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이 살아갈 원룸 복도.
아기는 버림받으려고
태어난 게 결코 아닌데
엄마는 왜 아기를 버렸을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를
계모와 아빠는 왜 학대했을까?
버림받고 학대당한 아이는 어떻게 될까?
동현(가명·18세)이는 엄마 얼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낳자마자 떠났기 때문입니다. 엄마 얼굴을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생모에게 남은 게 있다면 원망과 증오입니다. 버릴 거면 낳지를 말지… 동현이는 자신 따위는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동현이는 여덟 살 때까지 계모와 살았습니다. 살았다는 표현, 그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동현이는 계모에게 학대당하면서 시름시름 죽어갔습니다. 아빠라도 감싸주었으면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계모가 학대하면 아빠는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야 이, 개×××! 나가 뒈지라는 말을 듣던 동현이는 할머니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폭력성의 뿌리는 할머니였습니다.
손주를 억지로 떠안은 할머니의 18번은 ‘자식 복 없는 년’으로 시작되는 신세타령이었습니다. 동현이의 반항은 중학생이 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쌓였던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한 것입니다. 할머니에게 꾸지람을 듣던 동현이가 할머니를 세게 밀어 넘어뜨린 뒤 가출한 것입니다. 그 이후, 동현이는 할머니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대에서 시작된 가정폭력이 아빠에 이어 손주까지 3대째 대물림 된 것입니다.
▲소년에게 원룸을 얻어준 어게인 대표.
1년 전, 할머니는 동현이를 포기했습니다. 동현이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폭발하면 자신의 폭력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동현이는 이런 자신이 미워서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동현이 아빠에게 데려가라 하고 싶었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동현이는 고시원에서 혼자 살게 됐습니다. 고모가 고시원 비용을 끊으면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지냈습니다.
지난해 6월, 동현이를 처음 만났습니다. 동현이가 다니는 학교 Wee센터와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그리고,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등이 모여 동현이를 돕기 위한 솔루션 회의 끝에 Wee센터는 학교 문제를, 청소년지원센터는 심리치료를, 어게인은 일자리와 식사 등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세 기관은 동현이의 아픔을 낫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두 기관은 동현이에게서 손을 뗐습니다. 동현이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학교와의 관계는 끊겼고, 심리치료는 동현이의 반발로 중단됐습니다. 동현이에게 남은 것은 저희 ‘어게인’ 뿐입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회적 규범이 없는 사람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합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으며 그것이 잘못인지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범죄자 중에서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비율이 높습니다.”(출처 - 서울아산병원)
동현이의 반사회성을 겪다 보면 누구라도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동현이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랑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담임은 동현이가 짠해서 엄마의 마음으로 사랑하려고 했지만 동현이의 극한 거부에 좌절했습니다. 자신을 낳은 엄마에게도 버림받았는데 이 세상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 또한 동현이를 품으려고 했지만 저 또한 좌절했습니다. 어게인 대표인 아내에게 “우리도 그만 포기하자!”고 하자 아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마저 손 놓으면 이 아이가 어떻게 되겠어요….”
▲소년에게 삼겹살을 구워 주었습니다.
“대표님, 고시원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너무 답답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아요. ”
동현이는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도 기피 대상자입니다. 여기저기 쉼터를 떠도는 동안 쉼터에서 지내는 가출 청소년들과 싸우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면서 출입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입니다. 잠잘 곳이 없어진 아이는 아내에게 잠잘 곳을 마련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아내가 동현이에게 고시원을 권했더니 고시원은 숨이 막혀 살기 싫다면서 창문이 있는 원룸에서 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동현이는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욕구에만 집착할 뿐 상대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처럼 떼 쓰는 동현이에게 시달리던 아내는 원룸을 얻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그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 원룸은 이래서 싫고 저 원룸은 저래서 싫다는 동현이 때문에 아내는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다 동현이 맘에 드는 원룸을 구했습니다.
지난 토요일(13일) 동현이 이삿짐을 날랐습니다. 집에 있는 여름 이불과 베개 등을 챙겨주었습니다. 동현이는 창문 있는 원룸에 흡족해했습니다. 에어컨과 세탁기와 냉장고와 TV 등 풀옵션을 갖춘 깔끔한 원룸입니다. 저는 이날도 동현이와 부딪쳤습니다. 원룸에 정수기가 없는 것 같은데 어떡하냐고?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데 어떻게 하면 좋냐고? 조르는 통에 저도 모르게 화가 났던 것입니다. 이 아이는 아픈 아이인데, 불쌍히 여겨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다가도 막상 상상을 초월하는 반사회성에 부딪쳐 좌절했던 것입니다. 아이와 싸우는 제가 미웠습니다.
이삿짐을 내려놓고 바로 가려고 했습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점심때가 됐습니다. 혼자 사는 아이에게 밥도 먹이지 않고 갈 순 없었습니다. 원룸 근처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웠습니다. 잘 구운 살점을 골라 아이에게 주었더니 아이의 눈빛이 순해졌습니다. 아이를 보면서 다시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 계모와 아빠에게 학대당한 아이, 오갈 데 없는 아이를 포기하려고 했던 제가 미웠습니다.
미안하다, 소년아
계모의 모진 학대와
아빠의 잔인한 폭력에도
이렇게 살아남은 소년아
꽃이라면 시들었을 것이고
기계라면 망가졌을 것인데
너는 살아서 이렇게 살아서
도와달라고 손 놓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나는 괴롭고 힘들어서 손 놓으려 했구나
사랑한다 말해놓고 사랑을 속이려 했구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