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팸을 아십니까?

[ 부천역 아이들 2] 헤어디자이너 , 가수 , 작가의 꿈


부천역에서 만난 영진(20)이를 따라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주희네 가출팸이 사는 원룸을 따라 들어섰더니 캄캄했습니다. 월세와 관리비가 밀리면서 단전과 단수는 물론이고 가스까지 끊긴 것입니다.


이 원룸은 주희(22)가 얻었습니다. 주희네 가출팸은 영진이와 철민(19), 지혜(17)와 민애(15) 등 다섯 명입니다. 영진이는 김천소년교도소에 갔다 왔고, 철민이는 소년재판에서 6호 처분을 받고 소년보호시설에서 6개월 살고 나왔습니다. 지혜와 민애는 보호처분 중입니다. 이들은 부천역 거리에서 만나 함께 살게 됐습니다. 이들은 "배고픔 못지않게 외로움도 견디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주희와 민애는 어둠에 깊이 파묻혔습니다. 깨웠지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영진이와 철민이 그리고 지혜까지 셋이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는 자정을 넘겼고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담배연기는 가출팸의 절망처럼 원룸을 탈출하지 못하고 갇혔습니다. 어둠이 어둠을 삼키면서 더 어두워진 아이들이 어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철민이는 엄마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너무 일찍 떠난 것입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화를 내고 때린다고 했습니다. 철민이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지혜는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려졌다고 했습니다. 아빠가 재혼한 여덟 살 때부터 다시 함께 살았지만 새엄마의 학대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실수록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자해와 자살을 시도했다고 했습니다.


영진이가 고아 출신 성악가 최성봉 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둠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것입니다.


"껌팔이 생활하며 폭력배에 시달렸던 그 사람도 살았는데 왜 인생을 포기하려고 하니. 살려고 하면 살길이 있다. 우리에겐 나쁜 기억도 있지만 좋은 기억도 있다. 부모에게 맞고 싸운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을 하자"


어둠에 갇혔던 아이들이 감추었던 꿈과 희망을 꺼내 놓았습니다. 영진이가 헤어디자이너의 꿈을 꺼내자 철민이는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꺼내 놓았고 지혜는 작가의 꿈을 살며시 꺼냈습니다.


"제 꿈은 헤어디자이너입니다. 소년원에서 미용사 자격증도 땄고, 미용사로 봉사도 했습니다. 헤어디자이너가 돼 동생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제 꿈은 가수입니다. 아픔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저처럼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가출팸과 헤어진 며칠 뒤, 봄비가 내렸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지던 오후에 영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원룸에서 쫓겨났다고 했습니다. 비 피할 곳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통장에 얼마의 돈을 부쳐주었습니다. 하지만 봄은 부쳐주지 못했습니다. 봄비 그치면 봄꽃들이 무수히 피어날 텐데 거리 소년들의 꿈은 언제쯤 필까요. 과연 피긴 필까요?


그 이후, 가출팸 아이들을 부천역 일대에서 다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어둠에 파묻혀 깊이 잠들었던 주희와 민애 그리고 지혜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지혜는 작가의 꿈을 아직도 꾸고 있을까요? 철민이는 가수의 꿈을 포기하진 않았을까요? 이혼한 엄마와의 불화 때문에 거리를 떠돌다 가출팸이 된 영진이는 폭력 사건을 일으키면서 또 다시 김천소년교도소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거리 소년들은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걸까요?

아니면 세상이 꿈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걸까요?


※소년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꽃사진을 제공해준 김인호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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