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노인이 살고 있는 고시원.
“수박이 먹고 싶은데….”
올해 일흔다섯인 최 노인이
아내에게 수박이 먹고 싶다면서
수박 좀 사다 줄 수 없냐고 부탁했습니다.
어게인 대표인 아내는 바쁩니다. 쉼터를 전전하는 위기청소년으로 가정폭력 피해자인 아이에게 방을 얻어주랴, 소년희망공장 3호점인 미혼모 자립일터 ‘스위트 그린’ 개점을 준비하랴, 부천시로부터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를 위탁받으랴, 어렵게 문 열었던 ‘소년희망센터’를 다시 중단하랴, 코로나 때문에 급식소가 중단되면서 밥 못 먹게 된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랴, 경기도 일자리 재단에서 인력지원을 받기 위한 서류를 제출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열일하는 아내를 보면 쓰러질까 걱정입니다.
아내가 저에게 부탁해서 재난지원금 카드로 수박 두 통을 샀습니다. 함양 수박이라는데 아주 달았습니다. 최 노인은 1.5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살고 계시는 데다 파킨슨병에 걸렸기 때문에 수박 통째로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박은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서 담고 배와 사과와 토마토는 잘게 썰어서 가지런히 담았습니다. 마침, 한약사인 박종선 후원자님이 쌍화탕 두 상자를 보내주셔서 한 상자를 최 노인 몫으로 챙겼습니다. 그런데 최 노인이 부탁을 추가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생일 케이크를 한 번도 먹지 못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생일 케이크도 부탁드립니다.”
▲최 노인에게 드린 수박 등의 선물. 수박 먹고 싶어 하던 작은아들은 스물아홉 청년이 됐습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수박 꼭 사 먹을 거야!”
이혼과 파산의 여름, 작은아들(당시 7~8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박을 맛있게 먹는 동네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먹고 싶었던 작은아들은 그 아이들에게 하나만 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었고, 힘든 아빠에게 사달라고 하지도 못했습니다. 먹고 싶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혼잣말이었습니다. 그 어린 아이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 시절의 작은아들 이야기입니다. 작은아들은 지인이 준 용돈 5천 원을 가지고 한참 고민했습니다. 치킨 사 먹을까? 수박 사 먹을까? 고민하던 작은아들은 꼬깃꼬깃해진 5천 원을 아빠인 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 돈! 빚 갚는 데 쓰세요!”
2000년대 초반, 시골에서 상경한 저는 서대문에서 월 18만 원짜리 고시원 생활을 했습니다. 1.5평 남짓한 비좁은 방은 무덤 같았습니다. 불 끄고 누우면 무덤 속 같았습니다. 이대로 잠에서 깨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쓴 시가 아래의 시 '고시원'입니다.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동지 같은 아들들이 삶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살자, 살자, 꼭 살아서 좋은 날을 보자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기도를 하늘이 들어주셨습니다.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적막을 깨워주는 유일한 친구다.
그런데 옆방에서 똑똑 두들긴다.
'너 혼자 사냐!'며 소리 줄이라는 신호다.
1.5평, 많은 죄를 짓지 않았는데
다리를 쭉 뻗고 잠들 수가 없다.
이렇게 오그라드는 게 인생인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만 같다.
(조호진 시인의 '고시원' 전문)
▲최 노인이 사는 1.5평 남짓한 방. 도대체 몇 평에서 살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전쟁고아였던 최 노인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물건을 훔쳤고 그러다 붙잡혀 소년원에 들어갔습니다.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도 훔치고 또 훔치다가 교도소를 드나들었습니다. 전과 11범이 된 청송 보호감호소 출신에게 그 누가 생일상을 차려줄 것이며, 그 가난한 시절에 생일 케이크에다 축하의 노래를 불러줄 사람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최 노인이 작은 케이크를 사달라고 했지만 마침 재난지원금 카드가 있어서 3만 원짜리 케이크를 샀습니다.
지난 6일(토) 아내와 함께 최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최 노인이 사는 고시원은 신림동에 있습니다. 낡은 빌딩 2층에 있는 최 노인의 방은 1.5평 남짓, 겨우 몸 하나 누일 정도의 좁은 공간입니다. 나의 무덤 같았던 고시원 방과 같았습니다. 수박 등의 과일과 쌍화탕 그리고, 케이크를 드린 뒤에 최 노인이 겨우내 덮었던 이불과 겨울 패딩을 챙겼습니다. 최 노인은 고시원이 비좁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겨울 이불과 패딩을 저희에게 맡깁니다. 그러면 저희는 빨아서 보관하다가 겨울이 되면 갖다 드리고 있습니다. 최 노인이 부탁을 또 다시 추가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한데 싼 여름 이불과 반바지 좀 부탁합니다!”
이번엔 재난지원금 카드가 아닌 제 카드로 인터넷 주문했습니다. 오늘(9일) 물건이 도착했다고 최 노인이 알려왔습니다. 이렇게 부탁에 부탁을 한다고 해서 최 노인을 염치없는 늙은이로 취급하면 곤란합니다. 최 노인은 아무에게나 손 벌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 노인은 아내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당시에 신장기증을 했고 그 이후로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죄인이 아닙니다. 돈이 없을 뿐이지 가오가 없진 않습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생명을 나눠준 의인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남에게 생명을 줬는데 나쁜 짓을 하면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최 노인에게 양로원이나 노인요양원에 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비록 병든 몸이지만 자신의 몸을 누구에게 의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최 노인은 불편한 공간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에서 스스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자존감을 지키며 살고 싶어 하듯이 누추한 최 노인의 삶 또한 존중해야 합니다. 최 노인이 늙긴 늙은 것 같습니다. 투박한 말로 툭 던지듯이 “고마워!”하고 말던 그가 파킨스병을 앓으면서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아내에게 눈물 흘리며 고마워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는데, 이렇게 잘해주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 신세를 어찌 갚을지….”
이번 일로 구원(救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거창한 구원 말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것처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구원에 대해, 배고픈 이웃과 나누는 밥 한 그릇의 구원에 대해, 추운 이웃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옷과 이불의 구원에 대해, 목마른 이웃의 목을 적셔주는 물 한 잔의 구원에 대해, 내가 입은 은혜를 다 갚은 뒤에 본향으로 갈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군소리하지 않고
이웃을 돕는 아내처럼 나도
구원의 은혜를 갚았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아무리 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난 척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무나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란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조호진 시인의 바닥_시편'은 난민촌에서 태어나 판자촌에서 자란 시인이 인생 밑바닥을 전전하다 만난 엄마 없는 소년들과 아기를 혼자 키우는 어린 미혼모와 가슴 아프고 따뜻한 이웃들의 눈물과 희망 어린 삶 속에서 찾아낸 한 톨처럼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를 시와 산문으로 엮은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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