해도 괜찮다는 말을 하게 하소서!

우리의 행복을 나누며 진심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미연이 돌사진 겸 가족사진 촬영

늦었지만 괜찮겠지요? 정말 괜찮겠지요?

엄마도 없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와 삼촌도 없어서

어린 아빠와 어린 딸 단둘이서 찍을 수밖에 없지만 괜찮겠지요.

이번 돌사진은 약간은 쓸쓸하고 외롭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모여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이모 삼촌으로 하늘 아래 한 가족이 되어서

행복을 빌어주는 한 가족사진을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진 촬영에선

주의 천사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소서!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삼촌이 되소서!

주의 품으로 엄마 잃은 아기를 안아주소서!

고아처럼 울며 방황하는 미혼부를 위로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하늘 아래서 이토록 외로움으로 떠는 것은

외로운 이웃이 내민 쓸쓸한 손을 맞잡지 않은 까닭이요.

슬픈 이웃이 흘린 눈물을 보고도 나만 행복하면 그뿐이라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죄를 짓기 때문이요, 욕망의 탑을 쌓기 때문이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이 아동학대와 버려짐으로 죽어간

아이들의 비극적인 뉴스를 보고도 잠깐 분노하고 잊어버리는 죄를 짓기 때문임을

우리가 아노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용서하소서. 부디, 우리가 지은 죄를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